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갑자기 불렀다. ‘혜원아~! 이거 페이스북에 올라와 있는 학교 설명인데 한번 보는거 어때? ‘ 마감일 하루 전날이었는데 그렇게 큰 포부를 갖고 지원하지는 않았다. 단 한번도 말한적이 없는 이야긴데 솔직히 처음에 딱 끌렸던 이유는 일반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에는 정말 형식적인 말들로 가득 채워 냈고, 왜 왔냐는 질문에도 진실로 대답한 것도 있었지만 가식적인 대답도 했었다. 2020년 1년을 좀 전통이 강한 중학교에서 보냈던지라 더더욱 공교육과 내 일상자체에 지쳐있는 상태었다. 처음에는 도망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웠다. 잠깐 쉬고 싶었다. 물론 쉬고 싶었다는 말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기까지 별로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하루를 보내고 오면 바로 잠에 들어버렸다. 내가 체력이 별로 없었나 싶을 정도였다. 학기 초반에 수업시간에서의 적극적인 모습과, 여러 기획단에 참여하는 모습에 놀랐다. 내가 쉬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뭔가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 계기로 오디세이에서 뭘 배우고 싶은지, 왜 이 학교에 다니는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나를 돌아보니 솔직해 질 수 있었다.
그런 솔직해 질 수 있음 안에는 질문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받거나 하는 혹은 내가 내게 던지는 질문들 안에는 용기와 솔직함이 숨어 있었다. 처음에는 질문을 하는게 되게 어색했다. 또 질문을 받게 되면 어떤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어버버 했다. 하지만 점점 갈수록 질문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찰 시간이 되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유리의 이야기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데 계속 생각해보지 못한 반대편의 이야기와 질문을 하는게 낯설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내 시야를 확장하게 되었다. 뭔가 아닌 것 같거나 궁금함, 납득이 되지 않으면 왜 그런지 질문하게 되었다. 질문하는 습관 덕분에 더 많은 범위를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 나, 너, 우리, 사회로까지 확장하는 수업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다. 어쩌면 질문은 솔직함 그자체 일수도 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드러내고, 나의 생각까지 말할 수 있으며, 숨은 속뜻을 잘 찾아보면 우리의 상태를 알 수도 있게 하는! 우리는 그런 질문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오디세이에서 관계는 정말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었다. 나는 나와 맞지 않는 친구들과는 거리감을 뒀었다. 그냥 알아가기도 전에 관계를 종결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첫날부터 느꼈다. 여기에서는 거리감을 두는게 불가능했다. 결국 그냥 다 친해져보자! 라는 생각으로 모두에게 다가갔다. 친해져도 생활이나 무언가를 기획할 때 나와 맞지 않는 친구와도 함께 하는 과정이 어려웠지만 오히려 그런 관계에서 얻고 배운게 더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포기한 관계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서로 이야기 해보고 같이 해결해볼 시간도 없이 너무 빠르게 포기한 관계들이 많아 아쉽기도 했고, 앞으로 인간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 볼 수 있었다.
2학기 초반에 좀 방황하고 무기력한 시기었는데, 개인적인 문제니까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치회의 시간에 정말 놀랐는데, 절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돌아가면서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같이 논의 하는게 너무 놀라웠다. 그게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고, 그 문제를 해결해보기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써보는 경험이 너무 소중하고 신기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눠보니 정말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였다. 동시에 내가 이 오디세이 하자 라는 공간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이걸 계기로 정말 각기 다른 사람들이 오디세이에 모여서 함께 하고 있고 마음을 공유하고 있는게 정말 신기하며 위안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기술을 키워내거나 능력치를 올리는 일보다 다같이 할때의 협동심을 키우는게 더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그걸 해냈다. 기획활동을 하면서, 생활기술을 하며 가면 갈수록 우리의 손발이 척척 맞아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처음에는 같이 무언가를 할 때 ‘이게 우리들끼리 가능할까...?’라는 마음이 들었는데 갈수록 ‘우리끼리 같이 해보면 짱일 것 같은데...?’ 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하나만 뽑기에는 너무 많은 순간들 속에서 느낀점은 서로에게 배울점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그냥 같이 노는‘친구’로 생각하지 않고 함께 여정을 하기 위해 한배에 탔다는 생각을 하니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도, 이끌어주기도, 배움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정말 서로에게 ‘나침반’ 혹은 ‘동료’ 같은 존재라고 느꼈다.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과 힘을 다시 알게 되었다.
또 배움의 즐거움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사실 여기서는 내가 하는 것에 따라 많이 달라졌었다. 내가 어떤 활동에 참여하려 했을 때, 어떤 걸 배우려고 해봤을 때 얻는게 정말 많았다. 맨 처음에 읽었던 <좋은 선생도 없고 선생운도 없는 당신에게 스승은 있다> 라는 책을 읽으며 썻던 독후감이 있었는데 그 때는 그저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의 의미를 찾고 머리로만 이해했었다. 내가 해석 했던 의미는 ‘스승이 어린 아이이든, 하찮은 무언가이든, 배우려 하는 자세가 있다면 어디든 스승은 있는 것이다.’ 였는데 이걸 1년동안 정말 몸소 느꼈던 것 같다. 매일 인생의 깨우침을 얻으며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배운다는 것’에 대한 재미를 한번 들인다는게 정말 무서운 것 같다. 신기한게 여기와서 하루 하루가 되게 소중하게 느껴졌고, 진심을 다했다. 과외를 했던 시간이나, 무기력하게 있던 시간들이 조금은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기서 앞으로도 내가 배우며 살 수 있는 몸을 조금은 만들어놨다. 또 어떤 문제가 주어졌을 때 한 발 뒤에서 한단계 더 생각해 보려고 노력해 봤다. 하지만 이게 오디세이 수료 후에도 지속 되려면 내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나에게 지금까지 배운다는 건 점수를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 교과서에 내 생각을 적는 칸이 있었지만 결국 시험에서는 정해진 답을 말해야 했고, 그 정해진 답이 아니면 모두 오답이라고 하는 학교에서 총9년을 있었다. 여기에 와서도 솔직히 답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오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느낀 것 보다는 정답에 가까운 말을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뭔가를 많이 맞추거나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상황이 아닌 것을 알기에 내 배움의 방향성을 다시 다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 생각을 해보니 남을 이기려고 아득바득 했던 시간들이 되게 아까웠다. 하나를 뽑자면 운동을 할 때 내가 성장하기 위한 배움을 했어야 했는데 남을 이기기 위한 배움을 하다보니 쉽사리 지치고 왜 해야하는지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여기와서는 나를 위한, 내가 성장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내가 어떤 방향의 배움을 지향하고 싶은지 더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디세이에서의 1년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놨다. 1년간 이렇게 많은 것을 알아가고 성장한게 신기하다. 물론 이제 정말 시작인걸 알지만,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정말 깊이 고민해 볼 수 있었던 1년이었다. 사회에 나갔을 때, 뭔가 벽이 생기더라도 여기에서의 경험과 배움이 도움이 되어 나에게 주어진 문제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생각해 볼 수 있고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 배울것들이 정말 많이 있다는 것을 느꼈으니 앞으로 계속 배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 1년이 인생 참고서 느낌으로 나중에 돌아보며 더 많은 배움을 했으면 좋겠다. 1년동안 같이 배움을 해준 가경, 가을, 구름, 돌멩, 보리, 사루, 수인, 여실, 오일, 윤서, 재은, 은, 채린, 토리, 하은, 해우, 해인에게 너무 고맙다. 이 에세이에 모든 걸 담지 못해서 아쉽지만 그냥 그대로 지금의 나에게 남은 것들을 쭉 써봐서 생각 정리가 잘 되는 것 같다. 언젠가 다시 읽어볼 나에게 도움이 되길...!! 정말 애정이가는 오디세이에서의 1년이 곧 끝나는게 많이 아쉽다. 남은 하루하루들을 더 소중하게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