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2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중 일부를 구독자분들과 나눕니다.
7월의 글감은 ‘이틀 째 마르지 않는 빨래를 기다리며’입니다. 장마로 인해 비가 많이 내리는 7월은 날씨에 대한 소재를 꼭 글에 넣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비와 습도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친구는 비오는 날에 꼭 자주가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폭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날들을 잊지 못합니다. 또 어떤 친구는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달콤한 과일을 실컷 먹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기후위기 속 더 나은 삶에 대한 상상을 멈추지 않더군요. 그래서 동료들과 각자가 느끼는 여름을 적어보았습니다. 오랫동안 눅눅한 계절 7월을 마주하는 당신은 어떤 모습인가요? 부디 안전하고 편안한 여름이 지나길 바라봅니다.
- 하자글방 죽돌 어진
회색 냄새
침대에 누워 초록색으로 물들어버린 노란 이불을 바라본다. 화장실에 가는 김에 시끄럽게 돌아가는 제습기로 걸어가 쾅 발로 찬다. 충격에 잠잠해지나 싶더니 몇 분 되지 않아 다시 우우웅 소리를 낸다. 다시 일어나서 발로 한번 차볼까 하다 그냥 침대에 눕기로 한다. 벽에는 아직 천장까지 타고 올라가지 않은 곰팡이가 피어있고, 창밖에선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빗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핸드폰을 들어 날씨 앱을 누르고 들어가 오늘 비가 오는 시간대를 검색한다.
눈을 뜨고 나서도 오랜 시간 누워 있는다.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다던 그 친구는 지금 책을 읽고 있을까 생각하며 천장을 바라본다. 배에서 허기가 느껴질 때쯤 밥을 먹기 위해 몸을 일으켜 세운다. 빨래 건조대 하나로 가득 찬 방이지만 몸을 돌려 꾸역꾸역 옆으로 밀며 냉장고로 향한다. 새벽 내내 돌아간 제습기 덕분일까. 건조대에는 말라있기보단 입을 수 있는 정도의 습기를 물고 있는 천이 되어버린 검정 옷들이 걸려있다. 대충 옷들을 만져보다 한 티셔츠의 목 부분에서 코끝이 찌릿한 냄새를 맡아버리고 만다. 갑자기 예민해진 나는 모든 티셔츠와 바지, 속옷, 양말을 하나씩 집어 코에 갖다 댄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며 제발 이 티셔츠 하나에서만 나는 냄새길 바라며 열심히 냄새를 찾는다.
‘근데 걔한테는 뭐랄까… 조금 특이한 냄새가 나’
냄새투성이 세상 속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냄새를 자연스럽게 익혔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냄새가 나는 옷을 입고 온 친구에 대해 이야기한 일, 쥐 오줌 냄새가 진하게 나는 집에서 자라온 것을 숨겼던 일, 꽃향기가 나는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온 친구를 부러워하던 일, 놀러 간 집 문을 열자마자 좋은 냄새를 맡으며 신발을 벗었던 일, 누군가 지나갈 때 항상 숨을 참으며 걸었던 일 … 눅눅한 빨래가 환영받지 못하는 것도 절대 보여줘서는 안 될 향을 뿜고 있기 때문이라고, 내 코는 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어떤 가지치기 속에서 냄새를 확인 당했던 날들을 지나 수도 없이 빨래에 코를 박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너무 인위적이지도, 그렇다고 좋은 향이 약하지도 않는 “자연스러운” 섬유유연제 찾기에 몰두한다. 아무리 빨아도 매콤한 고춧가루 향이 배어버린 옷을 입고 나선 날에는 나만 다른 향이 나는 것에 몇 번이고 옷깃을 들쳐 코에 가져다 댄다.
가장 코가 번뜩이고 냄새에 취약한 계절을 건너며 쉬지 않고 벌렁거린다. 함께 걷는 물가에서 비릿한 냄새를 맡고, 집에선 환기되지 않은 요리의 냄새를 맡는다. 지하철 옆자리 회사원은 어떤 향수를 쓰길래 이렇게 좋은 향이 날까 궁금해하다가도, 눅눅한 내 옷자락을 한번 더듬어본다. 반대편 창에 환영받던 냄새와 통제받던 냄새 속에서 갈팡질팡 하는 내가 비친다.
돌아온 어두운 방에선 제습기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린다. 손을 씻고 건조대에 널린 옷들을 하나씩 천천히 만져본다. 미세하게 느껴지는 냄새를 하나씩 들춰보려다가 그냥 두기로 한다. 그러고는 여전히 눅눅한 옷들과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