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 퍼포먼스 수업에서 몸을 운용하는 것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했다. 첫 시간에 우리는 숨 쉬는 법부터 소리 내는 법, 서 있는 법, 걷는 법 같은 것을 새롭게 배웠다. 숨은 깊게, 목소리는 벽 너머로, 발바닥의 에너지는 땅끝으로 정수리의 에너지는 우주 끝까지, 걸을 때는 발바닥과 정수리의 에너지가 몸을 통과하여 원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으로 둥글게 둥글게.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둥글게 이으려고 노력하는 동안 우리는 걷던 법을 잊은 사람처럼, 팔다리를 처음 다뤄보는 사람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삐걱삐걱 또 둥실둥실 움직이는 서른여 개의 몸은 학교에 당연하게 존재하던 이전의 몸들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각자의 삶에 의해 휘감긴 모든 맥락이 뒤로 밀려나고 움직이는 것에 골몰하는 몸을 마주하는 것이 처음이어서였을까? 폐가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진다. 발가락과 손가락이 간질간질. 나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의식하며 둥실둥실 계속해서 둥실둥실 삐걱삐걱 걸어본다.
바로 이어서 진행된 접촉 워크숍은 30명가량의 동기와 지하실의 하얀 사각형 방을 자유롭게 걸어 다니며 서로가 마주치는 순간 눈인사를, 다음에는 악수를, 그다음에는 양손 박수를 하는 식으로 점점 신체의 접촉면을 늘려나가는 활동이었다. 결국 어느 순간에는 서로 마주치는 순간 포옹을 하게 되었는데 지정 성별 남성의 동기들이 나를 포함한 여성 동기들과 포옹할 때 서로의 몸이 닿지 않도록 팔을 쭉 뻗어 흔히 매너 손이라고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우리 둘 다 이렇게 뚝딱거렸잖아. 전에 걷던 법, 숨 쉬던 법을 버리고 다 새로 배웠잖아. 적어도 이 장소에서는 몸 두 개의 만남일 수 있는 거잖아. 그런데 지금 나한테 매너 손을…… (패닉)
엉거주춤 서로를 안았던 손을 풀고 다시 걸어 나갈 때는 나도 모르게 서로를 꽉 안을 수 있는 몸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이 시간만큼은 너무나 “몸”이 되었다고 믿고 있었던 나는 접촉 워크숍에서 그들이 매너 손을 취하며 “여성”이 되어버린 그 순간이, 다시 차이를 인식하게 만들어버린다는 것이 너무 묘했다.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남성 동기들에게도 그들의 맥락이 있었겠거니 짐작한다. 그들도 나름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고, 그들의 그런 태도에 안도감을 느낀 다른 여성 동기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한데 나에게 그런 그들의 태도는 내가 나로, 인간으로, 몸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파스슥, 순간 오래된 질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오노 요코의 <cut piece>작업(무대에 앉아 있는 작가의 옷을 관객들이 가위로 잘라 가져간다. 이 과정 내내 작가는 어떤 움직임도 없이 정면을 응시하며 앉아 있다.)을 두고 서양에서 동양인 여성의 스테레오 타입이 어떤지 알면서도 수동적인 동양인 여성의 모습으로 본인을 위험에 노출하는 작업을 한 것이 잘못되었다던 입시 선생님은 크리스 버든(그는 70년대에 본인의 팔에 총을 쏘거나, 손과 발에 못을 박아 차 위에 고정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유명해졌다.)의 작업을 두고 백인 남성이 가진 스테레오타입인 폭력성을 보여주는 작업을 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았다. 인간, 신체, 폭력성, 시대상이라는 키워드를 꺼냈지.
오노 요코는 그냥 그 몸으로 태어나 자기 몸을 사용한 작업을 했을 수도 있잖아요. 그의 몸은 인간 보편, 보편적 신체, 보편적 폭력성이라는 키워드로 영영 말해질 수 없나요? 그러면 동양인 여성의 몸으로 태어난 사람은 무슨 작업을 할 수 있는 거죠? 당시에 미처 꺼내지 못한 질문이 여전히 이어진다. 우리는 몸이 될 수 없는 건가요?
글 · 그림_ 묘(하자글방 죽돌)
2023년 봄학기 하자글방 후속모임 〈파프리카〉는 앞으로의 지속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한 달간 글쓰기를 진행하였고, 그 여정을 마무리하며 모임에서 나온 글을 ‘From. 하자글방’에 기고합니다.
From. 하자글방
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3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가운데 일부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