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나는 무모함을 거듭해왔다. 항상 머릿속 생각으로 존재하던 것들을 말과 행동으로써 내 세상 너머로 꺼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무모했던 것 같기도, 후회라고는 없는 사람이 안 했으면 후회했겠다 싶을 만큼 잘 했다 싶기도 하다. 무모게 행동하는 것에 있어서 나는 아직 갓난 아이 같아서 어찌 보면 그렇게 느낀 것이 당연하겠다. 올해를 이렇게 보낸 것은 이제껏 열심히 미뤄 가득히 쌓인 생각의 시간을 몰아서 풀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의 양이 너무 많아 언제 끝낼 수 있을지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 끝이란 게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찾은 것이 맞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뭐가 바꾸어지기는 바꾸어지더라. 이제 변화하는 법을 알았으니 설령 그 양이 줄지 않을지라도 가만히 바라보고 있지는 않지 않을까.
“공부하기 싫어요.”
1월에 부모님께 공부가 하기 싫다고 말씀드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원에서 인강을 들으며 화장실 간다고 하고 핸드폰만 든 채 집으로 냅다 달려버릴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머릿속 생각에 그쳤다. 현실에서는 가만히 앉아 필기를 할 뿐이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가 저 일을 여태 기억한다. 그리 대단하거나 엄청난 일도 아니고, 무언가의 영감이 되거나 시작점이 되지도 않았다. 무모한 짓의 시작일 수 있지 않으냐고?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 2학년 무렵 고등학교 수학을 공부하며 여름방학 내내 하루의 절반 이상을 수학에 쓰고 주 5일 이상을 학원에 갔지만 때려치우지는 않았으니. 그런데 왜 내가 올해 1월에 갑자기 입 밖으로 그 말을 뱉었을까. 공부의 강도가 그때만큼도 아니었고 쓰는 절대적인 시간도 더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많은 사람들은 ‘참다 터진 것’이지 않냐고 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대신 ‘그때 갑자기 생각해 보니 내가 왜 공부를 하는지 모르겠더라’하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갑자기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공부를 왜 하지?’라는 질문은 기억이 나지 않는 어렸을 적부터 했으니까. 조금씩 쌓이고 오래 묻혀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일지도 모른다.
공부를 안 한다고 선언하고 부모님께서도 수긍하신 뒤 일반 고등학교(명덕여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생활은 정말 지루했다. 공부를 안 한다고 했지만 수업은 열심히 들었다. 그래도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에너지 낭비였다. 한 번 무모한 행동을 해서인지 두 번째는 생각보다 쉬웠다. 부모님과 담임선생님께 자퇴 이야기를 꺼냈다. 공부 이야기를 할 때에는 생각을 정리해 부모님께 프레젠테이션까지 했는데 이번엔 계획이 없어서 그런 것을 만들 수 없었고 결국 그냥 말했다. 정말 무모했던 것이다. 이 정도의 무모함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안겨주지 않았다. 더 생각을 해가며 계획을 짜던 중 부모님의 추천으로 오디세이 추가모집에 지원했고 오디세이 하자 7기 학생이 되었다.
경험해 보자는 생각으로 오디세이에 온 나는 별생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목표를 가지고 온 것보다는 더 좋은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대가 많을수록 실망도 많고 기대에 차지 못한 것들은 하찮게 여기게 되니까. 각설하고 오디세이를 경험 차원으로 보았던 내가 지금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와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해 말해보자. 다 이곳에서 경험한 것은 맞으니 크게 보면 경험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 경험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다. 하고 싶지만 ‘내가 저걸 할 수 있을까? 난 저럴 깜냥이 안 돼..’하고 포기했던 것들을 ‘눈 딱 감고 한 번 해보지 뭐.’하고 해봤다. 나를 드러내는 것의 범위도 많이 넓혀봤다. 귀찮다고 넘겼을 일도 다시 한번 보고, 도전했다. 이게 다 오디세이에서 생활했던 영향이 크다. 수업을 진행하며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글 쓰는 것에 익숙해졌다. 관심 있던 음악에 대해 배워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오디세이 하자 7기 죽돌들과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관계를 이뤘다. 원래 좁고 깊은 관계를 만들어왔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넓고 깊은 관계, 하지만 약간은 불투명하게 채워진 관계를 만들었다. 동료가 이런 것일까 싶었다. 새로운 관계를 경험하고 그 관계로 엮인 사람들을 알게 된 것도 오디세이에서 얻은 큰 것들 중 하나이다.
올해 많은 무모한 일들을 벌이며 매사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던 태도가 이전에 비해 긍정적으로 변했다. 그 변화의 정도가 크지는 않은 것 같지만 변화의 틈이 생겼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 이 변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나의 상황을 두고 보면 음악, 플레이리스트 제목이 가장 설명하기 쉬울 것이다. 나는 들을 플레이리스트를 선정할 때 보통 제목을 가장 많이 본다. 올해 초에는 ‘잠만 자는데도 잠잠했으면 좋겠다.’, ‘이대로 사라지거나, 살아지거나’, ‘답답한 건 답이 두 개여서는 아니었다’, ‘영화 같은 삶’ 등의 제목의 플레이리스트를 많이 들었다. 대부분 가사가 없거나 보컬이 두드러지지 않는 노래들이었다. 들으며 가만히 앉아 생각하는 때가 많았다. 그때에는 여러 커다란 생각들이 겹치며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생각이 너무 복잡해지거나 과부화 되어 머리가 아파질 때는 bgm처럼 귓속에 들리는 노래에 집중하며 그 시간을 버텨냈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는 플레이리스트를 잘 듣지는 않는다. 여러 노래를 재생해 들을 때가 더 많다. 그래도 음악을 듣는 절대적인 시간이 많아 플레이리스트도 꽤 듣는 편이다. 요즘은 ‘첫 모금부터 설레는 게 난 좋더라고’, ‘일상은 균형을 맞추어가는 과정이었다’, ‘처음 듣자마자 반해버렸던 국힙 모음’ 등이 있다. 들으며 보통 과제를 하거나 게임을 하고는 한다. 전처럼 생각에 빠져있는 시간도 있지만 자주 그러지는 않는다. 필요한 정도만 적당히 하는 것 같다. 힘든 시기에 그랬지만 그래서인지 더 애정이 갔던 음악을 들으며 생각하는 시간은 나에게 있어 앞으로 필수적인 시간이 되겠다는 것을 올해 알게 되었다.
한 해를 한 편의 글에 담는 것은 쉽지 않다. 무모함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서 올해를 정리하니 좋았다. 글을 늘리려고 억지로 쓰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쓰다 보니 최소 분량을 채우지 못했다. 하지만 쓸데없는 말로 늘렸다면 더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