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가장 오래된 케이크는 뚜레쥬르 치즈케이크, 엄마는 생일에 늘 치즈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내 생일, 동생 생일, 아빠 생일에도 치즈케이크를 먹었다. 돈맛에 눈을 떴을 때부터 나와 동생은 투썸플레이스 스트로베리 초콜릿 생크림 케이크를 사달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치즈케이크에 나이를 꽂으며 초를 먹었다. 우리 나이의 숫자를 베어 물면 치즈 맛이 날까?
나는 흰색 생크림 케이크를 잘 먹지 못하는 어른이 됐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싫은 내색을 않는 어른이 됐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생일이라며? 축하해. 케이크는 무난하게 생크림 괜찮지? 하고 물으면 네, 생크림 너무 좋아해요! 하고 마는 그런 어른 말이다.) 세 숟가락도 못 먹고 버려지는 생크림 케이크들의 무덤을 상상한다. 그것의 장례 또한 나만이 치러줄 수 있다. 세상에 나오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모든 케이크 여러분!
기억 속 가장 달콤했던 케이크는 오키나와 베이커리에서 만든 현지 주문제작 케이크다. 오키나와 케이크는 맛이 없다 그렇게까지 사랑하는 친구도 아니었는데 걜 위해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일본어를 배웠다. 틈틈이 번역기 돌려가며 현지 케이크를 주문했다. 그렇게까지 했다. 기억 나는 건 스무 살의 웃음소리, 스무 살이 다섯 명이면 백 살이냐던 픽업하러 가던 길의 시시콜콜한 농담, 케이크를 픽업하고 돌아오는 길에 탄 택시, 케이크만큼이나 비쌌던 택시비, 불지 못한 초보다 더 밝게 일렁였던 네 눈, 벅찬 마음, 환한 미소, 잊지 못할 그 푸른 맛. 그 애의 다음 해 생일은 축하해주지 못했다. 우리의 혓바닥이 파랗게 돼버렸기 때문일까? 우리가 오키나와 바다를 전부 다 삼켜버려서 벌 받은 걸지도 몰라. 그래도 좋았지? 나도 함께해서 좋았어. 너랑 멀어지고 많이 울 줄 알았는데 눈물은 하나도 안 났어. 그날 우리가 먹은 건 바다가 아니라 눈물이었나봐. 서로로 인해 울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나봐. 그러니까 잘 지내야 해. 헤어지는 사람처럼 돌아섰다. 인사도 없이.
4개월 뒤, 서울에서 케이크를 받았다. 선물한 마음을 돌려받았다. 축하받았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선명하고 유려하게 그려져 있는 익숙한 차 두 대와 밀려오는 파도가 보인다. 케이크 판엔 단정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 아니었음 우리 인생 공허했다.
내 기억 속 가장 슬펐던 케이크는 헤어질 결심 케이크다. 이 대사의 앞 구절이 ‘너 땜에 고생깨나 했지만’이라는 걸 알기나 하는지. ‘나 때문에 고생했다고 생색내는 거야?’ 하며 눈을 흘기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사이기 때문에 이 문장을 골랐을 마음에 관해서 아는 바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앞 구절을 생략한 마음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으므로 눈물을 글썽이는 일밖에 하지 못했다.
ⓒ《헤어질 결심 스토리보드북》 이윤호, 박찬욱, 을유문화사
좋아하는 영화 속 좋아하는 대사와 장면으로 만든 오직 나만을 위한 케이크였지만 역시나 세 숟갈이 전부였다. 그 사실이 눈물겨웠다. 케이크를 버리면서 소설 속 한 구절을 생각했다. ‘나, 그들을 만나 불행했다. 그리고 그 불행으로 그 시절을 견뎠다.’ (《깊은 슬픔》 신경숙, 문학동네)
그날 돌아가는 너희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침내, 헤어질 결심을 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케이크는 아주 평범한 어느 날에 먹은 아이스크림 케이크다. 축하도 응원도 기념도 아닌 케이크가 있다. 그것은 축하와 응원과 기념을 한꺼번에 함께하는 케이크. 평범한 케이크가 할 수 없는, 심지어 더 많은 다양한 것들도 하는, 그건 바로 우리 셋의 케이크!
함께, 그 단어는 우리를 위해 있는 건 아닐까. 가족도 (떠나간) 친구들도 연인도 함께(였)지만 우리는 울지도 않고 다만 웃으면서 네모난 큐브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조각내어 함께 나누어 먹을 뿐이다. 아홉 개의 큐브, 아홉 개의 큐브, 그리고 아홉 개의 큐브 사이에 있는 넓은 초콜릿 판을 부순다. 스물일곱 가지 맛인 줄 알았는데 아홉 가지 맛의 배치만 이리저리 달랐다는 걸 깨달았을 때도 우리는 늘 먹던 맛을 먹었다. 먹지 않는 맛은 먹지 않아 민트초코만 처량하게 남게 됐고 아무도 그 사실에 슬퍼하지 않았다. (퇴고하며: 이 글을 그들에게 보여주니 민트초코를 먹지 않은 건 나뿐이라고 정정해주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술을 함께 마신 것, 생일들을 함께 보낸 것, 함께 인도에 간 것, 만우절에 교복 입고 함께 짜장면 먹었던 것, 서로의 공연에 서로가 함께 간 것, 우리 셋만의 여행을 다녀온 것, 나의 글방 발표회에 너희가 함께 와준 것, 선물하기만 했던 꽃다발을 너희에게 처음 선물 받았던 것, 곱창으로 허길 달래고 산뜻하게 먹으러 간 큐브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숟가락 초를 꽂아 마침 얼마 전이었던 내 생일을 축하해준 것, 생일 축하했습니다(‘했습니다’를 빠르게 발음하여) 노래를 부르며···. 얘들아,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맛을 보게 될까?
스무 살부터 스물둘까지 그러고도 한참을 더 함께할 우리를 위해 이젠 불 없이도 초를 분다.
글 · 사진_ 다정(하자글방 죽돌)
2024년 가을학기 하자글방 후속모임〈둥글레차〉는 글방지기 죽돌(청소년)이 제안한 글감을 단서로 글쓰기와 합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글감 소개 : 함께하는 삶; 포개어지는 마음
5월 글감은 ‘함께하는 삶; 포개어지는 마음’이에요. 4월 모임 이후 골똘히 생각하다 떠오른 단어인데요. 함께하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에 대해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여러분은 누군가와, 혹은 무엇과 함께하고 계시나요? 대상이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요. 물리적으로 같이 있는 것 외에, 정말 ‘우리는 같은 곳에 있다’라고 느낀 적 있으신가요? 그런 순간이 대상과 나의 마음이 포개어졌던 순간일지도 몰라요.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무엇과 연결되어 살고 있을까요? 이전까지는 다른 세상이라고 여겨지던 것이 나의 세상으로 들어왔던 적이 있나요? 저는 여럿 떠올라요. 자연, 호주에서 석 달간 같이 지낸 강아지, 요가, 나를 스쳐 간 많은 얼굴들... 함께하는 것이 늘 좋은 순간이 되지 못할 수도 있어요. 나도 나와 조화가 되지 않을 때가 많은데, 타자와 부대낀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지도요. 그럼에도 우리가 ‘우리’라는 단어를 찾게 되는 순간이 꼭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함께하고 서로를 위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힘을 주는 걸까요?
위의 말들이 너무 깊게 느껴진다면, 그저 ‘함께’라는 것에 대해, 여러분의 방식대로 어떤 이야기든 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집안일만 하더라도요, 혼자 하는 것보다 분담해서 다 같이 하는 것이 한결 낫잖아요?
_나스히(하자글방 죽돌)
From. 하자글방
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3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가운데 일부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