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2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중 일부를 구독자분들과 나눕니다.
4월 글감은 “일상의 기술”입니다. 여러분은 진부하고 시시한 기분에 갇히지 않기 위해, 피로와 엉망진창에도 진이 빠지지 않기 위해, 혹은 그 속에서 즐겁게 지내기 위해, 그리하여 또다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나요? 만약 충실했던 일상의 기술이 여지없이 패배해버린다면 여러분의 삶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 하자글방 죽돌 청신
일단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벽시계를 걸어두는 편이 좋다. 시침과 분침의 위치가 어딘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흐릿한 눈과 정신을 단박에 일깨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경우, 늦잠에 동반되는 ‘쎄한 개운함’ 덕분에 늦잠을 잤다는 사실 자체는 시계가 없어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시계는 그 감각을 누리는 단계로부터 ‘그래서 얼마나 늦었는지’ 깨닫는 단계로 빨리 이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옆으로 누워 자는 사람이라면 침대 양옆의 벽에, 정자세로 잠자는 사람이라면 발치의 벽에 벽시계를 걸어두는 것을 추천한다. 천장은 아무래도 불안하니, 시계를 붙여둔 접착제의 효력이나 시계의 말랑말랑함을 완벽히 신뢰하는 게 아니라면 피하도록 하자.
얼마나 늦어버렸는지 일단 깨달았다면, 그리고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늦어버리지는 않았다면 가장 시급한 고민은 이것이다. “지금이라도 일어나는 것이 나은가?” 위험에 빠진 일정이 무엇인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테니 여기서 일반적인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이런 물음 따위 던질 여유 없이 바로 분주하게 몸을 일으켜야 할 수도 있다 – 주로 돈이나 어렵게 얻은 기회가 걸려 있는 순간들이다. 반대로, 나의 나태함쯤은 눈감아 줄 친구와의 약속이나 썩 재밌지만은 않은 학교 수업 정도라면, 미련 없이 그 일정을 놓아버리고 여유를 조금 더 만끽할 수도 있다. 다만 어떤 결론을 내리든 고민을 너무 길게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결론이 어떻게 나더라도,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선택의 여지가 없어져버리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늦잠을 자버렸음을 깨닫는 순간의 무력함은 피할 수 없다. 늦잠은 내가 삶을 온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불쑥 드러나버리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늦잠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는 결국 나의 무능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의 문제가 된다. 불쑥 드러나버린 나의 무력함과 무능함을 매끄럽게 다시 감춰버리고 마는 것은 유용하지만 어딘가 찝찝하다.
그럼에도 남은 하루를 감행할 힘은 어디서 얻어야 할까? 일단 남은 일정들이 나를 움직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남은 힘은, 늦잠으로부터 내가 무능한 만큼이나 세계가 다른 힘들로 넘실댄다는 사실을 느끼는 데서 온다. 늦잠을 일상의 오작동으로 섣불리 축소시키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신기함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데서 온다. ‘쎄한 개운함’에서 ‘개운함’ 쪽에 더 무게를 실어보는 것이다.
때로 늦잠은 내가 의식적으로 길러낸 능력은 아니지만 살아오며 체득한 기술들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나는 짜증나는 알람 소리에는 깨어나지 않아도 희미한 새소리나 스며드는 햇살에는 반응할 수 있고, 피곤함에 찌들어버리기 전에 알아서 필요한 만큼 더 잠을 자기도 하며, 때로는 아슬아슬하지만 약속 시간 직전에는 잠에서 깨어날 수 있음을, 늦잠을 통해서 알게 된다.
이런 것들을 알아차리는 게 늘 쉽지는 않다. 그래도 내가 아는 한 가지 방법이라면, 이불 속에 푹 파묻혔다가 헛웃음을 지어보는 것이다. 이불 속에서 꿈틀거리며 지금이라도 일어날지 말지 머리를 굴리다 보면, 웬만한 일들이 늦잠을 연장하는 것에 비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욕망하고 소망하고 목표하는 것들이 실은 이토록 하찮은 것들이라니. 헛웃음이 난다. 그런 것들로 살아가고, 움직이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나는 또 얼마나 하찮은지. 그러나 하찮음은 되려 내게 남은 하루를 대면할 힘을 준다. 들어올리기에는 무거운 것보다 가벼운 것이 나으니까. 내가 첫발만 뗀다면, 이토록 가벼운 나를 함께 실어 나를 다른 힘들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