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이미 알고 있는 말이나 해답으로 설명되지 않을 때 생깁니다. 세상은 그런 것이라고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걸 상식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느끼며 살았던 시간이 길었던 죽돌들에게 질문은 낯선 일입니다. 왜라고 물어볼 수 있다는 것, 다르게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는 되었지만, 이것을 제대로 겪는 것은 또 다른 일입니다.
“궁금한 게 뭐야?”
“어떻게 풀어보면 될까?”
“누구를 만나고 싶어?”
“그건 너한테 왜 중요해?”
“이걸 이야기 하고 싶은거야?”
그냥 가볍게 궁금한 것을 말했을 뿐인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한 문장 안에 들어있던 이야기를 해체하다보면 다시 ‘무엇’과 ‘어떻게’가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질문의 형태로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생각을 붙잡고, 이어가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질문을 가지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낯설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Inter + View
“왜 저를 만나준다고 하는 걸까요?”
인터뷰 할 사람을 찾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나도 잘 모르겠는 내 질문에 대해 답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은데, 막상 찾아보기 시작하면 뭔가 대단한 사람들만 나오고. 거기서 이미 이 질문이 그렇게 절실하지 않은데 하면서 물러나는 마음을 다잡고 겨우 메일을 보내면 답이 없고. 하라고 하는 것을 하면 되는 과제가 아니라 스스로 해야 하는 이 프로젝트는 괴로움이기도 합니다. 선택했다고 하지만 선택한 기억이 없는 것 같은 이 과정을 거치다보면 답을 받는 경우들이 생깁니다. 이득이 무엇인지, 그걸 판단해 할지 말지를 선택하는데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이 상황은 도리어 물음표가 됩니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시간도, 에너지도 써야 하고,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혼란스러운) 자신과 만나겠다고 하는 이 상황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질문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눠줄 분과의 인터뷰. 준비 수업도 하고, 미리 메일도 보내고, 질문도 만들었는데. 차를 앞두고 앉아 인사는 했지만 막상 머리는 멈춘 것 같고. 시작하면 된다고 여는 말이라도 해 줄까 싶어 길잡이를 쳐다보지만 고개만 끄덕입니다. 긴장이 되어 말이 빨라지는데, 인터뷰이는 그 말을 또 찰떡같이 알아듣고 길게 풀어 대답합니다. 녹음기만 믿고 적어둔 질문을 미션클리어 하듯 해 보는데 대답 속에 하려던 질문들이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질문이 몇 개 없는데.. 또 당황. 인터뷰는 질문을 풀어보고자 하는 사람이 시작한 것이지만, 같이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이어 질문을 합니다. 그간 서로의 질문에 대해 들은 귀가 있가 있으니 현장에서 건네는 말들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합니다. 이게 될까 의심하면서도, 잘 하고 싶어 부담이 되었던 자리가 친구들이 건네준 말들로 슬쩍 긴장이 풀어집니다. 적어온 질문지를 오가느라 바빴던 시선이 인터뷰이에게 향합니다.
인터뷰 컨텐츠와 출판물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 이미 어딘가에서 들었었을 이야기들 일 법도 한데 (심지어 길잡이 교사들이 계속 하고 있었던 말들인데!),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마냥 집중하며 교실과 다른 눈빛들을 하고 있습니다. 준비한 것을 진행할 때의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 나누고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나오는 끄덕임.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슬쩍 더 들어가게 되고, 잘 듣는 사람들이 있으니 하나 더 이야기하고, 정성을 들여 대답하고.. 서로를 세상 중요한 사람으로 대하니 그만큼 멋진 모습으로 만나게 되는 장면을 보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주고 받는 대화 사이에서 같이 만드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이득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세상도 있지만, 응원하는 마음과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더하기의 세상도 있습니다. 언젠가 다른 이에게 기꺼이 꺼내어 쓸 수 있는 기억이 되면 좋겠다는 넣어줄 수 없는 바람을 얹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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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생각하기, 중력으로 발붙이기
모던한복 브랜드를 운영하는 디자이너를 만난 자리에서 생각만하고 실행하기를 미루던 죽돌이 질문을 꺼냅니다.
| “어떻게 자기 브랜드를 만드실 수 있었어요?”
거창하게 준비해서 시작하지 않았어요. 20대에만 해 볼 수 있는 감각이 있다고 생각했고, 작은 작업실에서 시작했어요. 뭐든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봤어요. 시장에 원단이라도 보러가고, 원하는 단추 찾으러 헤메기도 하고. 그러면서 경험이 쌓였고.
| “실패했을 때 어떻게 회복할 수 있으셨어요?”
제가 실력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자신있게 디자인했던 것이 한 개도 팔리지 않는 경험을 했었어요. 그 때 친구들이랑 사소한 것부터 이야기하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 친구들이 있어서, 그 시간들을 넘길 수 있었어요.
분명 말라있는데 물기가 느껴지는 손을 가진 일식 오마카세를 운영하는 쉐프가 음식을 좋아하지만, 시작하기를 주저하는 죽돌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 “이미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가 지금 시작해서 가능성이 있을까요?, 자격증을 따는 게 도움이 될까요?”
시작을 안 했는데, 그걸 어떻게 판단해요. 좋아하는 건데 해보고 싶지 않아요? 해보면 알게 돼요. 그리고나면 또 보이는 게 생겨요. 자격증은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증명이 아니라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기본을 알고있다는 전제를 보여주는 거에요. 요리는 요리만 있지 않아요. 자격증 연습하면서 요리 앞, 뒤에 해야 하는 것들까지 하는 것을 몸에 익혔다. 그걸 바탕으로 움직일 준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에요.
| “ 장인은 어떻게 되는 거죠?”
오래 한가지 일을 했다고 해서 다 장인이 되는 게 아니에요. 엄청난 레시피를 준다고 다 그 맛을 낼 수 있나요? 오랜 시간동안 반복되는 일을 대충하지 않는 것이 장인을 만들어요. 지금도 새벽에 장을 보러 제가 가요. 좋은 재료, 맛에 대한 기준을 맞추려면 이걸 안하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요. 요리는 단번에 표시가 나지 않아요. 이것 정도야.. 빼도 될 것 같고. 다른 사람은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자신과 타협하지 않는 게 제일 힘들어요.
외모강박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을 찾고 싶어하는 죽돌이 오랫동안 이 주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작가와 팟캐스트를 녹음합니다.
| “어떻게 달라지실 수 있게 되었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말랐고, 체중도 더 적었을 때인데 그때의 사진을 보면, 눈에 빛이 없어요. 예쁜 때였는데, 제가 예쁜지도 몰랐었어요. 스스로를 무척이나 못생겼다고 생각했었고, 괴로웠었어요. 그러면서 외모 따위가 뭐라고 집착하고 있는 저 스스로가 또 싫고 부끄러웠어요. 지옥 속에서 살았던 거죠. 바닥까지 가고나서야 이렇게는 못살겠다.. 싶어서 그만할 수 있었어요.
| “어떻게 자신을 인정하게 되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애쓰고 있어요. 예전에는 여성스러움이 예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일차원적으로만 생각했던거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스타일링도 해보고, 옷차림, 표정 전체적인 것을 보게 되고, 세상에는 다양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이 좋아요. 그때의 추구미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죽돌들은 ‘어떻게’가 붙은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딘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텐데도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그만할 수 있는지를 질문했습니다. 그런 ‘방법’ 같은 건 없는데?라고 생각하다 어쩌면 저 질문들은 ‘실패하면 어떡하죠’, 혹은 ‘이미 틀린 건 아닌가요?’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질문이 조금씩 바뀌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로 시작하던 말이 ‘저는 이렇게 생각했는데’라고 자신의 이야기들이 덧붙여지고, 하고 싶은 말을 잘 전하고 싶어서 질문이 길어지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겪은 적이 없는데 들어서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지금을 불안하게 만들고, 남들 다 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단단한 관성에서 벗어나보는 순간들. 퉁치지 않고 구분해 보려고 하고, 할 말이 더 생기고, 진지해지는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순간들이 모여 자기가 싣는 무게가 중력이 되는 경험이 됩니다.
짊어지기와 가벼워지기
여행 첫날, 등에 짊어진 가방들이 큼지막했습니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혹시나 싶어 넣은 것, 무겁지만, 어떻게 되겠지! 하며 마지막에 기어이 넣은 것까지.. 5일간 여행 짐은 숙소로 들어갈 때까지 꼼짝없이 등에 짊어지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정해서 넣은 것들이라 투덜거릴 데가 없습니다. 인터뷰와 기획활동을 하느라 17,000보를 확인하며 숙소로 가는 길.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의 무게를 감당해 본 적 없었는데 이렇게나 많은 것들이, 수고로움이 있어야 내 하루가 가능해진다는 걸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여기에 저녁에 하루닫기를 하면서 먹을 간식과 아침거리들이 추가됩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고 안 해 버렸을 것들을 친구들과 나눠드니 할만 해 집니다. 같은 무게인데, 같은 무게가 아닙니다.
4박 5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헤어지는 길. 또 다시 메고 집으로 가려니 무게에 새삼 휘청입니다. 한껏 피곤이 묻어있어 첫날보다 꼬질하고, 가방에 다 넣지 못해 결국 손까지 뭔가를 더 들고 있지만 웃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방을 내려놓고 나면 다시 이렇게 여행 안 해! 싶겠지만, 이렇게 여행을 하고 났으니, 그 다음 가방을 쌀 때면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기억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 다음 길 위에 섰을 때는 조금 더 가벼워진 몸으로, 더 오래, 기쁘게 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