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무더운 여름을 무사히 지나고 계신가요? 피부가 타들어갈 것 같이 뜨거운 햇살에, 아스팔트 도로 위에 서있으면 찌는듯한 열기에 땀이 뚝뚝 흘러 괴로웠던 여름이 끝나가네요. 추석이 가까운 지금도 낮이면 뜨거운 날씨에 가을이 올 것 같지가 않아 더이상 절기에 따라 변하는 날씨를 가늠할 수 없어져버린, 기후위기로 변해버린 계절의 감각이 더 또렷하게 실감되는 올해입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저는 뉴미디어 인턴으로 하자와 함께 하게 된 산다화라고 해요:) 대학교를 졸업하며 내가 가치에 동의하는 노동을 하고 싶어 여러 고민을 하다 이 인턴십을 선택하게 됐어요. 저는 기후위기에 대한 여러 활동을 해왔고 개인 프로젝트로도 제게 가장 큰 화두인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을 주제로 인터뷰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어요. 시리즈의 시작을 알릴 겸, 저를 소개할 겸 시작하는 마음을 담아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기후위기 관련 프로젝트들을 하다보면 ‘기후위기 활동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이냐, 어떻게 기후위기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었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게 돼요. 기후위기는 너무도 거대한 문제여서 내 삶과 맞닿은 일로 다가오기 쉽지 않기 때문이겠죠. 저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 커서 자연과 가까이 자라왔어요. 봄이면 나물을 캐고, 여름이면 오디와 아카시아 꽃을 따먹고, 가을엔 도토리와 밤을 줍고 겨울엔 찰밥과 김을 먹으며, 자연스레 제철 음식과 자연의 흐름을 익혀왔답니다.
저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라는 대안학교를 다니며 생태공부를 하고 유기농사를 지었어요. 농사를 지으면서 어릴 때부터 익혀온 자연의 감각, 계절의 흐름이 흐트러지고 있음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었죠.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신 계절 사이의 감각들이 자꾸만 사라져갔어요. 이젠 더이상 절기에 따라 변하는 날씨와 식물들의 변화를 가늠할 수가 없어져버렸죠. 기후위기가 자연이 선물해주는 아름다움과 철마다 주어지는 먹거리,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미래를 앗아갈 거란 위기감이 들었어요. 제게 기후위기는 할머니가 선물해주신 계절의 감각과 내가 사랑하는 순간들의 상실,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는 절망이었죠.
자연스레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지구에 무해한 일상을 살아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때 환경과 축산업 문제에 대해 공부하며 채식을 시작했고 대학에서도 기후위기와 사회학을 공부했어요. 그런데 기후위기에 대해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절망과 우울이 커지더라고요. ‘나 하나 일회용컵 안 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하는 질문, 모두 해보신적 있지 않나요? 어떻게 해야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함께 실천해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다양한 방식의 실험을 상상하고 현실에서 펼치며 마을에서, 학교에서 사람들과 함께 지구를 생각하는 한걸음을 내딛기 위한 기획들을 해나가기 시작했죠.
저는 경기도 화성과 서울의 연희동, 두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해왔어요. 대학에는 함께 기후위기에 대해 공부하고 실천할 든든한 친구들이 있었지만 살고 있는 마을에서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공유할 기회가 없다는 괴리감이 들기 시작했어요. 사실 활동가가 되겠다, 기획자가 되겠다 하는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닌데 마음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리 명명 되더라구요. 화성에서는 마을의 페어라이프 센터에서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에 함께 하고 있었는데, 마을에서 이웃들과 함께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마을 공방들과 함께하는 제로웨이스트 워크숍, 비건 토크쇼 등을 기획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며 활동을 시작했어요. 청년 커뮤니티가 거의 없는 화성에서 활동하다보니, 동네에서 일상을 함께 하며 청년들이 마주하는 여러 문제와 가치관을 나누고 싶어 <화성보통청년들>이란 청년네트워크를 만들기도 했어요. 화성보통청년들에서 기후위기학교를 열어 또래의 청년 기후활동가들을 초대해 이론보다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을 열고, 비건 음식도 해먹고, 함께 제로웨이스트 한달살기 캠페인, 기후위기x주거 공론장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 했어요.
1/1
Loading images...
서울에서는 개인적으로 <제비의 여행>이란 이름으로 연희동을 기반으로 제로웨이스트 비건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해 진행해왔어요. 사람들에게 어렵게만 여겨지는 제로웨이스트와 비건 실천에 대한 문턱을 낮춰 즐겁게 경험해보고 실천할 수 있도록 제안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예요. 제로웨이스트&비건 옵션이 많은 연희동의 로컬 공간들을 여행하며 제비의 일상을 경험해보는 동네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함께 여행하며 연희동이란 동네의 이야기와 제가 일상에서 하는 환경실천에 대한 소개와 제안을 드려요. 이 여행을 통해 함께 제비가 되어준 여행자들도 많답니다:)
한 명의 개인으로서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나가고, 다양한 활동을 해나가며 계속해서 환경실천을 제안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하지만 결국 내 스스로 기후위기 앞에 좌절하지 않고 버티고 살아갈 힘, 함께할 동료들을 얻게 되더라고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마음을 나누고, 새로운 기획을 통해 환경실천을 제안하며 함께 해주는 이들을 만나고, 지칠 때면 희망을 찾아 아름다운 곳들을 여행하는 것이 기후우울에 빠지지 않기 위한 제 나름의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1/1
Loading images...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이 무거운 시대를 살아내고 계신가요? 어떤 장면들로 기후위기를 감각하고, 어떤 순간들에 이 시대를 살아 낼 희망을 얻으시나요? 먼 미래까지 내 삶에 남아있으면 하는 소중한 것들, 사랑해서 지키고 싶은 것들은 무엇인가요? 이 세계를 포기하지 않고 붙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나요? 이 인터뷰 시리즈를 통해 여러분의 이야기를 깊이 듣고 잘 모아 전하고 싶어요. 조금은 바람이 선선해졌을 가을날에 다시 찾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