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2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중 일부를 구독자분들과 나눕니다.
7월의 글감은 ‘이틀 째 마르지 않는 빨래를 기다리며’입니다. 장마로 인해 비가 많이 내리는 7월은 날씨에 대한 소재를 꼭 글에 넣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비와 습도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친구는 비오는 날에 꼭 자주가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폭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날들을 잊지 못합니다. 또 어떤 친구는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달콤한 과일을 실컷 먹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기후위기 속 더 나은 삶에 대한 상상을 멈추지 않더군요. 그래서 동료들과 각자가 느끼는 여름을 적어보았습니다. 오랫동안 눅눅한 계절 7월을 마주하는 당신은 어떤 모습인가요? 부디 안전하고 편안한 여름이 지나길 바라봅니다.
- 하자글방 죽돌 어진
과일 씨 삼키기
전철의 지연 이유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신주쿠역에는 하루 십이만 명의 사람이 모이고 흩어진다고 한다. 열한 가지 색깔의 전철들이 지나다니는 그 커다란 야외 승강장에서 서서 늦는 전철을 기다린다. 온 피부가 습기에 끼어버린 것 같은 기분. 승객 투신. 인명 사고. 이런 한자들을 읽을 수 있게 되어버렸다. 전철이 승강장으로 들어온다. 아주 강한 바람이 분다. 끈적해진 피부에 닿는 차가운 낯선 감각. 전철이 얼마나 크고도 빠른지 늘 잊지 못하게 한다. 전철의 문이 열리기 전까지 어떤 순간을 생각한다. 무언가가 아주 강하고 빠른 것을 만나 순식간에 형체 없이 부서지는 그런 순간. 그렇게 거의 매일을 조금 늦은 전철을 탄다. 십이만 명 중 하나가 되어 만원 전철에 몸을 욱여넣는다. 전철 안은 언제나 비좁다.
열두 시쯤 퇴근을 하면 막차를 타고 집 근처 역에 내린다. 전철이 지나다니는 다리 밑을 따라 주욱 걸어간다. 작은 담배 가게가 보인다. 포장마차 정도의 크기에, 벽의 전면이 담배로 가득 채워져 있는 곳. 가게 앞에는 투명 우산을 든 사람들이 담배를 피고 있다. 쭈그려 앉아, 혹은 벽에 기대어 연기를 내뱉는 사람들. 누구도 올곧게 서서 담배를 피지는 않는다. 힘을 주욱 빼고 그냥 그렇게 핀다. 담배 가게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어김없이 향이 타는 냄새가 난다. 담배의 냄새와 아주 비슷하지만 끝이 맵지 않은 냄새. 향을 태우는 집이 어디인지 궁금하여 고개를 들어 보지만 늘 모든 창의 불이 꺼져있다. 분명 누군가는 매일 어둠 속에서 향을 태운다. 힘을 주욱 빼고 누워서. 조금 더 걸어 집으로 향한다. 분명한 열대야의 날씨다.
휴게 시간마다 일하는 곳 근처에 생긴 중고 서점에 간다. 하루 열두 시간 근무 중 한 시간 반의 휴식을 그 서점의 100엔 코너 가판대를 구경하며 보낸다. 서늘할 정도로 찬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오로지 앨범의 표지만을 보고 앨범들을 추려낸다. 그날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구매한다. 다시 일하는 곳까지 걸어가며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 해당 앨범을 검색하여 듣는다. 높은 확률로 음악이 마음에 든다. 어떤 아름다움의 감각이 비슷한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아름다움의 감각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집에 돌아오면 냉장고 위에 앨범 시디들을 차곡차곡 쌓아둔다. 빨간 수영복을 입은 여자가 우주선을 타고 있는 앨범. 공주풍 흰 원피스에 어울리지 않는 체크 바지를 입고 있는 여자가 얼굴을 가리고 있는 앨범…. 침대에 눕는다. 친구가 보내둔, 내가 좋아할 법한 짧은 영상들을 보고 조금 웃는다. 친구에게 고맙다고 적고 눈을 감는다. 빗소리가 들린다. 물론 내 방에는 시디 플레이어가 없다.
이주 째 매일 비가 내린다. 먹을 것이 없지만 마트까지 걸어갈 자신이 없어 집 앞 복숭아 트럭에서 비싼 값을 주고 복숭아 두 알을 샀다. 조금 물렁하다 싶었더니 반을 가르자마자 두 알 모두 잔뜩 갈색 멍이 들어있다. 도려낼까 하다가 그냥 그대로 접시에 담는다. 침대에 앉아 창문을 좀 연다. 담배 냄새가 난다. 멀리서 전철 소리도 들린다. 비가 정말로 많이 온다. 이등분한 복숭아를 먹는다. 잔뜩 물러 정말로 맛이 없다. 그래도 다 먹는다. 너무 덥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