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기>는 하자 청소년들의 일상과 진로를 주제로 대화한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으며(또는 하려고 하며) 일상을 지키고 있는지, 그들의 To do list 를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2023년 첫 번째 일-기는 올해 <하자 글방>에 참여하며 미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고 하고 싶은 작업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는 '묘'의 기록입니다.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하자이름 묘, 본명은 석유림입니다. 스물 한 살 됐고요. 관심사는 요즘 많은 것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긴 하지만 최근에는 영화를 틀어 놓고 요리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영화와 비슷한 느낌이 나는 요리를 만드는 것에 빠져서 시도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면 영화 <내가 사는 피부(La piel que habito, 2011)>를 보면서 오이를 벗겨서 오이 토스트를 해 먹기도 하고 어떤 영화에는 토마토 가스파초가 나와서 가스파초도 해봤고요.
묘의 To do list
블로그 일기를 꾸준히 쓰자
종이에 펜이 닿는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내기
달에 한번은 잘 모르는 분야의 책, 공연, 영화, 음악, 친구로 새로운 자극 주기
잠드는 시간과 먹는 것을 잘 챙기기 (도피 혹은 보상심리로 빠지는 것을 경계하기)
만들고 싶은 것이 생기면 바로바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
입시 앞에 나를 두는 걸 잊지 말자
예술 하고 싶은 마음을 자조하지 않고 살아내기
지각하지 않기
기록하고 기억하기
하고 싶은 것을 하기
회피하고 싶을 땐 … 그렇게 하기
수영에 도전하기 (뭔가 의지에 따라 몸을 컨트롤하는 경험이 필요한 것 같음)
- 묘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취미는요?
작년부터 미대 입시를 시작했어요. 딱 한 곳에 지원했는데 잘 되지 않았어서 올해도 계속하고 있어요. 그래서 보통 미술학원에 가고, 가지 않을 때는 글을 쓰고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기도 해요.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은 무한도전을 보면서 정신을 치유해요.
- 무한도전이요?
무한도전은 다 아는 내용이라 일단 사운드를 채우기에 좋고 또 여의도가 많이 나오잖아요. 제가 여의도 쪽에 살아서 추억팔이 하기에도 좋아요
취미는 그림을 그리거나 영화를 보는 거였는데 입시를 하면서 그게 일처럼 되니까 흥미를 급격하게 잃어서 최근에는 따릉이를 열심히 타고 있어요. 밤 산책을 할 때 따릉이를 타면 조금 안전한 느낌이 들거든요. 차가 없는 저 같은 사람에게 따릉이는 굉장한 혁신이라고 생각해요. 저만의 힐링이랄까요.
- 묘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들은 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까요?
요새 약간 자아가 흩어지고 있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옛날엔 (스스로에 대해) 확언했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그때 만들었던 성에서 흘러내리고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목화학교*에 다녔었는데 그때는 자아가 확립되어있었던 것 같아요. 요즘엔 그 자아가 흩어지는 걸 받아들이는 기간인 것 같고요.
사람들이 보는 저는, 극명하게 나뉘는 것 같아요. 어떤 친구가 디즈니 영화 <크루엘라(Cruella, 2021)>를 보고 네가 생각났다고 말해준 적이 있어요. 그 얘길 듣고 영화를 보니 ‘왜 이걸 나라고 생각하지?’싶었는데 제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대요. 그래서 남들이 볼 때 반항적으로 보이나? 싶다가도 최근에 미술학원 선생님이 '너는 거짓말도 못하고.. 조용한 아이'라고 말해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상반되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어른들이 볼 때랑 친구들이 볼 때 다르게 보이는 게 아닐까 싶네요. *하자작업장학교의 1년제 전환기학습과정(2019년까지 운영)
✔️ To do: 블로그 일기를 꾸준히 쓰자
블로그에 한 달에 한 번씩 사진을 올리고 코멘트를 다는 식으로 일기를 쓰고 있어요. 사소한 일상의 일들 같아도 그때그때 한 생각이 작업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글감으로 바뀌어서 장문의 글을 쓰기도 하거든요. 이렇게 하는 게 삶에 덜 냉소적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일기를 쓰는 건 냉소적인 태도 때문에 삶의 감도가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는 일이기도 해요.
- 다이어리가 아니라 블로그에 쓰는 이유가 있나요?
글을 누가 봐야 즐겁더라구요. 블로그를 같이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댓글을 주고받는 것도 즐겁고 서로 공유하는 것도 좋아요. 그렇지 않으면 글의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자꾸 나만 아는 말을 내 감정에 치우쳐서 쓰게 되니까요. 블로그에 쓰면 독자가 있으니까 다듬게 되고. 그렇게 쓰는 게 저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 같고요.
✔️ To do: 종이에 펜이 닿는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내기
계속 흰색 종이를 받으면 이제 그리고 싶은 게 없고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할 수 있을까? 의미가 있을까? 싶고 또 어떻게 보일까?라는 고민을 계속 하게 돼요. 사람들에게 조언을 들으러 다니면서 계속 공통적인 건 ‘하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라고 하더라고요. 계속 그리고 쓰고 만든 사람에게 발전한 기회가 생기고 보여줄 기회를 얻는다고 해요. 그래서 무서워하는 걸 그만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도적인 걸 만들어서 지키려고 하고 있어요.
- 요즘 하는 고민 있어요?
입시쪽 얘긴데요. 제가 입시를 처음 다짐한 게 작업을 하고 싶어서 거든요. 더 좋은, 더 큰 작업이요. 그런데 입시를 하다보니까 입시생 수준에 맞는 작업만 계속 하게 돼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밉게 보이지 않는 그림만 그리거나 사고하게 돼서 (고민이에요). 내가 하고 싶은 건 더 좋은 작업, 더 큰 작업이었는데 수축하는 기분이 들어서요. 입시생이라는 신분의 마무리도 성공적으로 함과 동시에 제 자아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고민돼요.
- 묘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10대 때와 현재의 진로 고민이 비슷한가요, 다른가요?
현실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하는 친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게 다른 것 같아요. 10대 때 저는 항상 되고 싶은 ‘직업’보다는 수행하고 싶은 ‘상태’만 계속 있었어요. 나중에 나이를 더 먹으면 영화를 찍고 싶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음악을 만들어 보고 싶다. 이런 식으로.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진심이었고요. 사실 지금도 비슷해요.
그런데 주변에 현실적으로 뭘 하고 싶으면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하고 그 이후에 원하는 걸 할 수 있으니 우선 전공을 선택해라. 혹은 한국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유학을 가는 게 커리어에 좋지 않을까? 하는 그런 조언을 듣다 보니 내가 너무 붕 뜬 채로 살고 있나? 그런 불안감이 생긴 것 같아요.
✔️ To do: 예술 하고 싶은 마음을 자조하지 않고 살아내기
자꾸 그냥 “예술충”이라고 칭해버리거나. 누가 ‘그래서 나중에 뭐 할 거야?’라고 물어보면 설명하지 않고 ‘어 굶어 죽을 거야.’라고 대답해버리는 상황이 발생해 버려요. 저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말로 해버리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하지 않고 싶어요. 그래서 다이어리 맨 앞장에 큼지막하게 적어놓고 아직 지키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예술가 동료들을 사랑하게 되고 예술 하고 싶은 나도 사랑하게 되고. 은근히 힘이 되더라고요.
- 예술의 어떤 점이 좋아요?
좋다기보다는 ‘해야 된다.’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거고, 할 수 있는 걸 해야 된다는 그런 생각이 좀 있어요. 예술이 좋은 이유를 꼽아보면 사람들이 보지 않는 걸 보려고 노력한다는 것? 예를 들면 TV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는 것 같은 거요. 저는 앞으로 이게 더 중요할 것 같거든요. 세상에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소수의 이야기만 기록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청소년기에 그런 게 힘들었어요.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 수 있는지 몰랐으니까요. 그러다 고전 영화와 예술 작업들을 보면서 나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그들이 작업을 해내는 걸 보면서 힘이 났어요. 그래서 적절한 기록가가 되어야겠다. 적절한 시기에 나타나는 적절한 기록가가 되자고 마음먹게 된 것 같아요.
- 묘가 닮고 싶은 롤모델이 있나요?
바르다*를 진짜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바르다가 만든 것 같은 영화, 미술작업을 하고 싶고. 그래서 바르다처럼 늙고 싶고. 바르다가 죽기 전에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Varda by Agnès, 2019)>라고 해서 자신의 영화를 다 회고하는 영화를 찍었는데요. 그렇게 늙을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힘이 됐어요. 하고 싶은 말이 계속 있고 나이가 들어서도 그 말을 할 수 있고 들어주는 사람도 있다는 게 위로고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아녜스 바르다: 프랑스 영화 감독
✔️ To do: 달에 한번은 잘 모르는 분야의 책, 공연, 영화, 음악, 친구로 새로운 자극 주기
스스로 취향이 편향돼 있다고 생각해서요. 보던 감독이나 듣던 아티스트의 작업만 봐요. 그림도 좋아하는 작가 것만 보게 되고 그렇게 편향되니까 나는 만족하지만 이게 좋은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동안 보지 않았던 책을 읽는 것에도 도전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자극을 받아야 넓어질 수 있으니까요.
제가 대안학교를 계속 나왔다 보니 그 안에서도 서로 생각이 비슷하고 또 작업을 하는 친구들과만 관계를 맺고 만나왔어요. 그러다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니 즐거워서 그런 기쁨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다짐하게 됐습니다.
- 새로운 분야,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접하나요?
책을 예로 들면 도서관에서 안 가던 분야에 들어가요. 과학 영역에 딱 들어가서 표지와 제목이 맘에 드는 걸 골라요. 작가 이름이 맘에 들거나 그런 거요. 그냥 그렇게 들어가는 것 같아요. 완독에는 실패하지만 골랐다, 펼쳤다.는 것에 의의가 있어요. 알고 시작하는 것보다는 끌리는 것, 하고 싶은 것에서 시작하는 게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올해 계획이나 하고 싶은 있다면 무엇인가요?
올해는 가족에 대한 작업을 하고 싶은데요. 제 마음에 들고 가족에게 보일 때도 괜찮은 작업을 하나 완성하고 싶어요. 정확히는 조부모에 대한 작업인데 그걸 완결해 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마음에서 많이 굴려서 생각을 완결시킨 후에 작업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 그렇군요. 그럼 이전에도 가족에 대한 작업을 해본 적이 있는 건가요?
몇 번 시도했는데 절대 가족에게 보여주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말할 수 있고 웃으면서까지도 이야기할 수 있는데요. 가족... 특히 부모님은 제가 어떤 작업을 하는지 모르거든요. 그래서 저를 백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을 완결해 보고 싶다. 내 안에 빠지지 않고 독자를 고려하면서 완성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올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진로나 미래와 관련해서 또래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뭔가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그걸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기준으로 삼고 싶어서요. 그걸 얼마나 좋아해서 하고 싶은 일의 범주에 끼워줄 수 있게 된 건지 궁금해요. 입시하는 친구들한테 물어봤는데 다 미술을 너무 사랑한대요. 영혼을 내어줄 수 있을 만큼 사랑한다는 사람도 있고. ‘나는 그만큼 미술을 사랑하지 않는데.’ 라고 생각했던 그런 경험도 있고요. 성적을 맞춰서 대학을 간 친구들에게도 얼마나 전공을 사랑하냐고 물어봤는데 적성에 잘 맞아서 남자친구를 좋아하는 만큼 사랑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너무 하고 싶어서 진학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꼭 또래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궁금한 질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