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 출신, 재수생, 대학교 자퇴생, 지방대학생, 가정불화, 빚, 아르바이트…. 이런 단어들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답답증은 극에 달했고, 스물여섯 살이 되던 해 ‘희망’을 찾겠노라며 인천항을 떠났다.
1천 55일 동안 아시아, 남미, 미국 등지를 자전거로 달리며 만난 3백여 명에게 ‘당신의 희망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베네수엘라의 국경 도시에서 만난 동포 소녀 행미(20세/대학생)는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끝낼 수 있기를, 하룻밤 나를 재워주었던 콜롬비아의 마누엘(29세/공무원)은 사람들이 지구 온난화에 좀 더 관심을 가지기를 희망했다. 쿠바의 시골에서 만난 해니스(64세/무직자)는 자유로운 쿠바가 되기를 원했으며 일요일이면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아르바이트를 하던 페루의 대학생 산체스(21세/대학생)는 어머니가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한다는 희망을 털어놓았다. 운전을 하다가 나를 발견하고 집에 초대해 주었던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41세/자영업)는 사람들이 서로를 110% 믿으며 언젠가 모두가 다 함께 연결되기를 바랐다. 그때 우리 두 사람이 그랬듯이.
‘희망 인터뷰’를 통해 내가 느낀 건 사람들이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희망에 대해 누군가 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통계청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고민이 있을 때 주로 친구와 의논(51.8%)했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모님(25%), 교사(1.6%)와는 낮은 소통률을 나타냈다. 청소년들은 일방적인 조언보다는 친구로서 이야기를 들어주길 더 바란다. 그들은 쉽사리 답답증을 느끼고, 깊은 우울에 빠진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조언은 새살이 돋아나려는 순간 딱지를 떼는 것처럼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청소년에게 ‘요즘 무슨 고민 있어?’라는 질문보다 ‘요즘 어떤 희망을 갖고 있어?’라는 질문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비록‘희망’이 현실과 동떨어진‘꿈’같은 이야기라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듣기 좋은 말만 하더라도 어떤가. 그들에게‘희망’에 대해 질문하는 순간, 서로의 마음 속에는‘대화의 씨앗’이 심어지고, 또 한 명의‘친구’가 생긴다. 그들의 삶에 또 하나의 등불이 켜진다. 한 사람의 인생에 기적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