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이후 지금까지도 경기와 선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메달의 개수와 성적만을 중시했던 과거와 달리 선수의 노력과 과정에 집중하며 발전한 스포츠 문화를 보였다. 반면 비상식적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 중심에는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가 있었다. 안산 선수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3관왕을 달성하며 유일무이한 실력으로 화제가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수에게 응원과 환호를 보냈지만 일부 남초 커뮤니티의 반응은 달랐다. 그들은 선수가 특정 지역의 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이고, 숏컷의 헤어스타일을 했다는 이유로 그를 ‘페미니스트’라고 일반화하며 논란을 벌였다.1) 또한 SNS에서 팔로우하는 연예인과 유튜버, 가방에 단 배지, 사용한 유행어 등을 조합하여 페미니스트임을 확정했다. 선수의 사상 검증을 요구하고 금메달을 반환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일었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말이다.
페미니스트가 대체 누구길래 이토록 혐오하는가. 어마 무시한 테러 조직 혹은 범죄 집단이라도 되는 걸까? 나는 불과 3년 전 검색창에 페미니스트를 검색했었다. 당시의 대한민국은 다른 이유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여성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보통 범죄에 있어 숨고 부끄러워해야 할 대상은 피의자다. 대부분은 그렇다. 하지만 유독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강요하며 피해 사실을 감추기를 강요하는 범죄가 있다. 직장 상사에게, 학교 선생님에게, 친구에게, 가족에게…. 당한 폭행을 숨기고 살던 여성들이 ‘미투’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며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자청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나 또한 그 대열에 있었다. 페미니즘을 알고 싶었다. 그렇게 검색한 결과, 포털사이트가 알려준 페미니스트는 다름 아닌 “성평등을 위해 힘쓰는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정의하는데 단 1분도 걸리지 않았다. 현재의 사회에서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모두가 페미니스트인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주변의 반응은 달랐다. 여성이 무슨 차별을 받느냐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미투 운동의 생생한 현장에 있으면서도 말이다. 과연 지금의 사회가 성별에 관계없이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같은 스펙, 같은 연차라도 성별에 따라 임금이 나뉘고2) 기업의 여성 임원의 비율은 전체의 4.9%뿐이다.3) 타고난 힘이 남성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범죄의 타깃이 되기 쉽고 특히 성범죄는 피해자의 93.5%가 여성이다.4) 통계적으로 드러난 측면만 봐도 이렇다. 그저 흐린 눈으로 넘기기에는 생계와 사회적 지위는 물론 생명과도 밀접한 일이다. 2) 한국 여성노동, 생각해 봐야 할 3가지(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송현숙 논설위원·오경민 사회부 기자, 2021.08.13)
하지만 사회는 페미니스트를 무척 예민하고 과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 당연한 것 마냥 살아온 일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스로 관심 갖고 찾아보지 않는 이상 대개 페미니즘을 잘못 알고 있다. 미디어에서 접하는 페미니즘은 악마의 편집에 가깝다. 언제나 자극적인 사건만이 보도되고 알려지며 과격한 측면만이 전부처럼 퍼졌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고는 더 이상 알려하지 않았다. 이는 극심한 젠더갈등과 혐오로 이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일조차 어려워졌다. 함께 신념을 드러내는 것이 생존권과 직결되기 시작했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채용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다니던 일자리에서 잘리는 일이 발생했다. 안산 선수와 마찬가지로 머리 스타일이 짧거나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일명 ‘페미 몰이’를 당하는 일도 잦았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커뮤니티에는 대놓고 혐오 발언이 이어졌고 주변의 한 친구는 여성학 수업을 듣는다는 이유로 ‘꼴페미(페미니스트를 비꼬는 말)’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 계속해서 놓이다 보니 쉽게 의견을 밝히기 힘들어졌다. 또한 엄청난 신념과 전투력 정도는 있어야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며 진입장벽 자체가 높아졌다.
2018년 이후 나는 언제나 페미니스트였다. 추구하는 방식이나 외향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던 작년 여름, 머리를 짧게 자르고 친구들 앞에 나타났다.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배에 힘을 주며 딱 붙는 원피스를 입다 든 회의감으로 인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자 한 친구가 “너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거야?”하고 물었다. 친구가 말하는 ‘그렇게’가 무슨 의미일까 곱씹던 중 다른 친구가 말했다. 원래 모든 사람이 페미니스트인 것이 당연한 거라고. 그렇다. 내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래야 하는 것이었다.
비교적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사람들마저 ‘페미니즘 자체의 의미는 좋지만 한국 페미니즘은 틀렸어’라고 말하고는 한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럼 어떤 페미니즘이 옳은 페미니즘이냐고. 당신은 평등한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냐고.
현재 사회는 과도기에 있다. 이 과정에서 페미니즘이 오히려 젠더 갈등을 심화시키고 악영향을 끼친 것과 같이 느껴질 수 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한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가 이뤄낸 성과를 보자. 여성에게만 책임과 형벌을 요구하는 낙태죄를 폐지시켰고 수많은 권력형 성범죄를 수면 위로 떠올렸으며 내가 당한 것이 데이트 폭력임을, 성차별 임을 알게 했다. 임금격차와 직업적 편견에도 꾸준히 목소리 냈으며 차별과 혐오를 겪은 여성들과 함께 연대했다. 난 페미니즘을 알고 진정한 자신을 찾았다. 세상은 분명 변화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 한다. 목표가 같더라도 각자 나아가는 방식은 다르다. 수 만 명이 같은 속도로 걸을 수는 없다. 단,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 부당한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휩쓸리지 않고 진정한 각자의 당연성을 찾아야 한다. 결국 페미니즘 논란 따위는 있을 수 없다. 반페미니즘 논란만이 존재해야 할 뿐이다.
:: 글_ 환희(2021 하자 뉴스레터 객원 에디터)
이름값하며 살고 싶은 재미만능주의자 환희입니다.
욕심나는 건 뭐든 해봐야 직성이 풀립니다. 원하는 것 모두 차곡차곡 쌓아 안고 갑니다. 기록 속에 영원히 남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