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부터 7월 24일까지 평화의 섬 제주로 향하는 아주 특별한 여행 ‘제주피스보트’가 시작됩니다. 하자센터의 설립자인 조한이 대표 멘토로 참여하고, 트래블러스맵이 주관하며, 노리단, 오가니제이션 요리, 리블랭크 같은 하자마을 사회적기업들도 두루 참여합니다. 무엇보다 생명과 평화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함께 승선해 그 자체로 ‘떠있는 대학’이자 ‘마을’을 만들어나갈 예정입니다. 그 항해를 앞두고 조한이 쓰신 초대글입니다.
닻을 내릴 장소가 필요합니다. 내가 정박하고 살아갈 세상을 이제 새롭게 상상해야 할 때입니다.
유토피아를 꿈꾸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만인이 평등하고 풍요로운 세상이 오리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인간을 신의 자리로 등극시켜놓으려 했던 ‘근대’라고 불리던 그 시대는 그런데, 더 이상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사투가 시작되었고 사람의 가치는 돈에 따라 매겨지는 세상이 왔습니다. 급기야는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분별한 환경 파괴 원자탄 폭격의 공포와 비극 2001년 9. 11 테러와 같이 일상 안으로 들어온 전쟁에 급기야는 2008년 뉴욕발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3. 11 후쿠시마 원전사태는 ‘근대 문명’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듯합니다. 담당자들은 리스크 관리만 잘 하면 된다며 얼버무리고자 하지만 실상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세상은 리스크(위험) 관리가 무너진 상태가 아닐지요? 무시무시한 속도로 모두를 이윤 경쟁의 세상으로 몰아넣고 있는 세상은 뭔가 열성적으로 해보려는 청년들을 ‘떡실신’시키고, 그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청년들을 ‘잉여질’을 하는 찌질한 존재라고 스스로를 방어하고 자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리차드 세넷이 적절히 표현했듯 ‘소멸하는 열정, 표류하는 개인’의 시대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어느 곳에도 닻을 내리지 못한 존재로 부유하며 살게 된 것이지요. 모두가 힘을 합쳐 문명의 전환을 해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간 우리가 누려온 풍요가 지구적 재앙과 후대의 불행을 담보로 한 것이었음을 인식할 때가 왔습니다. 다시 개인의 탐욕의 시대를 넘어서서 ‘신’ 앞에 겸손해진 존재로 시대를 학습하고, 경쟁에 길들여진 몸과 마음을 바꾸어 나갈 때가 왔습니다. 그래서 항해를 하려 합니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서 시대적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그간의 생각을 다시 생각해보고 새로운 과학과 기술을 이야기하고 또 시를 읽고 춤도 추려고 합니다. 살벌한 사회 안에 작은 ‘아지트’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문명의 씨앗을 심어 가자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 여행에 ‘피스보트’라는 이름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피스보트는 일본사회가 경제 침체로 활기를 잃어갈 때 청년들에 의한 일종의 글로벌 창업이자 시민 활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83년 당시 대학생이었던 타츠야 요시오카 씨의 꿈은 국경을 넘나들며 협력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방법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지역들을 방문하며 세계인들이 함께 공부하고 휴식하는 독특한 환경을 만들어내는 길을 택했습니다. 항해를 하는 동안 배 안에서 서로의 언어를 배우면서, 생명과 평화에 관한 공감대를 키워가면서 각자가 가진 재능을 나누는 워크숍과 페스티벌을 벌이면서 바다에 ‘떠 있는 시민대학’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그가 하고자 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배가 정박하는 곳에서 이들은 그 곳의 주민들과 연결하고 학습을 계속합니다. 20여년 지속된 피스보트 사업은 그간 지뢰의 문제, 갈라파고스의 복구 작업에서 동북아 지역 무력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갖가지 작업들을 포함하며 각 지역이 가진 현안을 글로벌 맥락에서 풀어내면서 현지의 문제 해결을 도왔습니다. 물론 이 와중에 훌륭한 국제 지역 전문가들을 키워냈지요. 그들의 작업은 눈부실 정도로 훌륭하여서 2009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후쿠시마의 복구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웃 일본 청년들이 시작한 이 뜻깊은 사업의 이름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이름만이 아니라 그간 그들이 닦아온 많은 것을 전수 받으면서 함께 이 사업을 키워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시작한 그린피스 운동이 인류의 환경문제 해결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듯이 아시아에서 시작한 이 피스보트 운동이 인류의 생명 평화 운동에 지대한 공헌을 해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뜻에 동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획한 이번 제주피스보트 여행은 예비 모임입니다. 그래서 실험적이고 소박한 여행일 것입니다. 이 배에는 연령층이 꽤 높은 이들이 주를 이루었던 일본 피스보트와는 달리 많은 청소년들이 승선할 것입니다. 이 여행을 기획한 사회적기업 트래블러스맵은 서울시와 연세대학교가 운영하는 청소년센터인 하자센터에서 싹을 틔웠습니다. 이번 피스보트에서 식사와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오가니제이션 요리, 노리단, 리블랭크 등도 하자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들입니다. 청년들이 청소년들을 키우려는 것이지요. 청년들과 청소년. 경쟁과 적대로 얼룩진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를 용서하면서 모든 생명들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을 서야 하는 이들이 바로 이들일 겁니다. 이들과 함께 새 시대를 상상하고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들이 누구보다 다음 세상을 만들어낼 감수성과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행은 청소년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한 평생’을 한껏 잘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획했습니다. 많은 어른들이 이들과 함께 항해하면서 선물을 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식탁에 둘러 앉아 이야기도 하고 함께 공방을 차리기도 할 것입니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자신들이 잘못했던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줄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가 탄 배는 그 자체로 ‘떠 있는 대학’이자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고자 하는 새로운 ‘마을’ 그리고 새로운 ‘사회’가 되는 것이지요. 이번 첫 여행을 인천에서 제주로 가는 뱃길로 잡았습니다. 제주는 생명의 섬이자 평화의 섬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제주는 생명과 평화를 이야기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입니다. 선상에서, 그리고 제주에서 우리는 올 봄 후쿠시마 사건으로 얼룩진 인류 역사의 비극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저탄소 에너지와 핵폐기물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인류가 살아갈 100년, 아니 10만년의 에너지 문제도 이야기 할 것이고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것입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속도의 삶을 느껴보고 전쟁과 폭력이 없는 시대를 염원하기에 제주는 안성맞춤의 장소이지요. 걷고, 자전거를 타고, 캠핑을 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지구 시민들이 만나 지속 가능한 인류의 삶을 위해 함께 가야 할 삶을 상상하고 관계를 맺어가려 합니다. 오는 7월 제주로 가는 선상을 상상해봅니다. 500명이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보며 생태와 평화를 이야기하는 그 날, 푸른 수평선 위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