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인적인 욕망뿐만 아니라, 타자의 아픔과 문제를 공감하면서 세상이 파괴되어 감을 알고, 또 그것이 나/우리의 상황임을 안다면, 나는 어떤 삶의 선택을 하며 일상을 만들지 고민해보자. 작은 행동부터 한 번 시작해보자.”
“거대구조를 처음부터 바꾸려 하면 무기력해질 수 있다. 구호만 외치고 사라지는데 그치지 말고, 우리 사회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즐겁게 해나가자”
“어른들을 만나고, 일을 경험해보자.”
“진로(삶)에 대한 상상을 해보고, 내 손으로 일상으로 만들어가는 힘을 고민해보자”
2013년 시작한 ‘청소년 토요진로학교’는 공공의 아젠다와 개인의 관심이 만나는 주제에서 출발해 통합활동을 통해 짧은 기간이나마 삶의 태도를 고민해보는 프로젝트형 과정입니다. 지난 4월 12일, 50명의 중등 청소년들과 함께 두 개의 과정, 각 10회차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버려진 동물을 위한 [__] 제작 프로젝트’와 ‘온 삶을 먹는 요리’입니다.
청소년토요진로학교는 생활 환경과 구조, 습관 속에서 우리도 알게 모르게 만들고 있는 문제 상황을 과제로 두고 이를 해결하며 “가치있는 일 만들기”를 하고 있는 좋은 전문가 ‘어른’들과 함께, 그들이 하는 일의 과정에 친구들과 협업하며 몸을 써서 참여해보는 체험형 워크숍 기반의 프로젝트입니다.
진로교육 현장에서 진로상담이나 직종직업체험에 대한 관심이 최근 몇 년 간 급속도로 커지는 가운데 하자센터는 적성에 맞는 직업을 잘 선택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시대를 보며 자신의 삶과 일을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과 연결시키는 활동 중심의 진로교육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수년 간 ‘스스로 돕고, 함께 도우며 지속가능한 삶을 꿈꾼다- 자조(自助)․공조(共助)․공조(公助)’를 주제로 하여 지속가능한 삶과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학습과 성장의 생태계 조성 작업을 해오고 있는 것과 연결됩니다.
청소년이 자신의 삶과 일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적 공간에서 역할과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인식하며, 단지 돈과 안정성만이 아닌 나름의 ‘가치’를 고민하며 성장하는 판을 만들고자 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머리와 아이디어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과 감각을 활용해 일을 해보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팀으로 함께 잘 하기 위해 소통하고 서로 돕는 경험을 하도록 기획됩니다. 토요진로학교의 세부 주제는 지난해와 변화가 있지만 올해 기획 및 진행 역시 이런 흐름과 함께합니다.
시리즈 1 ‘버려진 동물을 위한 [_] 제작프로젝트’는 ‘유기동물’로 불리는 버려지거나 길을 잃은 동물들을 주제로, 단순한 감정으로 일시적 접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입장과 현황을 입체적으로 살펴보고 현장에서 일을 만들어가는 분들을 만나봅니다. 지난해에는 몸과 마음이 다친 개들을 위해 보호소나 임시 보호처에서 사용할 물품을 제작했으며, 이번에는 심각한 지역 내 갈등을 빚고 있는 길고양이 문제를 다양한 입장에서 두루 살펴보고, 논의해보면서 보호소 내 고양이에게 필요한 화장실과 놀이터를 만들 예정입니다. 목재, 천 등을 재활용할 예정입니다. 청소년들과 함께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도 진행합니다. 이번 기수 참여자들은 참 밝고 잘 웃습니다. 주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바쁜 일상을 쪼개서 활동하고 있답니다.
1회차에서 청소년들은 워크숍을 통해 ‘함께 하기’ ‘잘한다라는 기존 기준을 깨고 보기’ 등 약속을 공유하고, 다큐멘터리 <더 언더독>을 만든 SBS 이승태 PD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회차엔 인천수의사협회 유기동물보호소,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KARA)와 연결된 일산의 유기동물보호소에 찾아가 상황을 듣고, 동물들도 만나 팀별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3회차에서는 수년 간 동물보호 활동을 해온 수의사 서정주님과 만나 국내외 상황과 동물원 등에서의 동물권 문제, 길고양이 문제에 접근할 때의 태도와 아이디어, 청소년으로서 할 수 있는 것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몸을 쓰는 작업은 하자센터 신관 지하의 목공방 등에서 진행됩니다. 커뮤니티디자인연구소 이정인 이사 등 소셜 임팩트 디자인이나 동물 관련 지역 활동을 하는 디자이너들이 함께합니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 1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청소년 네 명이 선배로 온&오프라인에서 참여합니다.
시리즈 2 ‘온 삶을 먹는 요리’는 모두에게 마음 아픈 상황인 세월호 사건이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1회차를 시작했습니다. 애도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생명에 대해 감사하면서 첫 만남을 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도 ‘요리사가 되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매 시간 요리를 하긴 하지만, 대량 생산되어 공급되는 급식과 편의점 삼각김밥에 익숙한 요즘 청소년이 밥과 제철 반찬을 직접 해보고 그 맛을 느껴보면서 ‘먹는다는 것’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길 바라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들이 세 끼 밥과 간식을 먹으며 어떤 음식(먹거리)을, 어디에서, 누구와 먹는지 살펴봅니다. 요리나 맛집 프로그램을 보는 시간은 늘어났는데, 정작 요리를 하는 시간은 줄었습니다. 매일 세 끼 먹는 일상의 이야기. 그 삶을 어떻게 구성할까요?
윈델 베리의 <온 삶을 먹다>라는 책에서 제목 모티브를 따온 이 수업에서는 자급하는 농사로부터 유통, 요리법까지 내 영혼과 몸을 살리고 세상도 살리는 요리 이야기, 매일 세 끼 먹는 일상의 이야기를 해봅니다. 직접 내 손으로 뭔가 만들어 함께 먹는 경험을 통해, 진로와 일상을 만드는 다른 상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평화를 짓는 밥상>을 쓴 자연요리전문가 문성희 님, 그린 디자이너이자 도시농부인 이영연 님, 사찰요리와 전통요리 전문가인 하미현 님, 법학자이자 환경활동가인 김은진 님, <자연을 닮은 밥상>의 저자이자 카페운영자로서 마크로비오틱 요리법을 전파하고 있는 이윤서 님, 홍대 도시텃밭 다리를 디자인한 이경래 님, 여성환경연대의 농사 멘토 등 다양한 전문가들을 만나 이들의 삶과 현장이 연결되는 지점을 이야기해 봅니다.
내 몸을 구성하는 햇볕과 바람과 물, 농부의 수고스러움을 잊지 말자는 것부터 뿌리와 껍질까지 버리는 것 없이 조리하는 것의 의미, 함께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감수성, 내가 선택한 밥상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의 의미, 함께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감수성, 내가 선택한 밥상이 세상을 바꾼다는 무역에 대한 이야기.
도시텃밭을 방문해서 흙도 만지고 왜, 어떻게 구성하는지 관찰한 뒤, 학교 텃밭과 연계해 생각도 해보고, 유기농 농부들과 요리사, 아티스트가 함께하는 6월의 도시장터 마르쉐@에 직접 만든 브로슈어와 요리로 참여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평소에 개인 수저와 텀블러를 사용하면서 함께 청결하게 요리하고, 스스로 정리하는 것을 배우고, 감사하면서 같이 먹는 것이겠죠.
1회차에서 우리는 ‘평화가 깃든 밥상’에 대한 문성희 님의 말씀을 듣고 노지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채소들, 직접 담근 오미자 효소와 된장을 곁들여 비빔밥을 만들고, 연근 등 건강한 채소로 부침도 했습니다. 다들 열중하며 ‘레시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채소의 생명, 지금의 맛 자체를 몸으로 알아가는 것’이라는 말씀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중했습니다. 준혁이는 완성된 비빔밥을 그릇에 잘 담고, 빛깔 고운 제비꽃을 올렸습니다. 제목이 ‘추모’라고 합니다. 누구를 추모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세월호에 탔던 분들을 위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배가 고프다고 팔을 늘어뜨리고, 입술을 비죽거리던 14살 준혁이가 덤덤하게 말했습니다.
가볍지 않으나 우울하지만은 않고, 넘치게 발랄하지 않았으나 밝았던 첫 시간. 함께했던 한 판돌이 “참여자들의 눈빛이 바뀐 것 같다”고 해준 이야기가 죽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2회차에서는 이영연 님과 함께 지난 주 먹었던 음식들을 사람 도안에 써서 모자이크를 만들어 분류했습니다. 이제 매주 집에서도 해보려 합니다.
참여자들 중에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신다는 이,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어릴 때부터 밥을 해왔고 가족들이 밥을 먹을 때 짓는 표정이 좋아 요리를 더 배우고 싶다는 이, 딴 건 하나도 관심 없는데 요리에는 관심이 있다는 이, 유명한 쉐프가 꿈인 이 등 사연도 다양합니다. 단순히 요리사가 되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일상에서 먹는 것들의 맛을 느끼고, 자연을 존중할 줄 알고, 정직하게 자신과 타인의 삶을 위한 선택을 하는 감수성을 느끼는 것. 스킬과 지식과 스펙이 아니라, 지금이 감사함을 느낄 줄 아는 것. 미래의 수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함께 사는 생명들과 같이 잘 사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중등 청소년으로서 지금의 활동이 그저 즐겁고 재미있을 뿐일 지라도, 시간을 투자(?)하니 뭔가라도 학원처럼 뭔가 성과가 남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더라도, 팀 작업을 하니 빠지지 않고 성실히 참여하겠다는 지원 인터뷰 때의 약속이 무색하게 시험이라는 이유로 결원이 대거 발생하는 상황이 왔더라도, 앞으로의 여정에서 다양한 만남과 성찰을 통해 위의 이야기들을 몸으로 알아갔으면 합니다.
몇 년 전부터 하자센터의 진로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지속적으로 설정한 것이 단순히 불평, 불만만 하지 말고, 질문하고 고민하며 작은 행동이라도 함께 실천하는 것, 나의 하루 하루가 어떤 세상을 만드는데 동참하고 있는지 성찰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직접 무언가 해보는 활동과 어른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을 포함하여, 다른 모든 존재들과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당장은 작고 소박한 것들만을 할 수 있을지라도 일상에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느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직접 만든 밥을 먹기 전 참여자들과 함께한 고무신학교의 기도문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앞으로도 짧으나 긴 여정, 잘 보내보겠습니다.
― 감사의 마음
이 음식이 여기 내 앞에 이르기까지 수고해주신 햇님 바람님 물님 흙님 그리고 땀 흘리신 농부님과 이 음식을 만드신 분들의 정성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밥을 먹고 잘 나누고, 배우며, 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