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삶의 한 단계에서 ‘무중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학교 밖 인문학 여행] <4> 은둔형 외톨이라는 이름 아래 ‘방 속으로 사라지는’ 청소년들
이충한 (사회적기업 ‘유유자적 살롱’ 공동대표)
불편하고 무서운 진실 하나. 매해 약 7만여 명의 청소년이 학교를 떠난다. 그 중 10% 정도는 대안학교에 진학하고, 아마 그보다 더 적은 숫자의 상류층 자제들은 유학을 떠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그렇다면, 나머지 몇 만 명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과연 이들은 이렇게 계속해서 ‘사라져도’ 되는 것일까?
이렇게 사라진 아이들을 위해 사회적기업 유유자적살롱(이하 ‘유자살롱’)은 지난해부터 ‘집밖에서 유유자적’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유자살롱은 학교를 자퇴한 후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니트(NEET, 자발적 학업-구직 단념자)’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아닌 ‘무중력 청소년’이라 명명하고, 음악교육을 통해 대인관계능력과 자존감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이 사회를 등지기로 결심하기까지는 심리적 불안정이나 가족 내 갈등 같은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들은 단지 감수성이 풍부하고 틀에 갇히지 않은 사고를 하는 ‘창의적 인간형’일 수도 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대인관계에 서툴다는 이유만으로 방 속으로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세상은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브 잡스 같은 이들을 절대 만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며칠 전 한일 공동연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일본의 니트 연구 권위자 야마모토 코헤이 교수는, ‘니트와 히키코모리를 경멸하는 일반인들의 시선이, 더 많은 히키코모리를 양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한 유자살롱이 이들의 가능성에 주목하여 ‘무중력 청소년’이라 명명하는 것을 보고 ‘한국사회가 최악의 상황에 처한 노숙인들에게도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처럼,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은 커다란 힘’이라며 ‘한국의 실천학문이 일본보다 앞서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땅에 발을 딛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지만, 친구들과 손을 잡으면 달나라까지도 날아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는 뜻을 지닌 ‘무중력 청소년’. 이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사회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질 수 있어야만, 그들은 스스로 자신만의 방을 나와 심리상담이나 신경치료, 재활교육 등 전문화된 도움을 통해 사회로 복귀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