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고민에 대해 멘토, 동료, 판돌과 만나 함께 고민하고 시도하는 프로그램 <내일 진로상담소>에는 '러닝크루'라 불리는 청소년 기획단이 있습니다. 내일의 내 일을 상상하며 진로상담소를 만들어 가는 기획단이지요. 올해 함께하게 된 4명의 러닝크루가 '후기 청소년을 위한 큐레이션'을 주제로 글을 쓰고 엮어보았습니다.
몇 주 전, 동아리 활동 때문에 두 가지 영화를 감상하게 됐다. 하나는 <더 기버: 기억전달자>1)였고, 또 하나는 <이퀼리브리엄>2)였다.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장르이지만, 뜻하고자 하는 바가 꽤 비슷하다. 통제된 세상을 깨고, 자유를 되찾기 위한 주인공의 고군분투 이야기. <더 기버: 기억전달자> 속 세상은 기억, 감정, 선택의 자유를 통제하고, <이퀼리브리엄> 속 세상 역시 사람들의 감정을 통제한다. 그리고 두 영화 속 세상 모두 ‘전쟁 없는 평화’를 통제의 이유로 든다.
1) <더 기버: 기억전달자(The Giver)>(2014): 필립 노이스 감독의 SF 영화. 로이스 로리의 소설 「기억 전달자(The Giver)」가 원작이다.
2)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2002): 커트 위머 감독의 액션 영화.
사람들을 모두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는 점에 있어선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과거 전쟁으로 인해 고통과 슬픔, 이로 인한 좌절을 맛보지 않은 국가가 거의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실제로 이 두 영화 말고도 전쟁의 아픔, 전쟁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 단순히 ‘전쟁’만을 소재로 한 영화는 정말 많다. 각각 이야기가 다 다르고, 뜻하고자 하는 바도 조금씩 다 다르지만, 결론적으론 거의 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각국에서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는 건, 전쟁의 소멸을 바라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그것이 부를 고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에.
그런데 모두가 사라지길 바라는 전쟁이 지금, 2022년에도 일어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우크라이나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현재까지 1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각국의 모든 세계인이 ‘NO WAR’를 외치며,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전쟁 반대를 바랐지만, 여전히 우크라이나엔 전쟁으로 인한 참상이 가득하다.
지난 5월,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한 여성이 우크라이나 여성에 대한 러시아군의 성범죄를 규탄하는 나체 시위를 벌였다. 입고 있던 드레스를 벗어 던진 여성은, 각국의 기자들 앞에서 울부짖었다. 여성의 상체엔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노란색을 칠하고, ‘STOP RAPING US’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우리를 강간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보안 요원들은 울부짖는 여성을 재킷으로 감싸며 이를 제지했다. 이를 영상으로 본 나는, 한 가지 의아함을 느꼈다. 레드카펫에 서 있던 배우들의 모습이었다.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고통을 어떻게든 알리려 울부짖는 여성과 달리, 너무나도 평온한 배우들의 모습. 그 누구 하나도 놀란 기색 없이 다시 자세를 취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란 듯 보이는 그 평온함이.
정말 남 일일까? 우리나라 반응을 봤을 때, 전쟁으로 인한 공포를 느끼는 이들은 현저히 적었다. 다만,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전쟁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이들은 많았다. 이 역시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맞다. 하지만 이렇게 타국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점점 국가의 일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택하는 곳이 많아질지도 모른다. 또한, 무역 문제와 앞서 언급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제적인 문제도 피할 수 없다. 무엇보다 휴전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전쟁을 남 일 보듯 볼 수 없다는 것이다.
2년 전, 전공 수업 과제로 인해 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3)를 감상한 적이 있다.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내전을 카메라로 담은 영화였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참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화가 났고, 슬펐고, 참혹했고, 안타까웠다. 처참하게 남은 민간인의 시체, 무너져내린 건물, 매일 들리는 끔찍한 굉음, 피를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흔한 일상인 곳이었다. 영화를 감상하며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긴 처음이었다. 그리고 영화 속, 이들이 느낄 고통이 어떨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보는 나조차도 고통스러운데, 이들은 어떨까. 내가 만약 저곳에 있었다면 어떨지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다. 전쟁은 이렇게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마저 힘든, 최악의 폭력과도 같았다.
3) <사마에게(For Sama)>(2019): 와드 알-카팁 감독과 에드워드 와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시리아의 수도 알레포에서 전쟁의 참상을 담은 영화.
모든 것은 작은 관심으로부터 시작한다.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폭력은 어떤 형태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전쟁은 참혹한 폭력이다. 이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니란 걸 알아야 한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외에도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국가가 생각보다 많다. 재난은 곧 번지기 마련이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모두의 평화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