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동안 하자마을 뉴스레터는 하자마을 곳곳의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막막한 미래를 걱정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진로설계 프로그램,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청년 당사자들의 포럼, 다세대 커뮤니티가 함께하는 허브, 환경을 생각하는 도시농업과 적정기술 워크숍, 사회적기업과 문화작업자들이 주민과 만나는 마을시장 등 한 해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2013년에 앞서 하자마을의 지난 한 해를 돌아봅니다.
하자마을은 2012년 1월, ‘모색이 아닌 실천의 시간’이라는 말로 한 해를 시작했습니다. 기존 시스템과 관행이 위기에 처한 현재 상황에서는 이미 나와 있는 답안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죠. 하자센터가 지금까지 노력해 왔듯이 청(소)년들이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 문제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서로 듣고 학습하고 연결하고 공유하고 교류하는 노력 속에서 기존 시스템이 강제하는 삶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런 문제 의식 속에서 하자센터, 또 하자마을 사람들은 올 한 해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모든 이들과 공감, 소통, 협력, 공동기획 등 다양한 연계를 펼쳐 왔습니다. 전환과 실천을 위해 노력해온 하자의 열 두 달을 소개합니다.
1월 / 하자 사회적기업은 진행형
연계 사회적기업들의 성과들이 이어지는 한 달이었습니다. 트래블러스맵이 펼친 다문화 수학여행을 영화제작소 눈이 촬영한 <내 친구 외갓집은 산호세>가 1월 23일 EBS 설 특집 다큐멘터리로 방영되었습니다. 필리핀 산호세가 외갓집인 기창이 3형제가 친구들과 함께한 감동적인 수학여행기. 전라도 화순의 다문화시범학교인 천태초등학교 아이들의 편견 없는 시선을 통해 피부색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선 가족애와 우정이 잔잔하게 전해집니다. 이야기꾼의 책공연은 돌이 갓 지난 아기 이야기꾼 리누와 함께 ‘아기연극’을 만들었습니다. 아기도 예술과 교감하고 대화하며 느끼고 표현한다는 새로운 발상에서 나온 시도였죠.
2월 / 현장의 목소리를 모으다
한 해를 여는 1월, 봄이 시작되는 3월 사이에 끼어서 자칫 게을러지기 쉬운 이 기간에도 하자마을은 바빴습니다. 특히 교사와 청소년, 두 중요한 교육의 주체를 위해 마련된 행사들이 눈길을 끌었죠. 2월 15일에 진행된 ‘학교를 바꾸는 작은 행동,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포럼은 수학여행, 입학식과 졸업식 등 의례, 공간 등 학교 안에서 변화를 시도했던 현장 사례들을 공유했던 행사였습니다. 예정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하하허허홀 가득 모인 180여명의 교사들 대다수가 자리를 뜨지 않았던 열띤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2월 18일부터 시작해서 3월 3일까지는 교육팀이 공들여 준비한 ‘Plan B_다양한 삶의 상상’이 진행되었습니다. 남들처럼, 아니 남들을 제쳐야 가능한 ‘Plan A’만을 요구받고 있는 청소년들이 솔직담백하고 허심탄회한 이야기와 워크숍 등을 통해 스스로 창의적인 삶을 그려보게 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2월 18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는 창의워크숍, 경제워크숍이 진행되었으며 2월 25일에는 ‘리빙 라이브러리’라는 형식을 빌어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는 커리어토크가 열려 청소년들이 사회적기업 CEO, 영장류 전문학자, PD 등 사회각계 선배들을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3월 3일에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아온 연사들과 즉문즉답을 통해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나누는 희망토크가 150명의 청소년들과 함께 했죠. 내 앞에 펼쳐진 길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임을, 스스로 또 같이 탐험하는 교사와 청소년들로 붐비는 2월의 하자는 이미 봄이었습니다.
3월 / 하자 안, 그리고 밖의 청소년을 위해
하자마을에는 다섯 개의 네트워크 학교가 있다는 걸 잘 아시죠? 하자작업장학교. 로드스꼴라, 연금술사 프로젝트, 영셰프, 집밖에서유유자적입니다. 3월 3일에는 2001년 9월 개교하고, 2010년 3월에 휴교하고 다시 2011년 9월 문을 연 하자작업장학교 시즌2의 첫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졸업_크리킨디학교 1敎詩 : We Do What We Can Do’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행사에서 무브. 동녘, 홍조, 쇼, 구나 등 다섯 졸업생이 그간 어떤 학습과 일의 여정을 지나왔는지 나누었습니다.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는 사람도 있는 법. 3월 2일에는 로드스꼴라 길머리들이 입학식을 가졌고, 인생을 요리하는 청소년 요리사 영셰프 3기도 3월 5일 하자마을에서의 첫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영셰프는 올해 7월, 서울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서 공모하는 하반기 네트워크 도시형 대안학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자 밖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새롭게 시작되었죠. 3월 17일부터 1기가 시작된 ‘청소년 토요학교 C-플랫’이 그것입니다. 청소년들의 주도적인 창의학습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청소년 토요학교 C-플랫’은 매주 토요일, 하자센터를 중심으로 상반기에 1기와 2기, 하반기에 3기와 4기가 진행되었으며, 매 기수 참여자들은 총 6주에 걸쳐 다양한 워크숍 및 강연에 참여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회 참여를 원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오픈 클래스와 6주 과정의 심화과정인 소셜 클래스 등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되었습니다. 집단의 창의에 초점을 맞춰 우리가 사는 공간, 삶의 인문학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워크숍과 강연, 토론 등 다양하게 구성된 ‘청소년 토요학교 C-플랫’은 2012년 내내 진행된 교육팀의 새로운 실험이었습니다.
상반기면 1년 예약이 다 끝날 만큼 인기가 높은 하자센터의 간판 프로그램 ‘일일직업체험 프로젝트’도 본격적으로 가동되었습니다. 특히 2012년에는 기존 직업체험군에 환경과 생태, 협업 등의 개념을 담은 ‘목공하자’ ‘에코디자인하자’ ‘게임 만들자’ 등 세 개의 새로운 프로그램이 추가되었습니다.
시기상으로는 이른바 ‘학교폭력’ 이슈가 사회적으로 널리 회자되던 때였습니다. 이 추이를 지켜보던 하자센터는 3월 15일 사회적기업 유유자적살롱과 함께 일-한 교류 교육포럼 ‘청소년 폭력과 부적응을 말하다’를 공동 주최했습니다. 이 포럼은 “‘나쁜 아이들’만 골라내면 문제가 해결될까?”라는 질문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당시 하자센터 사무실을 심심찮게 울려대는 문의 전화 속에서 ‘가해자 VS 피해자’ 식의 단순한 이분법, 학교와 경찰에게 책임을 떠넘긴 채 격리와 처벌 일변도로 흐르는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 폭력과 부적응을 말하다’ 포럼은 히키코모리, 학업 중단, 가해자 등 청소년들의 복잡한 세계를 다양한 시선에서 관찰하고 대안을 모색하자는 의미로 기획되어 큰 공감을 얻었습니다.
4월 / 하자마을 농사 시작! 始農
4월 17일 하자센터 마당에서는 뜻 깊은 행사가 열렸습니다. 매년 봄을 열었던 ‘꽃씨파티’가 하자작업장학교의 도시농업 프로젝트 ‘현미 네 홉’에 맞추어, ‘시농(始農)’ 잔치로 그 이름을 바꾸고, 옥상농원과 앞마당의 흙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작년에 갈무리 해 둔 씨앗을 나누며, 맛있는 음식과 여흥이 있는 흥겨운 잔치로 올해 하자마을의 농사 시작을 알렸죠.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율은 28% 내외, 그 중에 쌀이 차지하는 비중 20%를 제외하면 기타 곡물과 채소류의 자급율은 8%에 지나지 않습니다. 식량 안보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식량 이동에 따른 식품의 신선도와 안정성, 그리고 이동에 소요되는 에너지가 미치는 환경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지요. 하자작업장학교가 중심이 되어 진행하고 있는 하자마을의 도시농업 프로젝트는 이러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하여, 하자센터와 같은 공공건물의 자투리 땅을 일부라도 자조, 자립이 가능한 텃밭으로 만드는 실험이었습니다.
‘시농(始農)’ 잔치에서 멋진 음악을 담당했던 집밖에서유유자적 팀은 5기를 시작했고 2011년 4월 18일 도시 속에서의 커뮤니티 카페를 지향하며 문을 연 오가니제이션 요리의 카페 슬로비는 오픈 1주년을 맞아 돌잔치를 열었습니다. “스펙 없이 먹고 살자”를 실천하는 연금술사 프로젝트의 청소년 창업매장 ‘달콤한 코끼리’는 매달 1회 전기 조명을 끄고 지구를 생각하는 캔들나이트 음악회 ‘흔들흔들 캔들樂(이하 캔들락)’을 실천했고요.
4월의 마지막을 장식한 뜻 깊은 행사는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청년의 일자리/일거리를 창출할 수 있는 사례들을 소개한 ‘자공공포럼1: 청년, 지역을 만나다’였습니다. 4월 26일, 27일 영일간 계속된 이 포럼에서는 저서 <플러그를 뽑으면 지구가 아름답다>로 잘 알려진 후지무라 야스유키 대표(비전력공방)가 지역에서 이롭고 필요한 일을 찾아내 함께 잘 살아가는 ‘3만엔 비즈니스’를 제시했으며 도쿄를 기반으로 지역화폐인 ‘R’을 사용하는 ‘Earth Day Money’ 프로젝트로 주목받는 이쿠마 사가 대표(Earth Day Money & Service Grant)도 초대되었습니다. 그간 사회적 기업 인큐베이팅과 청년 창업을 실험하면서 하자센터는 무엇보다 “스스로 돕고 서로 도우면서 새로운 공공의 플랫폼을 만드는 플랫폼”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자공공포럼’은 적정기술, 단골경제, 그리고 상호호혜의 부조가 이루어지는 ‘살림’의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첫 단계의 플랫폼이었으며 앞으로 지역과 청년을 연결하는 다양한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습니다.
5월 / 하자 허브, 커뮤니티의 중심
지난 2010년 12월 18일 하자센터 신관에서 개관식을 갖고 창의적 네트워커들의 일-놀이-삶터로 출발한 하자 허브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에 귀 기울이며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창의적이고 역동적으로 협력하는 공간입니다. 꿈과 희망,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이를 현실로 옮길 수 있도록 물리적 공간과 학습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죠. 이중에서도 청년은 늘 하자 허브의 관심사입니다. 지난 3월 둘째 주부터 4월 첫째 주까지 네 번에 걸쳐 청년난감모임을 열어 청년노동의 문제를 의제화하고 있는 청년유니온, 청춘들의 이야기를 서로 공감하고자 한 청춘콘서트, 스스로 모여 살면서 주거문제를 해결해가는 빈집 프로젝트, 청년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는 잡지를 만드는 팀들, 청년들의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일거리를 고민하는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시도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자 허브의 또 다른 멤버 ‘무.나.싸’(무한나눔싸이클) 자전거공방도 5월부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동아리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면서 하자센터 안팎의 (예비) 사회적기업, 문화예술가, 청년 자원활동가 등과 함께 지속가능한 자전거 문화를 만들어보고자 열심입니다.
다세대가 긴밀하게 연결, 상생하는 커뮤니티라면 청(소)년들을 잘 키워낼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나 그들이 가정이나 사회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면 더욱 커뮤니티가 필요할 것입니다. 5월 9일 열린 교육포럼 ‘비정규트랙 청소년의 사회적 자립을 말하다’는 이 점을 짚어냈습니다. 학교 바깥에 있는 청(소)년들-탈학교/대안학교 졸업생, 복지제도 안에 있는 청(소)년들 등—은 학업 부족이나 심리적 문제, 지원체계 부족 등으로 다양한 고통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으며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건강한 성인기로의 이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들이 고립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진로를 설정해 사회에 안착할 수 있으려면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게 ‘비정규트랙 청소년의 사회적 자립을 말하다’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하자센터 연금술사 프로젝트 2기의 ‘소풍가는 고양이’, 3기의 ‘달콤한 코끼리’, 노원청소년자활지원의 손작업 예술공방 ‘手, 다방’, 오가니제이션 요리의 ‘영셰프’ 등 4개 사례가 소개되어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발제자로 나선 오가니제이션 요리 한영미 공동대표의 말이 인상깊었습니다. 그는 청(소)년의 일과 배움의 조건은 바로, ‘커뮤니티’라고 강조했습니다. “관용과 허용의 품을 가진 비빌 언덕 같은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커뮤니티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죠.
하자마을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커뮤니티 교류의 장, 달시장이 돌아온 것도 5월입니다! 지난해 시작되어 영등포 지역의 명물로 자리잡은 달시장은 5월부터 11월까지 혹서기인 7월을 제외하고 매달 한 번씩 달이 떠오를 시간인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개장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올해 달시장에서는 새롭게 시도하는 달디오(달+radio)에서 현장에 모여든 마을 사람들의 재미있는 사연을 방송했고, 자원활동과 대안화폐를 결합한 신개념 자원활동 그룹 ‘별무리’가 활동했으며 달시장에서만 유통되는 대안화폐 ‘별통화’도 도입했죠. 환경을 생각해 텀블러를 대여해 주기도 했고요, 1시간 동안 조명을 끄고 촛불을 켜는 캔들라이트 행사도 했습니다. 기획과 진행을 주관한 청년팀 ‘방물단’의 재치가 돋보였던 한 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