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 일주일이었다. 우리는 11월 1일부터 11월 5일까지 닷새간 질문여행을 떠났다. 숙박이 아닌 하루하루 당일치기로 다녀온 지라 여행이라 하기엔 모호할지 몰라도, 이건 이거 나름대로 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전체를 간단히 줄이자면, 11월 1일부터 4일까지는 나침반* 조끼리 각자의 질문을 바탕으로 직접 짠 일정대로 움직였고, 마지막 날인 5일에는 전체가 모여서 각 조의 여행을 공유하고 캠핑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중 2일 차는 나의 질문을 바탕으로 내가 직접 기획한 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전체 여행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인데, 여기서는 이날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다. 내가 던진 질문은 ‘나를 살리는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였다.
* 나침반: 오디세이학교에서 나만의 중심을 잡는 소그룹 수업
나는 전부터 인간관계에 소극적인 편이었다. 먼저 다가오지 않으면 친해지고 싶더라도 먼저 다가가지 않고, 다가오는 사람은 불편하더라도 막지 않았다. 다가가면 불편해할까 두려웠고, 불편함을 말하면 상처 줄까 두려웠다. 또한 항상 나를 상대에게 맞췄다. 그러면서도 상대는 나에게 맞춰주지 않도록 노력했다. 배려하게 하는 게 미안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내 탓으로 돌렸다. 기분이 상해도 화내지 않고 상대가 화를 내면 바로 사과했다. 나도 내가 좀 특이한 걸 아니까, 내가 타인의 의도를 잘 파악 못 하는 거 아니까, 그냥 다 내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차라리 내가 없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인간관계를 피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곧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살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과는 멀어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가까워지는 걸까?’ 그리고 이 생각은 질문여행 2일 차의 ‘깊은 이야기’ 시간으로 이어진다. 나는 그때 이에 대해 나침반 구성원들에게 상담했다. 답은 간단명료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나왔다. 아니, 사실 나도 처음부터 다 알고 있던 거였다. 친해지고 싶다면 먼저 다가가야 한다. 불편하다고 하면 안 하면 되고, 내가 불편하면 말해줘야 한다. 내가 특이하다 해도 그건 결국 성향 차이다. 상호 간의 이해는 배려가 아니라 기본이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결과는 하고 난 뒤 생각해도 된다. 상대의 말을 깊게 생각하면 안 된다. 깊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왜곡된다. 나를 생각해야 한다. 나를 생각했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안다고 해도 실천하는 건 어렵다. 상대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싫어한다는 걸 알았을 때 ‘그럴 줄 알았어’하고 덜 상처 받을 수 있고, 다 내 잘못이라 생각하면 남을 싫어하지 않을 수 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런 생각은 확신으로 바뀐다.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그래도 나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남의 입을 통해 직접 듣는 건 크게 다르다. 혼자 하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이기 때문에 기분에 맞게 마음대로 변형시킬 수 있다. 기분에 맞는 생각은 강화되어 확신으로 변하고 기분에 맞지 않는 생각은 약화되어 그럴 리 없다며 무시하게 된다. 즉 다 안다고 해도 때에 따라 답이 자유자재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의 입을 통해 듣는다면, 특히 다수에게 공통된 답을 듣는다면 그건 더 이상 변하지 않게 된다. 마구잡이로 흔들리던 나침반 바늘이 탁하고 멈추는 것처럼 말이다. 아, 다들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구나. 하고 생각의 방향을 고정 할 수 있다. 물론 내 생각이기 때문에 방향을 고정하더라도 얼마든지 다시 바꿀 수 있다. 그게 맞는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이번 여행에서 찾아낸 답을 답이라고, 이 방향이 맞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나침반 구성원들의 말은 그 방향이 틀어지려고 할 때 다시 고정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내가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던 질문은 단순히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법은 뭘까?’였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입력된 질문이 ‘나를 살리는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법은 뭘까?’가 됐을 때 조금 오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살리다니, 잘 와닿지도 않고 어감도 이상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딱 맞는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혼자 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간 혼자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때 관계를 통해 방향을 찾고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나를 살리는 건 관계다.
:: 글_ 가을(오디세이 하자 7기)
오디세이 질문여행 - 파워레인저 보리포스 팀
‘낯선 것’의 연속
질문여행 주간은 ‘낯선 것’의 연속이었다. 수도권이지만 도시같지 않은 곳,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것, 오랫동안 안 했던 것, 안 해본 얘기 등 일상속에서의 내가 경험할 수 없던 것들이었다.
내가 질문 여행 중 느낄 수 있었던 낯섦 중에는 공간에서 오는 낯섦이 있었다. 학교며 집이며 빽빽 한 건물 사이에 위치해서 항상 답답함을 느꼈었다. 그런 나에게 2층 버스를 타고 서울을 벗어나 마을 버스 하나 잘 다니지 않는 곳에 간다는 것은 꽤 새로운 느낌이었다. 인도도 나있지 않은 길을 걷다 못해 겨우겨우 택시를 잡아 타기도 하고 갈매기 때가 우는 바다에 가보기도 하며 일상에서 벗어나 낯섦을 느낀 것 같다. 캠핑장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서울이지만 별이 보이는, 서울이지만 높이 솓은 건물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던져졌기에 친구들과 얘기할 때도 솔직하고 깊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질문주간에 갔던 곳 중에서 수요일에 갔던 ‘어둠 속의 대화’라는 전시가 가장 색다르게 다가왔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 뜬것과 감은 것이 구분되지 않는 공간에 위치한다는 것은 살면서 한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시각을 쓸 수 없게되니 촉각이 굉장히 예민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1시간 30분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프로그램에서도 평소와 다른 걸 해볼 수 있었다. 남의 옷을 골라 그 사람에 맞게 코디를 해준다는 것은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나는 내가 입히고 싶은 옷을 골라서 선물했지만 그래도 뭐가 가장 잘 어울릴까를 생각하며 내 옷을 고를 때보다 훨씬 더 신중과 시간을 가해 고른 것 같다. 화요일 프로그램에서도 학교에서라면 잘 하지 않을 것 같은 얘기를 서로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날 것의 대화들도 오갔는데 날 것의 대화도 할 수 있는 관계를 가졌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오묘했다. 목요일에 진행했던 자전거 타기 또한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종류의 프로그램이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종류의 프로그램이다 보니 하기 전에 걱정을 좀 많이 했는데 걱정보다 많이 힘들었다. 뭐 좋았든 안 좋았든 또 하나의 경험으로 남을 것 같다.
여행 중 먹었던 음식들에서도 낯섦을 느꼈는데, 바다를 갔을 때 원래 같으면 절대 생선 같은 것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맛이 어떠했든 그 회를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경험이 된 것 같다. 목요일에 했던 릴레이 요리도 낯선 경험이었다. 혼자서도 잘 안 해먹는 요리를 다같이, 하지만 따로따로 한다는 것이 참 어려웠던 것 같다. 차례가 돌아오면 뭘 해야 할지 몰라 얼어붙었다. 그래도 차례가 지날수록 점점 뭐라도 해나갔던 것 같다. 어떻게 되든 일단 뭐라도 해본 것 같다. 뭔가 각자가 모여서 요리를 완성한 느낌이라 신기했던 것 같다.
질문여행 주간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과 친구들과 좀 더 진솔하고 깊게 얘기할 수 있었던 시간을 제공한 것 같다. 물론 숙박을 했다면 좀 더 새로운 경험과 친구들과의 진솔하고 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을 확신하기에 아쉬움도 남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숙박이 없었던 것을 굳이 감안하지 않아도 4일간의 시간을 꽤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서로 얘기하고 사진을 찍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보냈던 시간은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힐링이 됐다. 같이 경험한다는데서 기분이 좋았고 대화를 하면서는 나침반이 되기 전에 대비해 많이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아 따뜻한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그리고 나침반 멤버들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었던 시간같다. 정말 하나도 맞지 않는 취향부터 각자 기깔나는 삶이란 어떤 것이라 생각 하는지, 첫인상 현인상 까지 그전에 알았던 것도 더 자세히 알게되고 몰랐던 것도 알게 된 것 같다. 이렇듯 4일 동안 보낸 우리의 시간은 내게 새로운 경험, 어쩌면 휴식,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보리포스 멤버들만의 소중한 기억, 추억, 시간으로 남은 것 같다.
:: 글_ 윤서(오디세이 하자 7기)
오디세이 질문여행 - 미운오리재은 팀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이번 여행의 계획을 짜기 시작하면서 질문을 모을 때는 약간 뭔가 맞지 않는 틀에 무언가를 끼워넣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그쪽으로 가지도 않았고 뭔가 가슴이 설렌다거나 하는 느낌도 없이 둥둥 떠있는 듯한 기분으로 시작했다. 계획의 방향성을 틀면서 드디어 탁탁 맞춰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디를 갈지 장소를 찾으면서도 그 속에 있는 우리를 상상하면서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우리가 만들어낸 계획들이 계획대로 될까 살짝 불안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계획을 벗어나면서 일어나는 이벤트들을 내심 기대하기도 했던 것 같다.
여행을 직접 맞닥뜨리면서 짜여있는 계획들에 탁탁 맞게 움직이기도 하고 계획에서 잠시 벗어나 갔던 책방이라거나 그 외의 시간들도 너무 좋았지만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며칠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서로 너무 많은 시간을 붙어있다보니 작은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도 뭔가 신발에 작은 돌 하나가 들어간 것처럼 신경을 안쓰려고 해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고생한 기억이 나중에 더 기억이 잘 난다지만 이번여행을 보낸 후 나한테는 그 고생을 하는 기억보다는 그 고생을 어떻게 잘 지나가게 했는지가 더 깊게 남는 것 같다. 1일차, 2일차, 3일차 오전을 보내면서 조금씩 축적된 것들이 나도 모르게 많이 차 있었나보다. 나 스스로 이 때가 제일 힘들었다고 생각하는지, 이번 여행을 생각하면 신경이 곤두서있던 나에게 가장 큰 안정을 준 청운도서관 속 대나무 숲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가는 길 버스에서도 마침 혼자 앉아서 바람도 쐬고 도서관에 있던 시간 내내 혼자있었더니 훨씬 안정되고 편안해졌던 것 같다.
숲이라기에는 해봤자 우리집 거실보다 조금 큰 아주 작은 규모였지만 그 공간이 준 영향을 생각하면 숲만큼이나 거대해서 더 숲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대나무 숲 위에 뚫린 공간으로 바람이 계속 불어왔고, 대나무가 서로 스치면서 들리는 소리와 책을 한장한장 넘길 때마다 들리는 종이 소리가 머리카락이 얼굴에 스치는 것처럼 사락사락 들려와서 좋았다. 밖에 지나다니던 사람들 말소리도 작게 조금씩 들렸었는데 이 대나무 숲, 그러니까 내가 있는 이 공간이 사람들이 있는 곳과 연결되어 있는데도 나 밖에 없으니까 세상에서 분리된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묘하고 좋았다.
그리고 딱 간 카페에서 마신 애플 시나몬 차가 향이 너무 세서 흠칫했는데 마셔보니 너무 달달하고 계피향이 딱 달달함을 적당하게 잡아줘서 같이 먹은 얼그레이 스콘, 베리 치즈 브라우니, 초코 브라우니랑 잘어울리고 향긋해서 좋았다. 혼자만 있는 곳에서 대나무 사이에서 책을 읽고 나와서 따뜻한 달다구리들도 먹으니까 정말 기분이 몽실몽실해졌다. 또 해는 안보였고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다같이 앉아 있던게 좋게 남아있다. 그 날 저녁에 팔짱끼고 하루닫기 하던 것도 너무 웃기긴 했는데 좋았다. 공기는 되게 찼던 것 같은데 소소하게 웃고 떠들면서 하루닫기 한게 너무 따뜻하게 기억된다. 이 날은 집에 돌아가서 며칠 동안은 집에서 안나오고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기차여행에서 기차는 내 생각보다도 너무 짧게 느껴졌다. 이 날은 비가 와서 들어갔던 카페랑 정자에서 본 야경이 많이 생각난다. 카페 소파가 너무 편했고 전체적으로 조명이 너무 예뻐서 갖고 싶었다. 작게 나눈 얘기도 즐거웠다. 정자에서 본 야경은 빛들이 반짝이는 건물들 사이로 큰 도로에 자동차 불빛들이 지나가는게 반짝반짝하는 별 같아서 밤하늘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한 기차의 낭만은 돌아가는 길의 기차에서 느낀 것 같다. 따뜻했고 조용해서 아침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여행마무리 날에는 오랜만에 마주친 얼굴들이 반가웠다. 여행 중에도 가끔 떠올라서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마주치니 다들 어떤 여행을 보냈을지 궁금하고 뭔가 집에 돌아 온 것처럼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일주일도 안되게 떨어져 있었는데도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수료하고 나서 아주 많이 보고싶고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두가 모여서 놀면서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반가웠다. 고기를 먹고나서도 다같이 불을 쬐고 있던 그 순간도 좋았고 몇명이서 밤하늘을 보면서 산책한 것도 많이 떠오른다.
여행을 다녀오면 뭔가 공허한 느낌이 든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느껴지고 지나고 돌아보면 더 빠르게 느껴진다. 좋았던 시간이던지, 좋지 않았던 시간이던지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가지만 이 시간들은 좀 더 오랫동안, 느리게 흘러갔으면 하는 욕심이 계속 생긴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 지금 이 때를 기억하는 나는 어떨지 궁금하다. 이 때를 너무 많이 그리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