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2월 12일. 아이는 총소리를 들었다. 급히 땅굴로 숨었으나 군인은 기어이 방아쇠를 당겼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아이와 오빠 뿐이었다. 불타는 집에서 멀어지려 안간힘을 다해 기는 중에 도처마다 들리는 건 비명소리였다. 마을 곳곳에서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 날 학살에서 목숨을 건진 아이, 응우옌티탄. 5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싸우는 사람이 되었다. 하늘로 간 가족들의 제사를 지내는 마음으로 한국과 베트남을 바삐 오가며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진상규명을 외친다. <기억의 전쟁>은 바로 그 여정을 담은 영화다.
응우옌티탄 아주머니가 처음으로 한국 땅에 발을 디뎠던 날, 그는 두려움에 몸을 덜덜 떨고 밥도 거의 먹지 못했다고 했다. 몸이 알아서 반응하는 과거의 고통. 순간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나도 가족들과 베트남에 간 적이 있었으니까. 우리는 저렴한 가격에 감탄하며 쌀국수를 먹었고, 예쁜 카페와 북적이는 야시장을 누볐다. 그 중에서도 다낭이라는 도시는 깔끔하고 소박한 느낌이 마음에 꼭 드는 곳이었다. 그 때는 알지 못했다. 다낭에서 겨우 20분 떨어진 퐁니·퐁넛 마을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 일어났었고, 그 때 탄 아주머니는 겨우 여덟 살이었다는 걸 말이다.
<기억의 전쟁>을 보고 나서야 탄 아주머니와 나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비로소 체감한다. 나는 앞으로 베트남에 갈 때마다 슬픔을 느끼겠지만 이내 그 감정을 제쳐둔 채 마음껏 베트남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한국은 탄 아주머니에게 단순한 관광지로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을 현재진행형으로 경험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화면을 가득 채운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거듭 생각했다. 나는 영원히 이 아픔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묘하게 낯선 감정이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헤아려야 한다고 배워오지 않았나? 이해야말로 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당연하게 믿었었다. 그런데 <기억의 전쟁>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한 믿음을 부쉈다. 한 발짝 물러나서 증언과 기록을 접하는 것만으로는 ‘학살’이라는 파괴적인 경험을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겪지도 않은 일을 어설프게 이해하고 어루만지려던 마음이, 그만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영화를 보고 나서부터는 ‘너를 이해한다’는 말을 아끼게 되었다. 가까운 사람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 고백했을 때, 아빠의 장례식 소식을 전하며 희미하게 웃어보였을 때, 부모에게 폭력을 당한 경험을 간신히 뱉었을 때, 섣불리 해석하는 대신 조용히 등을 쓸어내리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들은 이야기들은 그 사람이 실제로 겪은 것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것처럼 굴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듣는 것이었다. 곁에 앉아 손을 잡고, 꼭 안아주고, 휴지를 건네주고. 내가 해 준 것은 별로 없었지만, 친구들은 매번 조금은 나아진 표정으로 떠났다.
그럴 때면, 기실 아파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예를 들어, 나는 이성애자들이 퀴어인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매일 혐오표현을 듣고, 부당한 질문에 말문이 막히는 삶을, 그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경험이냐고 솔직하게 물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가 준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이해할 수 없다고. 그리고 꼭 이해할 필요도 없다고.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그 사람과 같은 종류의 아픔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은 그런 차별이나 폭력을 경험한 적이 없더라도, 끝까지 함께 서겠다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그러니 “너의 가족에게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 보라는 말은 (그 의도와는 별개로) 인간이 가진 연대의 힘을 너무 낮잡아 보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보다 더 나은 존재다.
잠이 오지 않는 고요한 새벽이면 나는 유난히 긴 밤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 아픔을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순 없더라도 곁에서 지키게는 해 달라고, 그들이 덜 아프고 더 행복하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 아이유 님의 노래 ‘Love poem’ 가사에서 인용했습니다.
:: 글_자몽(2021 하자 뉴스레터 객원 에디터)
학교 안팎을 넘나들며 배움을 찾는 사람.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동안 혼자 써내린 일기가 한 가득인데요, 이젠 더 많은 이들에게 가닿는 글을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