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기>는 하자 청소년들의 일상과 진로를 주제로 대화한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으며(또는 하려고 하며) 일상을 지키고 있는지, 그들의 To do list 를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2023년 여섯번째 일-기는 공유작업실 멤버로, 그림 작업을 하고 있는 창작자 재지의 기록입니다.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이재민이고, 하자에서는 재지라는 별명을 쓰고 있어요. 나이는 스물넷이고요. 원래 음악을 좋아했는데 최근 노래 듣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어요. 주로 밴드음악, 전자음악을 듣습니다. 그리고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해요.
재지의 To do list
너무 늦게 잠들지 않기
매일 조금씩이라도 운동하기
휴대폰 멀리하기
생각나는 드로잉 화면으로 옮기기
만나는 사람들과 많이 대화해 보려는 마음 먹기
글쓰기
내가 뭘 좋아하고 하고 싶은지 평소에 생각하기
해보지 않았던 것들 배우기 (막연하게 해보고 싶었던 것들)
평소에 재밌는 생각 하며 살기
내 작업을 어디에 써먹으면 좋을지 생각해 보고 실천하기
꾸준히 작업실 나오기
돌아다니면서 사진 많이 찍고 다니기
내가 가진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려 하기
집 꾸미기
- 인터뷰 전에 일하고 온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공유킥보드 수리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동네에서 아저씨들 따라 막일을 해본 적이 있어서 공구를 다룰 줄 알거든요. 드릴, 그라인더 사용법이랑 킥보드 작동 원리를 조금만 알면 할 수 있는 일이라 괜찮게 하고 있어요. 제가 고향에 살다가 2월에 서울에 올라왔는데요. 이사하면서 돈이 많이 필요하게 돼서 최대한 빨리 일을 찾아서 시작했어요. 진로랑은 관련 없는 일이지만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고향은 어디예요? 경상남도 양산이요. 그중에서도 시골 마을에 살았어요. 서울에 이사 오기 전에는 서울에서 단체전(전시) 참여할 기회가 있거나 하면 숙소를 잡고 한 달 정도 있다 돌아가고 그랬는데요. (서울에) 올라와서 사는 게 더 재밌겠다 싶어서 빨리 올라왔어요.
- 그림 작업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주로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업 태도는 가볍게 바라보는 거예요. 어떤 사건이나 사회적인 일을 다룬다고 하면 관점은 무겁지만 표현할 때는 귀엽거나 웃길 수 있도록, 그렇게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 커서요. 주제는 주로 일상에서 찾아요. 현실과 엮인 상상을 할 때도 있고요. 예를 들면 지하철에 탈 때 내리는 사람이 다 내리기 전에 밀치고 들어가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저런 사람이 더 있나?’, ‘이럴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재밌게 표현해서 그리기도 해요. 아직은 가지치기가 잘 안되고 저 재밌자고 하는 느낌이라, 이래도 되나 싶을 때도 있어요.
- 그림은 언제부터 좋아하셨어요? 그림을 배운 적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그림을 배운 건 한 달 정도밖에 없어요. 입시라든지 목표를 갖고 배운 건 아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 잠깐 배우고 그만뒀고요. 중학생 때부터 끄적거리는 낙서를 좋아했는데 그러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낙서가 아니라 다른 것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지금도 작업을 낙서처럼 하고 있어요. 그게 좋아서요.
숫자 한 걸음 | 머릿속에 처리해야 하는 숫자가 많을 때를 표현해 봤어요. 한걸음에 월세 생각, 다음 한걸음에 사고 싶었던 물건 가격, 또 한걸음에 저녁 메뉴 등.
컵 20가지 | 평소 예쁜 식기류나 잔을 갖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그려 본, 20가지 디자인의 잔이에요!
- 그림을 그리고 공유하면 반응을 듣게 되잖아요.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나요?
저는 제 상상을 그리기도 하고 현실적인 것을 그리기도 하는데 제가 그리는 상상과 현실의 간극이 크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상상도 좋지만 누구나 봤을 때 뭔지 알 수 있는 작업도 많이 하면 사람들에게 더 잘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피드백이었는데 공감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뭘 했을 때 “이건 구리다, 짜치는데?” 해주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이걸 했을 때 그 사람이 보면 구리다고 생각할까? 이런 식으로 기준까지는 아니지만 반응을 생각하면서 작업하는 것 같아요. 믿을 만한 사람이거든요. 돌아보면 그 피드백에 저도 공감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 어릴 때부터 상상을 좋아했어요?
뭔가를 보고 대상과 똑같이 그리는 것도 좋아했는데요. 그 대상에 항상 뭘 달았어요. 뿔이나 날개 같은 거요. 어릴 때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를 너무 좋아했어요. 팀 버튼* 영화도 좋아하고요. 그때 좋아하던 것들이 계속 남아있는 것 같아요.
*팀 버튼(Tim Burton): 영화 감독.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유령 신부>, <가위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연출.
- 취미나 좋아하는 일이 있나요?
최근에 디제잉을 배우게 돼서 취미가 됐어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파티에 놀러 가는데요. 어떤 클럽에 파티가 있어서 갔더니 그런 곳에 갈 때마다 종종 만났던 분이 디제잉 배울 생각이 있으면 알려주겠다고 하셔서 배우게 됐어요. 직접 해보니 보는 거랑 다르게 어렵기도 하더라고요. 근데 재밌어요.
DJ
- 재지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아직은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겉과 속이 다른 건 아니지만요. 남들 시선을 신경 쓰면서 살지만, 내가 재밌는 건 해야 하는 사람. 다 좋다고 하다가도 싫으면 안 할 때도 있고, 친구들 따라 할 때도 있고 휘청휘청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일관적으로 생각하는 건 ‘내 할 일은 내가 하자.’ 그런 사람이 되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어요.
- 취향과 관련해서 좋아하는 영화나 책, 음악이 있나요? 어떤 점이 좋아요?
최근에는 밴드 ‘효도앤베이스’, ‘새소년’, ‘실리카겔’이 좋아요. 저는 몽환적인 노래도 좋고 귀가 찢어지는 기타 소리도 좋아하는데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그런 음악을 좋아하셨어요. 예를 들면 ‘건즈 앤 로지스’의 웰컴 투더 정글(Welcome to the Jungle), 파라다이스 시티(Paradise City), 그리고 록 밴드 ‘너바나’라든지 어머니가 엘피를 좋아하셔서 저도 지금까지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전자음악이 좋은 이유는 ‘뚱뚱띵띵’ 하는 소리가 좋아서요. 음악도 그렇고 이미지적인 것도 그렇고 단순한 게 좋아요. 옷 입을 때도 제가 봤을 때 테트리스처럼 맞는지 보고 옆으로 삐져나가는 느낌이 들면 잘 안 입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요? 한 손에 반지를 했으면 다른 손에는 과하게 뭘 하지 않거나, 가방이 특이하면 옷은 좀 죽인다거나 그런 느낌으로요. 복잡한 걸 안 좋아하는 건 아닌데 제가 표현하거나 걸치는 건 단순한 게 좋아요.
- 요즘 하는 고민이 있을까요?
고민이 많지는 않은데 지금 하는 일이 만족도가 높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지 않아서 ‘내가 안주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너무 안주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요. 그래도 작업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아요. 제 그림 스타일은 제가 좋으니까 그렇게 고민되지는 않거든요.
- 재지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10대 때와 현재의 진로 고민이 비슷한가요, 다른가요?
10대 때도 고민을 많이 안 했던 것 같은 게 그때도 별생각 없이 대학에 안 갔어요. 처음에는 누가 (대학에 왜 안 갔는지) 물어보면 그럴싸하게 말하려고 노력하기도 했지만 진짜 별생각 없이 안 갔어요. 다시 생각해보면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요. ‘그시간에 다른 거 하면 되지 않나?’ 생각했고요. 그래서 그때는 생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고민이랄 것이 없었고, 제가 하고 있는 게 좋다는 것만 느끼고 그거에 대한 깊은 고민은 안한 것 같아요. 지금은 제 작업을 어디에 써먹지?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이네요.
✔️ 휴대폰 멀리하기
쇼츠랑 릴스를 너무 많이 봐서 좀 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내 안을 좀 봐야 하는데 자꾸 남의 것만 보니까 큰일 나겠다, 이미 큰일 났다 싶어서요. 어떤 식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일단 휴대폰에서 유튜브를 삭제했어요. 아이패드로만 보려고요. 그럼 대중교통에서만큼은 안 보게 되잖아요. 자기 전에도 안 보게 되고요. 그리고 보고 싶을 때는 다른 것을 뭐든 하려고 해요. 그림을 끄적거릴 때도 있고요. 멀티태스킹을 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것 같아서 최대한 안 하려고 하고 있어요. 유튜브 안 봐야지가 아니라, ‘멀티 안 하기’인 것 같아요.
✔️ 만나는 사람들과 많이 대화해 보려는 마음 먹기
원래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 대화 해보고 싶은 사람이랑 있어도 말을 많이 걸지 않았거든요. 궁금한 게 있어도 잘 묻지 못했고요. 그래서 요즘은 누구 만나기 전에 마음을 먹고 가요. 그러면 좀 말을 하게 되고, 그렇게 하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아서요.
✔️ 글쓰기
글을 일기처럼 쓰는데요. 최근에는 편지를 많이 썼어요. 몇몇 사람들 신청을 받아서 메일로 편지 보내주는 걸 했거든요. 두 달에 한 번씩 보내는데 초반에는 답장을 해주는 분도 계셨어요. 그러다 점점 ‘누가 읽겠어?’ 하고 잘 안 보내게 됐는데, 편지 언제 보내냐고 물어보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래도 한 명은 있네?’ 싶었죠. 어디에서 신청할 수 있어요? 제 인스타 하이라이트 어딘가에 링크가 끼워져 있어요. 제 홈페이지에도 있고요.
✔️ 내가 뭘 좋아하고, 하고 싶은지 평소에 생각하기
작업 이야기인데요. 내가 무엇을 어떤 느낌으로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지, 그리고 활용 방법 중에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생각하고 있어요. (출력하는) 포스터가 좋은가? 아니면 종이에 직접 그리는 회화작업을 하고 싶나? 이게 좋은가? 어울리나? 그런 걸 자주 생각하고 있어요.
✔️ 내 작업을 어디에 써먹으면 좋을지 생각해 보고 실천하기
최근에 제 그림 스타일을 활용해서 다 다르지만 일관적인 느낌을 주는 포스터를 여러 개 만들어 보고 있어요. 아직 판매는 안 하고 갖고 싶은 사람 있으면 주고요.
✔️ 내가 가진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려 하기
제가 가진 걸 최대한 활용해서 결과물을 어떻게든 뽑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간, 돈, 생각이나 의지가 될 수도 있고요. 군대에서 수첩이랑 펜 하나만 있어도 숨어서 그림 그렸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랬을 때 뿌듯하기도 하고 안 하는 것 보다 배우는 것도 많고 경험으로 남는 것도 있어서요. 시간이든 체력이든 스스로 가진 게 없다고 느껴져도 그게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자원이 적더라도 최대한 활용해서 결과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 있으면 좋겠어요.
✔️ 집 꾸미기
집 꾸밀 때 (작품을) 출력해서 많이 붙여보는 편이에요. 그러면서 이거 괜찮나? 아닌가? 보고요. 괜찮다 싶을 때도 부족하다 싶을 때도 있어서요. 그런 걸 하려고 집을 꾸미는 것도 있어요. 최근엔 포스터를 많이 만들지만 지점토 인형도 만들거든요. 그리고 제가 만든 게 아니라도 좋아하는 물건도 있으니까요. 수집하는 걸 좋아해요. 쓸데없지만 책상에 두면 귀엽겠다 하는 그런 물건이 좀 많아요. 수집을 제대로 해본 건 중학생 때 담뱃갑이 예뻐서 모은 적이 있어요. 그때는 흡연 경고 문구도 없을 때라 디자인이 예쁜 것들을 모았어요. 땅에 떨어진 걸 모으기도 하고 엄마한테 같이 가서 사달라고 하는 방식으로 모았어요.
집 꾸미기
수집
- 올해 계획이나 하고 싶은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금이 좋아서 큰 생각을 안 하고 있지만, 포스터를 10개까지는 만들어 보려고 해요. 목표는 재밌는 것을 더 많이 해야겠다. 내가 재밌으면 그만인 것들을 더 해야겠다. 남들이 반응이 있건 없건 일단 해보자.
- 진로나 미래와 관련해서 또래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내가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을 언제 느끼는지 궁금해요. 다른 사람을 보면 ‘진짜 좋아서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렇게 안 보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저도 ‘아 그림 그리고 싶어.’ 이러지 않을 때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이걸 좋아한다는 것을 언제 느끼는지 궁금하고, 그런 걸 지속적으로 느낄 방법이 무엇일까도 궁금해요. 쟤는 저걸 얼마나 좋아하길래, 대단하다 싶어서 그런 것도 있어요. 기준이 남이 되면 안 되겠지만 얼마나 좋아하면 저렇게 깊게 찾아보고 행동으로 옮기는지 궁금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