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만이 미덕이 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친구, 동료, 이웃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우울증이 만연하고, 폭력은 날로 심해진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는 시대이다.
교육 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친밀성의 공간이어야 할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은 치달아가는 경쟁에 노출되어 서로 따돌리고 상처받는 일이 일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점점 어려워지는 사회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더불어 살고 세상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최근 특별할 것이 없는 남학생 세 명이 <우리는 인문학교다: 고3이 아닌 열아홉살의 삶과 인문학 공부>라는 책을 출간했다. 고 3이었지만 입시공부 대신 자신들이 알고 싶은 공부를 선택하고 진행한 꽤 지난한 과정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세 명의 남학생은 놀고 싶어서 또 심심해서 학교 밖을 배회하다가 우연히 <품>이라는 한 청소년단체를 만났다. 얼마 동안 이 청소년단체와 함께 친구들과 같이 놀 수 있는 동네 축제를 기획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축제 기획을 하면서도 "재미는 있지만 이래도 되는지" 한편으론 여전히 답답한 느낌이 들고 마음이 허전하기도 했다. 그래서 대체 나는 누구이며, 세상은 왜 이렇게 되었고, 편하고 안정적인 삶과 다른 삶의 모델은 없는지를 찾아보는 공부를 해보기로 결단한다.
평소에 책을 읽거나 토론하는 것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열아홉살 남학생들의 공부 과정은 말 그대로 좌충우돌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공부 과정에서 수많은 다른 삶의 모델을 알게 되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에 대한 이해를 좀더 깊이있게 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막연한 불안감에서 벗어나 삶을 선택하고 실천할 수 있는 내면의 정신적 힘이 커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자신들이 축제기획을 통해 해 왔던 '잘 노는 일'과 인문학 공부를 통해 얻은 '잘 살아가는 일'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물론 이 책은 매끄럽지 않다. 또 청소년 인문학 공부를 위한 특별한 모델을 제안하지도 않는다. 다만 의지와 의지가 만날 수 있으면 인문학 공부는 가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의 서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는 것은 특별한 교육 모델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학교, 가정, 동네, 사이버 공간 등이 서로 충돌하고 연결되는 일상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도 충분히 가능해야 한다. 이 책은 이런 방식에 대한 놀라운 실증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