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2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중 일부를 구독자분들과 나눕니다.
한바탕 비가 내린 후 가을이 왔습니다. 이제 차츰 어두운 밤이 길어지고 공기가 차가워질 거예요. 오래도록 기다렸던 가을의 한복판에서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무더웠던 여름을 돌이켜 봅니다. 유난히 길었던 여름이었네요. 지난했던 계절임에도 끝은 언제나 아쉬워요.
10월, 가을 지나간 여름을 마음껏 그리워하고 싶은 마음으로 ‘어떤 여름’이라는 글감을 가지고 글을 썼습니다. 흐르는 땀과 숨 막히는 더위에 마지막 안녕을 보내며.
- 하자글방 죽돌 물고기
별을 볼 여유가 없었던 저녁과 저녁
그 저녁들이 지나갔습니다.
지난한 여름이었어요. 여러분들의 여름은 어떠했나요?
푸른 잎들 속 피어난 주홍색 꽃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저 꽃은 무슨 꽃일까 궁금해 하던 중 여름에 피는 능소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이나 이 꽃들을 지나쳐 왔구나. 여름의 꽃은 참 아름답구나. 내가 놓치고 있는 여름은 또 무엇이 있을지. 여름을 좋아해 보려 성큼성큼 다가갔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 더위에 쉽게 지치곤 했다. 여름은 가득한 소요를 이끌고 나를 지나쳐 갔다.
이번 여름에는 수많은 이들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 시간 속 반가움을 혹은 지루함을 느꼈다. 소란한 나날들이 계속되었는데, 그러니까 이 여름 동안 사랑하는 누군가를 지독히도 미워했고, 지독히도 사랑했다. 누군가를 부러워했으며 나의 인생이 시시하다는 생각에 슬퍼지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퍽이나 만족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켜켜이 쌓여있던 책장을 정리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우편, 전보 따위의 것들을 엿보기도 하였다. 빛바랜 종이 속 선명히 남아 있는 그들의 글은 따뜻했다. 서로를 향한 다정함은 왠지 모를 위로가 되었다.
이 여름 동안 나는 종종 공차가 되었으며 숲이, 수빈이, 선생님이 되기도 하였다. 안녕하세요 공차입니다. 안녕하세요 숲. 저는 이수빈입니다. 선생님 3분 늦게 오셨으니까 10분 빨리 끝내주시면 안 돼요? 내가 매주 만나는 아이는 나를 만날 때마다 무언가를 먹고 있다. 맛 밤, 치킨, 쿠키, 돼지바, 곱창 등 종류도 다양하다. 가끔은 나에게 권해, 마지못해 먹는 척하지만 실은 참 고맙고 맛있다. 그러나 선생의 위엄을 차리기 위해 거절한 날에는 아이와 헤어진 후 괜히 그것들을 찾게 된다. 돼지바, 피자와 함께 오는 스파게티, 칙촉 같은 것들. 집 오는 길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오며 아까 그냥 먹는다고 할 걸 그랬나? 라는 생각을 하며 한 입 베어 문다. 부슬거리는 표면 안 속 빨간 딸기잼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여름과 마주하고 싶어 그가 내어오는 다양한 작물들을 요리했다. 가지와 호박 그리고 양파와 버섯을 그들의 빛깔과 식감을 살려 쪄낼 수는 없었지만 구워낼 수 있었고, 촉촉한 에그 스크램블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루는 벌레에 물려 붉게 부풀어 오른 피부가 아프기도 했고, 그날 저녁 마신 ‘strawberry cheesecake’라는 술은 달콤했다.
지난한 여름 동안 태양 아래 비 아래 가만히 서 있기도 했다. 이제 능소화는 떨어졌고 발에는 낙엽이 밟힌다. 길거리에 흐트러진 바삭한 낙엽을 부러 밟으며 가을을 경쾌하게 걸어가고 있다. 콰사삭. 겨울잠을 위한 잠옷을 마련했고 창을 열어두고 침대 안에서 꾸물거리는 시간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