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진로 러닝 크루는 내일의 내 일을 상상하면서 ‘영감 탐색 + 멘토 취재 + 미래진로 프로젝트’ 활동을 하는 청소년 그룹입니다. 러닝 크루 2기는 두 번째 활동으로 각자 관심 있는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멘토를 만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미래의 내 일에 대해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죽돌들이 선정한 멘토(만화가, 비건카페 대표, 심리상담 유튜버, 건축가)와 나눈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나는 처음엔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은 분들이 매우 많았다. 손으로 만드는 범주의 창작가분들은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추려서 내가 취미로 자주 즐기는 모형제작이나 그림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로 대상을 축소해보았다. 그리하여 인터뷰 대상자분들을 만화가분들로 결정하였고, 그렇게 김홍모 작가님을 인터뷰 해보게 되었다.
나에게 김홍모 작가님은 어릴 적 재미를 주신 분이었다. 심심할 때에는 과자와 작가님 책만 있으면 되었다. 지금은 살짝 다른 의미로도 작가님 책이 다가온다. 작가님 책 중에 세상과 사회를 담은 책들도 보게 된 것이다. 어릴 때 보았던 책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렇게 나는 작가님의 다양한 책에 빠져든다.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지나도 작품을 꾸준히 찾아보게 되는 작가님. 지금의 나에게 작가님은 그런 분이신 것 같다.
그리하여 인터뷰가 성사되었다. 갑작스러운 부탁을 흔쾌히 수락해주시고, 유쾌하면서도 정성스럽게 답변해주신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 올린다. 이 인터뷰를 보게 되는 분들에게도 작가님의 이야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만화가 김홍모입니다. 어린이 만화, 웹툰, 그래픽 노블, 그림책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대표작으로는 초등 4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는 창작 어린이 만화 <두근 두근 탐험대> 가 있고 웹툰으로는 <신들의 섬>, 그래픽 노블로는 <좁은 방-내 빵 생활 이야기>, <홀-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등이 있습니다. 주로 리얼리즘* 계열의 만화를 하고 있어요.
*그래픽 노블: 미국에서 시작된 스토리 구조가 길고 복잡한 단행본 만화를 일컫는 말, 직역하면 그림 소설이다. 소설처럼 주제와 구성이 중요하다.
*리얼리즘: 19세기 중반에 프랑스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실재로 존재하는 일상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충실하게 반영하여 예술에 표현한 장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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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작품중에 작업하면서 가장 애착이 갔던 작품은 어떤 작품일까요?저는 개인적으로 <내 친구 마로>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재미있기도 했고, 어릴 때 늦은 시간까지 부모님이 오지 않을 때 걱정하면서 기다렸던 마음이 마로에도 비슷하게 나와서 공감이 많이 갔었거든요.
사실 모두 다 애착이 갑니다. 만화 안에 작가의 삶이 어느 정도 들어가기 때문에 만화 하나 하나가 제 삶의 일부예요. <내 친구 마로> 역시 저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습니다. 아빠의 이야기 중에 어린 시절 이야기나 데모하던 장면 등등이요. 그래도 그중에 하나 뽑자면 <좁은 방-내 빵 생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학생운동을 하다가 연행되어 감방살이를 하게 됐는데 그때 이야기를 만화로 만들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반짝이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어요. 그 시절의 이야기를 6년이 넘게 작업을 해 책으로 만들었으니 애착이 많이 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프랑스에도 출간이 되어서 프랑스 비평가협회 ACBD* 본선 파이널까지 올라갔었는데 아깝게 수상은 못했어요. 상 받았으면 참 좋았을텐데 다시 생각해봐도 아쉽네요.
*ACBD 비평식: 매년 프랑스어권 지역에서 출판된 작품들 중에 내용과 그림에 있어 가장 뛰어난 작품에게 주최인“프랑스 교양만화 비평가 협회 ACBD”(Association des critiques et des journalistes de bande dessinée)에서 비평대상을 수여하는 시상식이다. 수상작 선정은 ACBD에 가입된 70여명의 비평가들과 저널리스트들이 참여한 가운데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회원 모두에게는 발언권이 부여된다. 후보에 오른 작품들은 수많은 토론과 다양한 심사 기준을 거치게 되고, 그중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에게 최종 영예가 주어진다.
*저널리스트: 방송, 신문, 잡지 등을 통해 대중에게 정보와 의견을 제공하는 사람들. 언론인과 비슷한 뜻이다.
작가님이 만화를 그리면서 담아보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만화를 그릴 때 사회를 많이 연관 지어서 넣는 것 같아요. 공적인 내용으로 진행은 해보면서 최대한 약자와 피해자를 대변해보는 쪽으로 그려보는 것이죠. 청소년이 되면서 해외여행을 많이 갈망하게 되는 것 같은데, 아직 해외여행을 많이 가보지 않은 입장에서 여행 이야기를 만화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나중에 갈 때를 상상해보면서 말이죠.
만화를 통해 담아 보려는 건 책마다 달라요. “두근 두근 탐험대”로는 어린이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싶었고, “내가 살던 용산” (기획, 공동 저자) 같은 경우는 용산 참사 때 돌아가신 철거민들의 삶을 담아 내고 싶었죠. 이후에 작업했던 “내 친구 마로”, “떠날 수 없는 사람들” (기획, 공동 저자), “빨간약 -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에 대하여”, “좁은 방 - 내 빵생활 이야기”, “빗창”(제주 4.3 만화), “홀 -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등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면 삶에 대한 진실성을 담아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만화와 글의 차이는 어떤 것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하시나요? “만화책 보지 말고 글로 된 책 많이 봐라” 저는 이 말에는 동의가 잘 안되네요. 물론 그냥 글로 된 책의 장점은 영화나 만화, 드라마랑 다르게 글의 내용을 본인이 직접 상상해볼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상상만 하다보면 오히려 그것이 제한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때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친절한 책, 때에 따라서는 깊은 그림으로 강한 여운을 줄 수도 있는 책. 그게 제가 생각하는 만화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만화와 글(문학)의 차이를 알려면 만화의 정의부터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가나 평론가마다 만화에 대한 정의가 있겠지만 나는 “만화는 문학과 미술의 창조적 결합이며 본질적으로 문학예술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만화는 이야기와 그림이 창조적으로 다양하게 결합, 변주 되어서 만들어지는 예술이기 때문에 문학적 역량과 미술적 역량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러니까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면 만화가가 된답니다. 후후.
소설가 故 이외수 선생도 만화책을 냈었고, 요즘 인기가 많은 이슬아 작가도 만화책을 냈어요. 누구는 소설가가 웬 만화냐 할지 모르겠지만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면 만화를 그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림 작가가 만화를 만드는 일 역시 많아요. 나는 후자예요. 원래 미술 전공자인데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해서 만화가가 되었죠.
단순하게 차이를 이야기해보자면 만화는 독자들에게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과 그림을 통해 전하는 것이고 문학은 글로만 전하는 것이죠.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에서 둘은 본질적으로는 같습니다.
작가님이 만화에 사회를 담아내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홀 –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를 보면서 작가님도 사회를 만화에 많이 담아내시려고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어요. 사실 작가님이 사회를 만화에 담아내신 건 <두근두근 탐험대>를 봤을 때부터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어요. 두근두근 탐험대를 초등학교 저학년 때 많이 봤었는데 “꼴찌가 나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던 책이었거든요. 그래서 작가님이 만화에 사회를 담아내시는 이유가 궁금했었어요. 저의 경우에는 만화라는 수단이 사회의 감춰지거나 잊혀져가는 부분, 아픈 부분들을 재조명 해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런 생각으로 알게 모르게 제가 그리는 그림에 사회를 많이 담아내는 것 같아요.
나는 “예술이 가치가 있는 이유는 인간의 삶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 만화가 쓰레기가 아닌 예술이 되게 하려면 인간의 삶에 보탬이 되어야 하는 거죠. 예술이 인간의 삶에 보탬이 되게 하는 방법은 아주 아주 다양할 텐데 나는 그중에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고 진실성 있는 삶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내가 살아오면서 감동을 받았던 부분의 대부분은 진실성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내 만화의 대부분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만들었을 때 누군가 위로 받고, 감동을 받거나 힘을 얻는다면 그것이 작가로서 최고로 기쁜 일이지요.
마지막으로 만화가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한마디 해주실 수 있나요? 작가님이 만화가라는 직업을 하시면서 힘드셨던 점이나 일화 등이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던 저로서는 많이 궁금해지네요. 작가님의“우주 최고 만화가가 되겠어”라는 책이 어느 정도는 만화가라는 직업을 알게 해주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작가님이 만화에 항상 어떤 의미를 넣어보시려고 하시는지, 어떤 의지로 힘듦을 극복하셨는지 등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 많이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나도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예술 고등학교를 가게 되고 미술대학을 나왔어요. 스스로 재능이 많이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어느 순간에는 슬럼프처럼 자신을 의심할 때가 있더라구요. 그걸 어떻게 극복했나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별다른 게 없었던 것 같아요. 그저 그림 그리는 게 좋았으니까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 예술가에게 가장 큰 재능은 “좋아하는”것 인거 같아요. 그림 그리는 게 좋고 글 쓰는 게 좋고 만화 그리는 게 좋다면 계속 그것을 하게 되고, 더 잘하고 싶어지고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슬럼프가 와도 좋아하니까 계속 그리게 되고, 연구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슬럼프는 사라지고 한 뼘 성장한 내가 있더라구요. 남들, 혹은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라는 것에 휘둘리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뭔지 그걸 확실히 알아야 휘둘리지 않죠.
예술가는 자신의 확고한 주장과 고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세상과 사회에 대해 더 많이 탐구하고, 인간의 삶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해야 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통 이야기하는 “성공”이란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건데, 돈을 많이 버는 작품이 모두 훌륭한 작품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분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돈을 벌어야 작업을 할 수 있고 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내가 하고 싶은 예술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모든 예술가들의 공통된 고민일 거예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작업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계속 고민하고 실천하고 노력하다 보면 뭔가 방법이 보일 거예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가 “마음이 깊으면 지혜가 생긴다.”예요. 마음이 깊으면 언젠가는 지혜가 생길 거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