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이라는 단어에 꽂혀 걸음 한 게 무색하게도 나는 끼니도 잘 챙기지 않은 채 한동안 잠만 잤습니다. 아직 여름의 꼭대기까지는 먼 유월에, 비교적 시원하다는 부산이지만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는 햇빛을 피해 옹송그리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거든요. 그러고 파리 날개 같은 홑이불을 덮자면 불가역적인 잠이 불어오지요.
아니, 아닙니다. 이 섭식 방기에는 다른 원인이 있었으니, 제 식성이 십 대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탓이에요. 식성이라 부르는 게 아직 맞지 않을 때였지만, 가족들은 그렇게 받아들인 모양이더군요. 내키지 않는 변화라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캐리어를 달달달 끌고 들어온 다음 날, 부러 구워 올린 물살이1)를 보고 “저… 요새 채식해요.” 해서려나요. 하여튼, 밥을 차려줄 이유가 없어진 건 분명합니다.
고작 며칠 머물다 갈 몸. 이미 꽉 찬 냉장고를 부풀리는 데도 눈치가 보였습니다. 결국 식은 밥과 김치를 훔쳐 먹거나, 겨우겨우 집 앞 슈퍼에서 사 온 토마토나 오이 등을 씹으며 밥을 때웠지요. 배를 채워도 어쩐지 허기진 날들이었습니다.
그날은 낮잠을 자다, 누군가 일찍 들어오는 소리에 가물가물 깬 채였습니다. 나가 보니 아빠의 손에 들린 수상한 검은 비닐봉지 여럿이 식탁 위에 턱턱 얹히고 있더군요. 조용히 방문을 닫은지 한참. 문이 벌컥 열립니다.
“회 비빔밥 먹어라.”
“회? 웬 회?”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며칠만에 제 의사표명이 망각의 강을 따라 흘러가버린 걸까요?
아빠는 프라이팬에서 정체 모를 무언가를 밥이 소복하게 쌓인 그릇 위로 부어 넣고 있었습니다. 나는 건네진 음식을 두 번이나 거절하고 싶지 않았기에 의혹이 실린, 그러나 웃음기를 섞은 목소리로 “뭐예요?” 물었습니다.
“먹어 봐.”
“나 회 안 먹는데.”
“먹어 봐.”
떨떠름하게 식탁에 앉았습니다. 아빠가 내려놓는 그릇에는 미나리가 한가득 쌓여 그 아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걱정스레 숟가락으로 미나리를 제치자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났고, 작고 네모나게 썰린 무언가가 초고추장 위에 흩뿌려져 있었어요. 그건… 희부옇거나 투명한… 양파였습니다. 내심 포가 뜨인 살점을 보게 되는 거 아닌가 싶어 바짝 올랐던 긴장이 탁 풀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뭐, 말할 것 있나요.
이르는 대로 현미밥과 채소들, 양념을 고루 비벼 섞었습니다. 불그스름해진 밥을 한 숟갈 크게 떠 입에 넣으니 한 김 식은 양파가 밥의 온기를 머금은 채 볼륨감 있게 씹힙니다. 물이 오른 미나리는 이에 씹히며 쏙닥이는 소리를 냅니다. 참기름 향긋한 내와, 회 비빔밥에 늘 자리하던 새콤매콤한 초고추장의 맛.
“맛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아빠가 너무 뿌듯해해서 울지 않았습니다.
남은 며칠, 나는 허락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 재료들로 밥을 해 먹었습니다. 아빠의 레시피를 그대로 베끼기도 하고, 쓸쓸히 박혀 있던 메밀면과 함께 채소들을 초고추장 양념에 무쳐 먹기도 하고요. 식탁에서는 혼자였지만 그제서야 집에서 밥을 먹는 듯한 기분이 났습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여기가 더는 내 집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자취방은 생각만큼 푹푹 찌지 않았습니다.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오니 오히려 살 것 같았어요. 나는 내 집으로 돌아왔다며 기뻐했습니다. 짐을 대강 풀고, 이제 밥을 해 먹으려는데…
아차, 냉장고를 비우고 갔다는 걸 그제서야 기억해 냅니다. 손에 익은 비빔국수를 하려고 해도, 본가에서 먹던 그 면이 없으니 내키지 않네요. 나는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그러자 내가 고르지 않은, 초록식물이 무성한 천장 벽지가 원치 않는 상쾌함을 선사하려고 하더군요. 보고 싶지 않아 모로 누웠습니다. 집에 돌아온 줄 알았는데, 마음 편히 되는 게 하나 없습니다. 냉장고에는 좋아하여 여러 병 사둔 녹차 음료만 가득하고….
그때 번뜩 떠오릅니다. 밥을 녹차에 훌훌 말아 먹는 음식이요. 오차즈케! 마침 햇반은 있어서, 나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찬 녹차에다 먹을 것이냐, 따뜻한 녹차에다 먹을 것이냐. 찻잎은 없습니다. 우려 나온 찬 녹차 음료를 다시 끓이는 건 아무래도 좋은 선택이 아니겠고, 차게 식은 방 공기에 찬 녹차라는 선택은…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군요.
나는 용케도 후끈한 습기 속에 발을 딛기로 했습니다.
기껏 나갔다 온 게 아쉬우니 냉동실에 잠들어 있던 마늘을 꺼냅니다. 편으로 썰어 올리브유에 얹고, 인덕션 불이 오르면 약불에 자글자글 튀기듯 굽습니다. 물을 올려둔 커피포트에서 바그르르 끓는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리다가, 머잖아 버튼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마늘을 한번 뒤적이고 커피포트의 뚜껑을 엽니다. 녹차는 낮은 온도에서 우리는 게 좋다니 두 김쯤 식힐 요량입니다. 인덕션의 불을 끈 뒤 찻물을 곧장 밥그릇에다 우릴지 고민하다, 조금 더 신경 쓰기로 합니다.
빈 유리병에 물을 붓고, 티백을 넣습니다. 다 데워진 햇반을 숟가락으로 퍼 아끼는 그릇에 동그랗게 담습니다. 녹차가 우러나는 짧은 시간 동안 밥알의 겉면이 에어컨 바람에 식습니다. 유리병 속의 물이 연한 녹색을 띠면 더 늦기 전에 티백을 꺼냅니다. 푸른 유리그릇에 찻물을 부으면, 찰랑찰랑 차오르며 오후의 햇빛을 산란시킵니다. 마지막으로 튀기듯 구워낸 마늘을 젓가락으로 집어 둥글게 쌓은 밥 한가운데 올립니다.
양손으로 따뜻한 그릇을 쥐자 가슴이 꽉 차오르는 것 같습니다. 값싼 티백으로 우린 차라도 향기롭기 그지없어요.
그 순간에야 나는 내 집에 도착했음을 압니다. 본가도, 내키지 않는 벽지를 두른 자취방도 아닌 여기가 내 집입니다. 양손에 닿는 따뜻하고 매끈한 감촉, 살짝 싸늘하다 싶은 공기, 튀긴 마늘에서 약간의 탄내와 고소한 냄새를 함께 맡는 나. 나 말입니다.
찬 공기에 찻물이 식을세라, 얼른 숟가락을 들어 밥알을 훌훌 떠먹습니다. 고민하고 조리한 시간이 무색하게 그릇은 금세 비워졌습니다. 오차즈케는 아주 맛있었습니다.
1)물에서 사는 생물을 일컫습니다. 음식이라는 뜻이 전제된 ‘물고기’나 ‘생선' 대신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 글, 그림_ 한지(2021 하자 뉴스레터 객원 에디터)
종종 쓰고 가끔 그립니다. 주변 이야기를 다 알아 듣진 못해도 다 듣고는 싶은 사람. 이젠 잘 말하고도 싶지만... 투 비 컨티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