이 글은 지난 5월 19일 성년의 날을 맞아 조한이 TBS TV <수도권 매거진 NOW>와 진행한 인터뷰 전문입니다. 하자마을 성년식의 의미에 대해 담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MC] 오늘의 핫이슈에 대해 알아보는 핫이슈 NOW 시간입니다.
오늘은 성년의 날입니다. 2014년에 성년이 되는 대상은 1994년생과 1995년생인데요. 1994년생은 7월 이후 출생자입니다. 이에 성년의 날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내용 조한혜정 선생님과 전화 연결해 알아보겠습니다.
MC] 안녕하세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오늘은 성년의 날입니다. 먼저 성년의 날의 의미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조한] (답변) 인생을 80년이라고 할 때 태어나 20년 동안 몸과 마음이 잘 자라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지는 나이임을 자타가 인식하고 축하는 날이지요. 계절로 보면 봄을 지나 여름의 길목에 들어서는 시점. 아이가 무력한 존재로 태어나 부모나 사회에 의존해서 자라서 유년기,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으로 접어들게 됨을 공표하는 날이지요.
인류사회에서는 늘 성년을 축하하는 의례들이 있어왔어요. 수렵채집사회에서는 월경을 할 즈음이나 어른들과 사냥을 함께 떠날 때 어른이 되기도 하고, 조선시대는 과거를 볼 수 있는 나이 또는 혼인이 성년의 날로 인식되기도 했지요. 근대에 들어와서는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고등학교 졸업이 그 기능을 했던 것 같습니다.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 자립이 가능한 시점에 사회적 금기가 풀려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받는 날이고 투표권이 나올 때이기도 하지요. 미국에서는 17세가 시장에 당선되었다고 하던데 시장 출마도 가능한 나이이고요. 이 날은 특히 모든 세대가 어우러져 한 사람의 성장을 축복하면서, 앞으로 사회적 성인으로서 활약을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날입니다.
MC] 그런데 요즘 성년의 날은 본래의 의미와는 사뭇 다른 의미로 변질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조한] 이른바 탈근대적 시점에 들어서면서 마흔이 되어도 성인 노릇을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고,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자립이 같이 가지 못하니까 성년의 날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고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80%가 대학을 가는데, 그렇다고 대학을 졸업했다고 경제 독립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몸은 다 커서 축하해주고 싶지만 막상 사회가 점점 외톨이 사회가 되다보니 성인이 됨을 축하해줄 친지도 줄어들고 있고 다들 바쁘고 해서 그야말로 성년의 날의 의미가 퇴색되는 중입니다. 그 빈 틈을 ‘1백송이 꽃다발과 초콜릿’ 또는 ‘밤새 성인 나이가 된 이들끼리 어울리는 파티’ 등으로 상업주의가 비집고 들어가고 있어서 또래만의 소비적 파티 정도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밸런타인데이처럼 말이지요. 최근에는 모텔을 가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고 전에는 남학생들이 성경험을 하면 어른이 되는 것처럼 굴었는데, 이제 여학생들도 같이 즐기는 날이 된 것 같습니다.
MC] 그렇다면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변해버린 ‘성년의 날’의 의미를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회복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어떤 노력을 해나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조한] 사실 지금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건강한 10대를 보내고 청년으로 성장하는 빛나는 시기에 접어드는 싱그러운 젊음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가 너무 물질에 집착하고 독점적 구조로 가다보니 사회라는 것이 과거 현재 미래를 잇고 권리를 이양하는 체제라는 것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성인식은 특히 아이의 성장을 지켜봐온 어른들이 그를 앞으로 어른으로 존중하고 지원하면서 활약을 기대하겠다는 약속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들대로 정신없이 바쁜 한편, 아이들을 입시 위주 교육현장에 두고 그 현장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지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릴 때부터 먹고 살 걱정을 하며 미래가 불안해서 입시경쟁에서나마 살아남겠다고 학원과 학교를 맴도는 식으로 갇혀 살게 되니 실은 성년이 됨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이웃이나 어른들을 만들어갈 시간도 없고 그런 관계의 의미를 제대로 되새길 여유도 없어지고 있지요.
우리 사회를 사회학자들이 ‘피로사회’라거나 ‘단속사회’라는 단어로 부르는데, 다들 피로하고 스스로 단속하면서 지내는 터라 공동체적 의례라는 것이 들어설 자리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어렵지만 저는 그래서 더욱 성년이 된 이들을 위한 축복의 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봅니다. 일단 작게라도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았던 어른들과 함께 커온 아이들, 그들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서 정성스런 의례의 자리를 마련해주면 합니다. 경제 독립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그 나름의 인격을 존중하고 어려운 시대를 잘 살아내라는 격려가 들어가야 하고요. 모두가 학교와 학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경우이니 학교와 학원에서 제대로 성인식을 치러주는 것도 방법이지요. 아이들이 어리면 지금부터라도 인간적 신뢰관계와 의례가 살아 있는 학교에 보내고 그런 동네에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미있고 즐거운 공동체적 의례가 가능한 곳에서 키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학교가 그것을 해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이웃끼리 지역사회에서라도 성년의 날을 마련해 해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교회나 절, 어릴 때부터 다닌 학원, 오래된 친구들과 가족들,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성년의 날 잔치를 조촐하게나마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MC] 교수님께서 센터장으로 계신 ‘하자센터’에서 오늘 오후 5시부터 성년의 날 성년식을 개최하신다고요. 어떤 식으로 행사가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조한] 예, 하자센터는 2006년부터 전통의례와 미래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성년식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하자센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성장한 22명이 20대의 관문을 들어서는 주인공으로 의식을 치릅니다. 이들의 성장을 지켜봐온 부모와 친지, 교사와 멘토 등이 다 한자리에 모여 덕담을 주고 받고, 음식을 나누고, 가무를 즐기는 마을축제이지요. 조선시대 관례의 의례에서 틀을 빌려오지만 내용은 현대적으로 채워서 나름의 독특한 의례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5시가 성년의 날 의례를 하는 날인데요. 의례는 성년자들이 차례로 동·서·남쪽 방향 마을 어른들에게 절을 하고 마지막으로 북쪽의 주례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를 드리면, 주례가 성년의 의례를 맞을 준비가 되었는지를 묻습니다. 그러면 “네 그렇습니다. 저는 이제 성년을 맞이하여 세상과 우주의 이치를 들여다보며 모시는 마음과 환대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 것이며,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순환을 의식하면서 사랑과 노동과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우리 마을과 사회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내고자 노력할 것입니다.”고 화답하고 이어 주례의 성년선서 후 부모, 교사 등 멘토들이 각자에게 소박한 꽃관을 씌워주는 화관례를 거쳐 인생의 첫 술을 마시는 초례를 마지막으로 성년의 관문을 통과하게 되지요. 사실 그전에 술을 이미 마신 이들이 많아서 이 장면에서는 다들 웃고 떠들지만 상징적으로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마을 어른들의 덕담이 이어지고 성인이 된 이들이 준비한 나름의 생각이나 다짐을 나눕니다. 축하공연도 즐기고, 다 함께 푸짐한 식사를 나누면서 각자가 사회를 이어가는 중요한 고리인 고양된 자신과 만나는 경험을 합니다.
MC] 마지막으로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진정한 ‘성년의 날’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조한] 의례에서 중요한 것은 의미보다 기운입니다. 의례는 동상이몽을 하는 자리라고 말하지요. 설교는 모두가 같은 것을 생각하게 하려고 말로 하지만, 의례는 아주 많은 의미를 함축하는 상징의 세상입니다. 상징과 상상, 그리고 기도의 자리이지요. 함께 모인 자리 자체에서 나오는 기운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느끼고 만들어가는 다짐의 자리입니다. 형식적인 의식은 안 하느니 못해요. 진심으로 성인됨을 축하하고 당부하는 말을 해주는 자리, 평소와는 달리 정결한 마음으로 한데 모여서 성인된 이의 미래를 축복해주는 성스러운 축하의 자리여야 하는 것이지요. 평생을 서로 지켜보고 힘이 되는 그런 관계를 확인하는 자리인데 지금과 같이 허망한 시대에는 특히 이런 의례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젊은 세대는 입시공부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면서 오래된 신뢰와 관심의 관계를 맺지 못했기에 이런 날을 중심으로라도 다시 성장의 의미를 되새기고 생로병사의 사이클로서의 삶에 대한 감각을 회복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게라도 뜻있는 자리들이 마련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모나 삼촌이 주관을 할 수도 있고 그냥 이웃끼리 오붓하게라도 조촐하게 음식을 직접 장만하는 정성과 함께 성년식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