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2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중 일부를 구독자분들과 나눕니다.
3월 글감은 “음식은 입맛에 맞으셨나요?”입니다. 여전히 추운 날씨로 옷을 껴입게 되지만, 어쩐지 3월이라는 말을 들으면 맛있는 나물이 생각난다는 글방 동료의 말에 시작된 글입니다. 나물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식사와 연결되었습니다. 글방 동료들은 먹는 것과 식사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거든요. 하루 최소 두 번의 식사를 거쳐야 하는 우리는, 자연스레 끼니를 제때 챙겼냐는 말로 당신의 안부를 묻기 때문일까요. 그렇기에 이번 글감은 복잡한 나날들을 보내는 우리와 당신께 안부를 묻는 글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식사는 잘하셨는지요. 그리고 그 식사는 입맛에 맞으셨는지요!
- 하자글방 죽돌 어진
최근엔 뭔가를 먹은 기억이 없다. 끼니마다 입에 뭘 넣어주기는 하는데 … 그건 먹었다기보다는 떼웠다에 가까운 행위들일 것이다. 학기가 시작한 지 이주일 나는 일찌감치 아침 밥 대신 아침 잠을 선택했고, 온종일 긴장 상태를 유지하느라 점심밥은 가장 가까운 식당의 가장 저렴한 메뉴를 시간 안에 욱여넣기에 바빴다. (대체로 분식집의 김밥이다.) 터덜터덜 집에 돌아온 뒤 저녁은 인스턴트 볶음밥을 볶아 비슷하게 퇴근한 엄마와 나눠 먹는다. 몇 년전만 하더라도 우리 집은 라면을 포함한 인스턴트식품이 절대 통과 할 수 없는 결계가 쳐져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 엄마가 다시 직장에 다니기 때문이고, 내가 입시 학원에 짱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밥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노동력이 드는 일이고, 9-6의 노동을 (혹은 학업을) 하고 돌아온 사람은 그저 쉬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엌 찬장에는 라면이 자리 잡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냉장고 야채칸에 야채 대신에 인스턴트 음식 봉지들이 쌓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수가.
아이러니하게도 영혼 없는 칼로리들을 입에 욱여 넣으며 새롭게 생긴 취미는 허영만의 만화 ⌈식객⌋을 읽는 것이다. 식객은 전국을 떠돌며 식재료를 판매하는 차장수 성찬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요리만화이자 20년 전 한국의 식문화에 대한 보고서다. 식객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그저 위만 채우는 것이 아닌 마음을 채우고, 관계를 잇고, 어떤 시절을 떠나보내거나 맞이하는 역할들을 해낸다. 그리고 음식이 그런 역할을 해내도록 음식에 사용되는 재료가 어느 땅에서 자라나고 어떤 계절에 피어나고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 내는지를 꼼꼼하게 따져 설명한다. 식객 속 인물들은 음식에서의 효율과 가격 같은 것을 따지지 않는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맛. 가장 ‘맛있는 맛’이다.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충족시켜 주었는지 기억 나지 않는 감각을, 선택지의 가장 뒤편으로 미뤄놓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그 인물들은 각기 다른 행복의 얼굴을 띄고 있다. 그렇게 27권, 135개의 음식에 담긴 스토리들을 읽으며 나는 누가 만들었는지도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인스턴트 볶음밥을 입에 넣는다. 음 맛없다. 음식은 맛 없고 흑백 인쇄 된 만화 속 음식은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