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고민에 대해 멘토, 동료, 판돌과 만나 함께 고민하고 시도하는 프로그램, <내일 진로상담소>에는 '러닝크루'라 불리는 청소년 기획단이 있습니다. 내일의 내 일을 상상하며 진로상담소를 만들어 가는 기획단이지요. 올해 함께하게 된 4명의 러닝크루가 '후기 청소년을 위한 큐레이션'을 주제로 글을 쓰고 엮어보았다고 합니다. 진로를 고민하고 최근 사회의 이슈를 알고 싶은 19~24세 후기 청소년이라면, 관심 있게 살펴보셔도 좋겠습니다.
그저께 우리나라가 멸망하는 꿈을 꾸었다. 나는 평소 은연중에 가지고 있던 불안함과 고민을 꿈속에서 직면하는 일이 잦다. 이번엔 그 불안함이 나라 멸망까지 도달한 것이다. 이십여 년의 인생을 무탈히 살아온 내가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존폐를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바로 코앞의 가까운 곳과 가본 적도 없는 먼 곳의 일까지, 우리를 은밀하게 압박해오는 문제들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
비가 언제 왔었는지 기억이 가뭄가뭄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우리 가족은 유독 날씨에 예민하다. 작물들을 건강하고 맛있게 잘 키우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날씨이고, 내가 덜 힘들게 일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역시 날씨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작년과 비교하면 여름이 다소 일렀다. 5월부터 낮 기온이 너무 높아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것도 모자라 1~2시의 한낮에는 밖에 나설 엄두를 못 낼 정도였다. 이에 또 다른 악재가 더해졌는데, 그게 바로 끝이 보이지 않는 가뭄이다. 밭과 모종은 시간이 흐르는 것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비가 올 날짜를 받아놓고 기다렸다가 심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시기에 맞추어 고구마를 심었는데 이후로 2주 이상 비가 오지 않았다. 해만 지겹도록 뜨겁게 내리쬐는 날들이 이어졌다. 우리는 매일같이 하루에도 몇 번씩 핸드폰을 켜 날씨를 확인했고, 아침저녁으로 일기예보를 봤다. 겨우 30%~50%를 감도는 몇 번의 강수 확률을 보며 비가 오기만을 빌었지만 이슬 같은 빗방울이 잠시 떨어지는 것 말고는 소식이 없었다. 그 사이 고구마는 수분기를 잃고 말라갔다. 만지면 부서질 만큼 말라 비틀어져서 죽은 고구마 싹들을 새로운 싹으로 대체해줘야만 했다.
소양강이 바닥을 드러냈고, 공주보는 물을 모으기 위해 수문을 닫았다. 양파를 수확해보니 예년보다 훨씬 알이 작고 단단하다. 고구마는 여전히 시들시들하다. 아래 지방에선 물이 없어 모내기를 못하고, 골프공처럼 작은 감자를 수확한다. 지난주 드디어 고대하던 비, 그야말로 '단비'가 전국적으로 내렸지만 이미 수확한 농작물과 죽어버린 싹들을 되돌릴 수는 없다. 기후위기는 결국 농어민들의 삶과 밥상 물가까지 위협하며 먼 미래나 남의 얘기가 아닌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동시에 듣기만큼 어렵고 괴로운 딜레마가 없을 거로 생각한다. 며칠 전 나는 우리나라의 자살률 통계를 접하며 그 딜레마를 또 겪게 됐다. 코로나 유행 이후 우리나라의 전체 자살률이 예년보다 4%가 줄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런데 그에 반해, 10~20대 청년층의 자살률은 10% 내외의 수치로 크게 늘었다는 발표도 동시에 나왔다.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표하기도 전에, 깊은 한숨이 그 마음을 틀어막아 버렸다.
전체 자살률이 줄어든 것에 대해 사람들은 "국가적 위기가 사람들을 단합하게 하여 자살 사망자가 줄어들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청년들의 자살률이 늘어난 것은 왜일까. 학교에 다니며 입시를 준비하던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의욕을 잃었다. 옆에서 도와줄 친구나 선생님이 없이 혼자 공부를 하게 된 학생들의 성적이 불가피하게 낮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막 대학교에 입학한 새내기들은 등록금을 인터넷 강의 듣는 것에 쏟게 되었다. 대외활동도, 수업과 과제도, 무엇하나 현실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 없다. 취업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지만 일자리가 없고, 노래를 불러야 하지만 무대가 없고, 연기를 해야하지만 극장이 없다. 그런 억겁의 시간을 겨우 이겨내고 난 후 거리두기가 해제되며 일상회복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물가는 치솟고 경제는 흔들리고 내 자리는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에게 지금 이 시대는 너무나 버겁고 어렵다.
코로나 첫해 '극단 선택' 줄었지만, 1020은 증가했다 : <한국일보> 2020년 자살률 통계에 관한 기사이다. 각 연령별 자살률, 연도별 자살률 추이에 대해 확인 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함께 담겨있다.
오르고, 오르고, 오른다.
'통장 잔고를 제외한 모든 숫자가 다 커진다.'는 말이 더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기나긴 가뭄과 예측할 수 없는 기후 변화로 농축산물과 가공식품 가격 대부분이 대폭 올라 우리의 밥상이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이유 없이 지속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으로 유류 값은 1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기료와 가스비 등 생활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많이 사용하는 에너지들의 가격 역시 전에 없던 상승 폭을 보이고 있다. 이런 물가 상승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미국은 이런 현상을 잡기 위해 기준 금리를 0.75%p 높이는 강력한 대응을 보였다. 우리나라 역시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1.75%p까지 올렸고, 이에 따라 대출 이자가 상승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월급이나 최저 시급도 같이 오르는가. 통장 잔액은 언제나 그대로, 하지만 나갈 돈은 끝도 없이 늘어난다. SNS에서 "아무리 지금 직장 다니는 게 힘들고 괴로워도 정신 붙잡고 열심히 다니세요. 경제가 위기라 살아낼 방법은 돈 버는 것밖에 없습니다."라는 글이 유행처럼 공유되는 것을 보았다. 이제 막 취업을 준비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우리는 마음이 더 조급하다.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지? 어떻게 하면 세끼 밥 다 먹고 건강하게 잘살지?'. '존.버'만이 답이자 여유 없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음악을 하던 나는 이제서야 무대를 되찾을 기회를 얻었지만, 코로나 이후 우울증이 생긴 a는 다시 돌아온 대면 활동들이 두렵기만 하다. 빨리 공부도 하고 일도 해야하지만, 비는 올 생각을 안 하고 땅에선 뽀얀 먼지만 날고, 전쟁은 끝나지 않고, 경제는 쉴 틈 없이 흔들린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서로가 필요하다. 위기의 시대에서 서로를 붙잡고 각자 마음의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줄, 잠든 머리에 불을 켜고 대화를 나누어줄. 길과 길 사이에서 또 다른 길을 찾고 함께 걸을 동료를 찾기 위해 모인 만큼, 많은 길과 동료가 이 곳을 찾아와주길 우리는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