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2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중 일부를 구독자분들과 나눕니다.
2월의 글감은 ‘영감과 힘’입니다. 우연히 읽게 된 책 추천사를 보고 떠올리게 된 글감입니다. 글을 쓰게 만드는 만남. 그 이유가 무엇이든 참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누군가의 글에도 그러한 만남이 있을 거라는 걸 깨닫습니다. 제가 헤매이던 책장 속 책들 역시 수많은 만남이었다는 걸요. 사람과의 만남뿐 아니라 어떤 순간과의, 어떤 물건과의 만남일 수도 있겠죠. 이상하게 평소보다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는 만남일 수도 있겠네요. 글방 동료들을 움직이는 것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해낼 영감과 힘을 받는 순간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 하자글방 죽돌 물고기
할머니는 이사를 앞두고 있다. 새집은 구조상 베란다가 좁아서 키우던 식물을 몇 개는 두고 가야 한댔다. 베란다 한구석이 빼곡히 초록으로 가득하다. 할머니의 화분은 많기도 많고 쉽게 옮기 힘들 만큼 무겁고 큰 화분도 몇 개 있다. 아쉽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아깝다고 했다. 소중한 것을 두고 하는 말에는 아까움보다 아쉬움이 더 적합하리라 생각했는데,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아까움이 더 어울렸다. 아쉬움과 아까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게발선인장이며 꽃기린이며 하는 식물 이름들에 나는 관심이 없는데 할머니는 식물들을 예뻐하고 그릇 깨지는 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면서 식물 잎사귀 하나 떨어진 건 아주 아까워한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는 저 식물들과 내가 동지라고 생각했다. 그 여름은 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남은 힘이 없어서 도망친 거였다. 복숭아를 깎아 먹고 영화를 봤다.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일어나면 날이 환하게 밝아있는 게 좋았다. 중학생 때까지 할머니 손에 컸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서울로 올라온 뒤로는 할머니를 뵈러 자주 내려오지 못했다. 2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공백이 나와 할머니 사이에 존재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그간 나는 어딘가 많이 상했다. 밥을 제때 먹기 어려워하고 잠을 아주 늦게 자는 사람이 되었다. 규칙적인 삶이 한 번 놓치면 되찾기 어려운 습관이라는 걸 알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몇 년 사이 급격히 허약해진 손녀를 할머니는 의아해했다.
이상하다. 나는 너 아주 건강하게 키웠는데.
그 말을 듣는 내 뒤편에는 할머니가 기르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무성한 초록 잎들이 큼직하게 생명력을 뿜어냈다. 할머니의 의아한 표정은 마치 정성 들여 키웠는데도 혼자만 시들어 있는 식물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키운 것 중 나만 이렇게 시들하네. 이런 건 들키지 말아야 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들켜서 좋아서 막 웃었다.
고2의 여름처럼 지금도 변함없다. 나는 할머니 집에 머무르는 동안 걔네랑 비슷한 입장이 되어 지냈다. 추운 데 안 있게끔 따뜻하게 돌봐지고 그랬다.
나를 회복시키는 순간이 있다. 무엇으로부터 상처받았는지, 어떤 식으로 소진되었는지는 그다음의 문제이다. 앓는 동안이 아니라 회복하는 동안에 나를 되살려 놓는 힘이 생긴다. 나는 힘이 나면 늘 쓰곤 하니까 그건 ‘영감’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영감 하면 아주 가까이에서 부유하는 단어들이 있다. 예술가, 뮤즈, 돈, 천재, 재능, 낭만…. 나는 영감에게 편견이 있다. 이럴 때 정의를 찾아보면 참 좋다. 영감 靈感.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기발한 착상이나 자극. 삶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나를 제자리에 돌려놓고야 마는 일들이 자꾸 생긴다.
산책하면서 보는 창백한 달, 하이볼, 오래 들은 노래, 여름엔 복숭아 겨울에는 딸기. 탱고를 잘 추고 페라리를 잘 모는 게 당신이 살 이유라고 대답하는 영화. 더는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없을 때도 혹시 한 걸음 더 시도해 볼 가치가 있을까 봐 발을 내딛게 하는 힘이 무엇이냐고 묻는 배우의 인터뷰.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 온갖 종류의 상실로부터 부지런히 채워지던 시간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