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기>는 하자 청소년들의 일상과 진로를 주제로 대화한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으며(또는 하려고 하며) 일상을 지키고 있는지, 그들의 To do list 를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2024년 네 번째 일-기는 공유작업실 OOEO를 통해 하자를 처음 만난 창작자 승은의 기록입니다.
-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정승은이고, 하자에서도 본명을 썼습니다. 만 22세, 한국 나이로는 24세입니다. 요즘은 ‘어떻게 나를 먹여 살리면서 내가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형태는 무엇일까?’ 이런 고민이 많아요. 저는 학교에 다니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해요. 현대미술 쪽 작업도 하고 노래도 가끔 부르고,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승은의 To do list
[○] 진짜 내 마음에 드는 작업 만들기
[○] 내 웹사이트 만들기
[○] 사진 작업 해보기
[○] 그래픽 디자인 해보기
[○] 영상 만들어보기
[○] 잡지 만들어보기
[○] 실험적인 글 써서 내보기
[△] 책 내기
[○] 혼자 외국에 가서 한 도시에서 오래 머물러보기
[○] 여행 가서 내 작업으로 포스터 만들어 붙이기
[ ] 작업 과정에서 한 생각들을 꺼내고 모아서 새로운 담론을 만드는 방법 찾기
[○] 무대에서 노래하기
[△] 전시와 퍼포먼스를 결합해보기
[ ] 개인전
[ ] 작업의 가치를 돈을 매개로 교환하고 누군가 소장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기, 어떻게 할지
[ ] 학교 무사히 졸업하기
[ ] 생계를 지탱할 돈 벌 구석을 마련하기
[ ] 경력, 생계, 순전히 좋아하는 마음 사이의 비중 찾기
[ ] 돈 모으기..
[ ] 진심을 진심으로 잘 마주하기
[ ] 내가 믿는 세계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기!
[ ]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고 응원하면서 재밌게 살기
- 평소 하루 일과는 어때요?
일어나고 잠드는 시간이 매일 다르거든요. 학교에 갈 때는 오전 6시 반에 일어나야 할 때도 있고, 가지 않는 날은 오후 12시~1시에 일어나기도 하고요. 보통은 9시 반쯤 일어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기 전에 커피를 내리고, 침대에서 시나 소설을 뒹굴뒹굴하면서 읽어요. 그러면 마음이 차분하고 덜 조급해져요. 미리 정리해 둔 그날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10시까지는 일을 끝내고요. 그 후에는 영화나 책을 보거나 쉬고, 관심 가는 아티스트들 서치하고 그러다 2시~4시쯤 잠에 드는 것 같아요. 큰 틀은 그렇고, 그 안에서 즉흥적으로 바뀌어요.
- 취미나 좋아하는 일이 있나요?
즉흥적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걸 좋아합니다. 집에서 혼자 음악 틀어놓고 춤을 추곤 하는데 그럴 때 살아있다고 느끼고 환기도 많이 돼요.
✔️ To do list : 무대에서 노래하기
어릴 때부터 노래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무대에서 노래하는 게 큰 꿈이었어요. 제 생각에 올해 제 나이가 너무 많은 거예요. ‘더 늦기 전에 해야 하는데’ 생각이 들어서 학교에서 재즈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공연하겠다고 무턱대고 신청했는데 다행히 무대를 잘 했어요. 꿈꾸던 일이다 보니 긴장도 안 되고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기다리던 순간이야!’ 하면서 했죠.
- 그럼 예술을 전공하고 계신 거예요?
입학은 사회학으로 했어요. ‘영상매체예술’을 같이 전공하고 있는데 영문명인 미디어아트(Media Art)가 더 직관적인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제가 느끼는 것에 대해 깊이 파고들고 그걸 표현하는 데 관심을 가져왔거든요. 고등학생 때 학교에 불합리하고 이상한 일이 많았어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었고, 그러다 사회학을 알게 됐어요. 관련 책과 논문을 읽으면 제가 혼자 끙끙대던 걸 적확하게 표현한 말들이 보이는 거예요. 생각도 깊어지는 것 같았고요. 그래서 사회학을 공부하게 됐어요. 그러면서도 표현욕, 창작욕이 있으니까 미술 쪽 수업도 들어봤는데요. 해보니까 너무너무 어렵고 (지금까지 해온 것과) 다른 분야지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이 일을 내 삶에서 없앨 수 없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때부터 수업을 들으면서 부딪혔던 것 같아요.
✔️ To do list : 진짜 내 마음에 드는 작업 만들기
작업을 시작하고 2년 동안 마음에 드는 작업이 하나도 없었어요. 너무 부족한 것 같고 나는 창작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인 것 같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휴학하고 한 학기 동안 작업 하나를 열심히 했어요. 일어나서 잠들기 직전까지 작업하고 그랬죠. 그때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작업이 나왔어요. 그 후로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어서 그 경험을 하게 해준 스스로에게 고마워요.
[ ]️ To do list : 내가 믿는 세계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기!
이런 생각이 없으면 작업을 계속하기가 힘든 것 같아요. 작업을 한다는 건 저의 깊은 내면의 것을 길어 올리는 것인데 그게 일상적인 주제나 말은 아니기 때문에 ‘내가 믿는 세계를 만들겠어’ 하는 마음이 없으면 주저하게 되고, 그러면 작업이 길어지고, 자존감 깎이는 악순환이거든요. 그래서 계속 새기려고 해요.
작업 중, 승은
- 좋아하는 영화 있으세요? 어떤 점을 좋아하세요?
‘에릭 로메르(Éric Rohmer)’라는 프랑스 감독 영화를 좋아해요. 색감이 좋고 보다가 졸 수도 있을 정도로 되게 느리거든요. 그래서 마음에 주는 편안함이 있어요. 그리고 이야기를 되게 잘 짜시는 것 같아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 엮여서 하나의 메시지를 만드는 게 신기하고 멋진 것 같아요.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 2019)> 감독하신 노아 바움백(Noah Baumbach) 감독님 영화도 좋아해요. 시선이 너무 섬세한 것 같아요. 영화에 나온 모든 인물을 다 고려하시는 것 같은데 그게 너무 어려운 일인 걸 알기 때문에 대단하고 멋지다고 생각해요.
- 삶의 좌우명이나 모토가 있을까요?
자주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쫄지 마. 쫄지 말자. 알 바?’ 이거요. 많은 용기를 줍니다. 제가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많은 성격인데 작업을 하다 보면 사람들 다니는 곳에서 퍼포먼스를 하며 촬영하거나, 전체적인 분위기와 다른 내 의견을 확실히 주장해야 할 때가 많아서 그런 말을 하기 전에 항상 생각해요.
- 승은의 삶에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올해 하자에서 공유작업실을 쓰면서 ‘동료라는 존재가 이렇게 아름답구나’를 알게 됐어요. 계속 창작을 해왔지만 전공이 다르다 보니 힘든 걸 말할 곳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공유작업실에 오니 작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냥 말할 수 있고 그 이야기를 다들 진심으로 믿는 거예요. 그 덕에 이번에 학교에서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고 기댈 수 있게 되었어요. 그게 작업에도 영향을 주니까 동료가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공유작업실에서, 승은
[ ]️ To do list : 학교 무사히 졸업하기
사실 자퇴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어요. 힘들게 들어갔지만 아카데믹한(학구적인) 권위나 전통이 강해서 그게 제가 하고 싶은 건 아니라고 느꼈어요. 지금은 학교에서 동료를 만날 수 있어서 좋고 제가 마음을 열면 도와주려고 하시는 어른들도 있는 것 같아서 지금에서야 학교를 좀 좋아하게 되었어요. (웃음) 짧은 시간이 남았지만 잘 지내다 졸업하고 싶어요.
[ ]️ To do list :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고 응원하면서 재밌게 살기
이런 삶을 올해 살아보니까 너무 좋아서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결국 제가 제 일을 잘 하고 있어야 그렇게 살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는 것 같아요.
- 요즘 하는 고민이 있어요?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 더 자세히는 제 생계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긴 인생 동안 작업과 병행하며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일의 형태는 뭘까 그런 것들이 고민돼요. ‘생계’, ’커리어’,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 이 3가지의 비중을 어떻게 두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전시나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너무 돈이 많이 드는데 그 세 개 중의 하나라도 무너지면 와장창 무너질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고민이에요.
- 승은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10대 때와 현재의 진로 고민이 비슷한가요, 다른가요?
저는 느낌이 완전 다른 것 같아요. 물론 10대 때도 진지하게 뭘 하고 살까, 좋아하는 일은 어떻게 할 수 있지?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해 왔는데 지금은 스스로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확신이 있고 주변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훨씬 실질적으로 헤쳐 나가는 느낌이에요. 지금은 선택과 포기가 있다고 하면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리고 포기했을 때는 어떻게 다독이고 살 것인지 그런 걸 고민하고 있고요. 제 작업을 보일 때 돈이나 시간을 들여서 책을 구매하시거나 그런 분들이 계시니 신뢰에 대해서도 무겁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책도 만드세요? 이번에 처음으로 독립 출판을 해 보고 있어요. 작년 이맘때쯤 시작했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지 몰랐죠 (웃음) 고생을 많이 했고, 7월에는 제발 나올 수 있으면 좋겠어요.
[ △ ]️ To do list : 책 내기
혼자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안에 쌓인 말이 너무 많아서 쓰기 시작한 여러 개의 글이 있어요. 그중의 하나가 양이 많아져서 책으로 내야겠다고 생각했죠. 저는 난청이 있어서 소리가 잘 안 들리기도 하는데요. 그러면서 경험한 여러 소리의 세계와 거기서 시작한 생각을 적은 책이에요. 그동안 제가 듣던 소리만 알다가 진단을 받고 나서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세계가 깨지는 느낌이었죠. 짧은 조각글 뭉텅이로 이루어져 있고, 책 표지도 깨진 조각을 촬영해서 만들었어요.
* <<소리, 자두, 조각>>, 정승은 언어조각집, 오다도, 2024년 8월 초 출판 예정
난청으로 겪게 된 여러 소리 현상들과 그에 대한 사변들을 글로 적는 프로젝트.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릴 때, 청력이 또 달라졌음을, 알던 세상의 법칙이 깨어졌음을 느꼈다. 날 것의 소리 현상을 덩어리처럼 응시하며, 언어로 조각한다. 청력에 의해 언어에서 탈락된 말소리들, 정체 모를 외국어, 동물들의 언어, 이명, 매끄럽지 못한 사이보그로서의 소리, 층간소음은 뒤섞인다. 인지 세계에서 배제된 것들, 오작동한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가능성의 공간을 창조한다. (추가 정보)
️✔️ To do list : 내 웹사이트 만들기
중학생 때부터 하고 싶었거든요. 생각이 많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그런 걸 담아낼 수 있는 걸 만들고 싶었는데 웹사이트에서는 그걸 구현할 수 있잖아요.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들었고 여러 번의 변화를 거쳐서 지금도 있어요. * 승은의 웹사이트(모바일 접속)
✔️ To do list : 사진 / 그래픽 디자인 / 영상 / 잡지 작업 해보기, 실험적인 글 써서 내보기
위의 것들은 고등학생 때나 대학생 초반에 막연히 해보고 싶어서 해봤어요.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 들 때 있잖아요. 그래서 다 해봤는데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거예요. 진짜 기본적인 것도 못 해서 쩔쩔맬 때도 있고 너무 힘들었어요. 근데 1년 정도를 쉬고 다시 해 보니 전에 해둔 게 있으니까 생각보다 잘 되는 거예요. 두 번째 시도를 더 재밌게 했던 것 같아요.
[ ]️ To do list : 개인전
그동안 해왔던 작업이 묘하게 닮은 게 있고 같이 있을 때 더 부각되는 감각이 있거든요. 그래서 개인전의 형식으로 보였을 때 잘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개인전이 잡혔어요. 8월 말이라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정승은 개인전 <피폭된 신체들의 집 Shelter for the Shattered>, 2024.8.27.-9.1., 사이아트스페이스 갤러리 더플로우
- 올해 계획이나 하고 싶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단 벌여 놓은 일을 잘 수습해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이번 개인전이 학교에서 하는 과제전 말고는 처음 하는 전시인데요. 걱정되고 감사하기도 하면서 설레기도 한 그런 상태예요. 첫 개인전이니까 계속 생각날 텐데 나중에 떠올려도 후회가 없을 만한 좋은 시작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의 제 여정에 제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기도 하고요.
- 진로나 미래와 관련해서 또래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진로라는 건 자기만의 답을 만들어 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자신의 관심사나 뾰족해 보이는 것들을 잘 따라가면 좋은 것 같고, 다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면 좋겠어요. 자기만의 형태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쩌다 그렇게 살게 되었는지, 무엇에 끌리고 어떤 걸 찾다 보니까 지금처럼 살고 있는지 궁금하고 듣는 것도 너무 재밌거든요. 만났을 때 물어보는 게 참 어려우니까 얘기를 많이 해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