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나무입니다. 다들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다른 일이 아니라, 제가 이번에 하자의 추천을 받아 여성가족부에서 청소년푸른성장대상을 받게 되었어요. 좋은 상을 받도록 저를 추천해준 하자에 감사합니다. 코로나로 시상식이 취소되어서, 하자로 상장을 받으러 갔어요. 한때는 일주일에 네다섯 번씩 하자로 가는 버스를 타고, 멀리서 보이는 낯익은 얼굴들이 반가워, 문을 열기도 전에 인사를 건넸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올해는 하자에서 책모임도, 에디터즈도, 워크숍도 하지 않아서 간간히 기회가 생겨 들릴 때마다 약간은 그립고 새로운 기분이 듭니다.
상장을 받고 거품과 물길과 사진도 찍고, 근무 중인 판돌 효빛에게 슬쩍 인사도 건넨 뒤, 같이 온 친구 열대어와 국숫집에서 식사를 했어요. 열대어는 하자에서 만난 친구인데, 예전에 하자 근처에 있는 이 국숫집에 자주 와서 밥을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추위에 귀 끝이 붉어지고, 콧물을 훌쩍이면서 나도 여기 참 오랜만이네, 라고 대꾸를 했습니다. 집에 가는 길, 그간 하자에서 있으면서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려봤어요. 그러다 불쑥 조용한 혁명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2017년 겨울, 하자에서 <열아홉의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난 뒤였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다들 쉬느라 노느라 바쁜 그때. 스프링 캠프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는데 흔쾌히 같이 간 고등학교 친구 현이 있었는데요. 현이 스프링캠프에서 팀을 같이 했던 판돌 푸른이 책모임에 초대했다고, 저도 같이 하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 나가봤고, 매주 목요일 대학을 가지 않았다는 것만 비슷했던, 가지각색의 색깔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책 이야기도 했지만, 책 내용에서 흘러나와 우리가 목격한 것들을 공유했어요. 일상에서 목격한 여성 혐오, 영화관에서 목격한 세월호, 오늘 목격한 기후 위기 등. 저는 그 이야기들을 꼼꼼히 메모했습니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때로는 주말 간 왜 울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빠가 앞으로 뭐 하고 살지에 관해 물었고, 그게 어떻게 말싸움으로 이어졌는지, 본가에 내려갔는데 내 머리색과 옷차림을 보고 어떤 말이 이어졌는지, 나의 나이와 그 나이에 해야 할 당연한 것들 말고, 그냥 나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은 없는 건지 말이에요. 근황을 이야기하는 시간에는 밥 짓는 것처럼 가장 공을 들였고, 즉흥적으로 시를 짓는 것처럼 뭔가를 해보려고 할 때는 밥솥이든 냄비 밥이든 무엇이든 해보자는 식으로 했어요. 조용한 혁명과의 인연은 2020년까지 이어졌습니다.
같이 책모임을 했던 친구 찌루는 책모임을 떠나며 쓴 편지에서, 조용한 혁명을 시작한 건 2018년의 가장 잘한 일이라고 적었는데요. 제게도 틀림없이 그랬어요. 학교 밖에서의 삶을 시작한 저에게 그 삶도 살만하다고, 꽤 재밌다고 느끼게 했거든요.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고, 어떤 보험도 없는 맨몸으로, 그 무엇도 보상받지 못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삶이었어요. 청소년기에 생각했던 대학에 가지 않는 선택이라는 건요. 주위에서도 그렇게 말했고요. 대학 중심 사회가 만들어놓은 미로에 길을 헤매고 있었던 제가 끝내 나 자신까지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조용한 혁명에서 만난 연대와 따듯한 환대 덕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간 저를 스쳐 지나간, 그리고 여전히 제 삶에 남아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구체적인 이름들이 떠오릅니다. 많은 이들을 하자에서 만났고, 그 사실이 감사하네요. 하자에서 만난 조용한 혁명, 책모임은 중단되었지만, 각자의 삶에서 조용한 혁명은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저를 조용한 혁명으로 초대했던 고등학교 친구 현은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고, 지금은 일 년에 두 번 보면 그해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꽤 자연스러워졌어요. 하자도, 하자에서 만난 다른 친구들도 혹여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가끔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추운 겨울 모두 잘 보내세요.
:: 글_ 나무(하자 청소년. 10대 연구소 1기, 하자 디지털 에디터즈 1기&2기, 2018 서울청소년창의서밋 청소년 기획단, 2020 서울청소년창의서밋 청소년 펠로우, 마을책방 책모임 조용한 혁명 멤버, 하자 운영위원회 청소년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