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모아랩의 보조 강사로 출근하던 첫날이 기억난다. 어린이들과의 본격적인 만남은 궤가 다른 새로움이어서 걱정이 많았다. ‘내가 이 공간에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할까, 말을 걸면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하지’ 같은 아직 겪어보지 않은 막연한 생각들이 몰려왔다.
첫날 모아모아랩 활동을 마치고 걱정을 한 꺼풀 벗겨내고 바라보니 생각이 명료해졌다. ‘도움을 요청하는 어린이에게 도움을 주고 최대한 안전하게 작업을 마칠 수 있게 하자.’ 이 생각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모아모아랩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나의 목표가 되었다.
어린이들의 하자 둘러보기
작업실 안에서 부모님과 잠시 떨어진 채 작업에 열중하는 아이들은 굉장히 독립적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범위도 명확하고 작업의 몰입도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기에 자유롭다. 안전한 곳이라는 느낌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모아모아랩의 가장 좋았던 규칙 중 하나는 작업을 하다 다치면 솔직히 말하고 적절한 처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주 작은 불편함이라도 느끼면 알려준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런 솔직함이 모아모아랩의 안전과 자유를 만드는 것 같다.
작업실 밖에서
모아모아랩 활동을 하면서 어린이들에게 감사한 일이 많다. 일단 다치지 않고 무사히 작업을 끝마칠 수 있었다는 것이 제일 감사하다. 또 먼저 말을 걸어주는 어린이들이 있어서 정말 많이 배웠다. 이런 상황엔 이런 식으로 대답해야지 하는 것들 말이다.
8월에 왔던 찰리와 루카스 형제가 기억이 난다. 형 찰리와 동생 루카스는 한 테이블에 앉아 작업을 시작했다. 루카스는 페트병에 물을 담아 놀고 싶어 했는데 개인만 쓰는 테이블이 아니고 다른 어린이들도 작업 중이었기에 테이블이 물로 흥건해지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루카스의 요청을 어떻게 거절해야 하는지, 너무 단호한 거절보다는 완곡한 말투로 어떻게 전하면 좋을지 이런 생각들로 2초 정도 머릿속이 멈췄다. 그 순간 옆에 앉은 형 찰리가 동생에게 나직이 말했다. “물놀이는 집에 가서 하면 되지.” 루카스는 너무 쉽게 찰리의 말에 수긍했고 나는 찰리의 말에 맞장구치며 “그래, 물놀이는 집에서 하면 되겠다.”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찰리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뒤로 간혹 테이블에서 물놀이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찰리를 떠올리며 완곡한 말투로 의견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간단한 일이었는데 왜 말이 안 나왔을까 싶지만 그땐 너무 여유가 없었나 보다. 하하. 찰리, 루카스 형제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 유연한 생각. 큰 배움이 되었다.
찰리와 루카스
모아모아랩 하루 일정을 마치면 그날 일지를 기록하는데 다른 분들이 쓴 일지를 보면서도 배운 점이 많다. 일지는 활동사진과 함께 올리게 되는데 다른 강사분들의 기록을 통해 내가 놓친 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주로 어린이들의 작업물 위주로 사진을 찍어왔다. 재료 선정이나 만들기 과정 위주로 찍고 마지막에는 꼭 아이들이 완성한 결과물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그래서 일지 작성 과정에서는 문제가 없었으나 이 글을 작성하며 사진을 고르려니 쓸 사진이 없는 것이다. 전체적인 작업실 풍경이나 작업실 밖에서 아이들이 놀이로 몸을 움직이며 마음을 여는 모습 같은 모아모아랩의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첩에 그런 사진이 거의 없었다. 다른 강사분들이 올린 일지에는 전체적인 모습이 여러 장 있는 걸 보고 내가 너무 세부적인 것에만 몰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마음의 창이라는데 나는 숲을 볼 여유가 없었나 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정말 모아모아랩에서 마지막까지 배우다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이 발산하는 에너지에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생각이 유연하고 감정의 직접적인 표현들이 좋았다. 어린이들로부터 정말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 어린이 작업자들 주변에서 함께하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기억되면 충분하다는 동료의 말이 내 역할을 끝까지 마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다. 감사한 일이 많았던 2022년의 여름과 가을. 좋은 경험으로 기억된 시간이다.
GSSHOP의 후원으로 2020년 2월 하자센터 본관 1층에 문을 연 모아모아랩은 코로나로 인해 어린이들을 만나지 못하다가 올해 5월부터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하였습니다. 후기청소년 모레, 민트, 하늘과 함께 월 5회~9회 상설워크숍을 열었으며, 6개월간 7세~13세 어린이 작업자 263명이 방문하였습니다. 내년도 운영을 준비하며 2022년의 활동을 네이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유해 나가고 2023년 오픈 계획도 공지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