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도 맥을 못 추는 삼복더위, 하자 본관 앞 살림집에 꽃대 단단한 꽃들이 피었다. 꽃은 대개 봄에 주목받는다지만 봄이 가도 꽃은 피고, 외려 뙤약볕에 곧은 꽃대가 더 질긴 힘이다.
이즈음이면 하자작업장학교는 봄 학기 학습 공유회와 수료식을 준비한다. 학기의 맺음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이 시간은 언제나 잔치여야 할 텐데, 모이기 힘든 상황으로 인해 올해 봄 학기 마무리는 전시 형태로 준비했다.
전시 장소는 살림집. 수년 전 하자작업장학교와 청년작업장 죽돌들이 땀으로 빚은 곳이다. 지금의 죽돌들에겐 더 남다른 의미일 것이다. 죽돌들은 쌓인 먼지를 쓸고 닦으며, 그들을 닮은 네 평 남짓 소박한 공간에 전시를 준비했다. 벽마다 각자의 전시 공간을 차지하고 학습의 결과물을 올렸다.
하나같이 같은 모양의 벽은 없어서, 자신을 드러낼 공간을 찾는 일은 더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외교이기도 했을 것이다. 썩 마음을 쓰는 일이었을 텐데, 매번처럼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그 모양의 모퉁일 떼어주고 작품을 올렸다. 말 못한 아쉬움과 서운함 위로 죽돌의 얼굴이 엮인다. 늘 그랬듯 설렘보단 아쉬움이 더 크지만, 이젠 아쉬움도 말없이 묻어낼 줄도 아는 건가 싶기도 하다.
※ 사진을 넘겨보실 때는 사진 위 화살표를 눌러주세요!
1/1
Loading images...
죽돌들은 못다 한 말은 또 조금 삼키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지켜가며 자신을 드러냈다. 공간이 부족할 땐 ‘자립과 생활기술’* 수업에서 배운 기술로 전시대를 만들기도 하고, 밋밋한 공기는 ‘현미 네 홉’ 수업에서 기른 꽃들로 채웠다.
* 학교 공통수업으로, 손과 몸의 감각을 깨우는 수업으로 손공구, 전동공구를 익혀 목재를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들었다.
전시 오프닝을 앞둔 살림집을 보고 있자니 죽돌들의 작품과 폐컨테이너, 볏짚 난방재, 꽃들이며 책들이며 어울릴 거라곤 생각지 못할 모양들이 뭉쳐 무늬를 만든다. 참 그들을 닮아있었다.
봄에 피는 꽃이 아니고, 봄이 가고 피는 꽃이고, 봄이 가도 피는 꽃으로, 그래서 그들이 더 소중하고 귀한 사람으로 피어날 거란 믿음이다.
아래는 죽돌별로 간단한 수료 전시의 설명을 덧붙인다.
소월(3학기 수료생)
그림 그릴 때 행복하고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죽돌이다. 전시에는 디자인 수업에서 한 학기 동안 몰입하여 만든 포스터, 키링, 엽서 등의 결과물들을 전시했다. 맑고 부드럽지만 선명한 이야기가 느껴진다. 또 생활기술작업장에서 만든 테이블은 마감이 아주 세심한데, 그가 그렇다.
진구(3학기 수료생)
매번 진로 고민으로 애를 쓰지만, 손으로 만들어내는 일에 관심이 많다. 졸업프로젝트에는 영등포미래학교네트워크에서 배운 직접 만든 비건빵 사진과, 개인프로젝트로 죽돌 타타와 함께 진행했던 스페인 요리의 레시피 북을 준비했다. 수업에서 만든 스툴도 있는데, 그저 나무의자인 듯하지만, 엄연한 작품이다. 제목은 ‘멈춰’. 생각해서 ‘삐그덕’거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한편엔 ‘다섯 줄 이상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그의 글과 시를 읽을 수 있다.
채소(1학기 수료생)
올해로 작업장학교가 처음인 죽돌이다.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며 다양한 활동과 함께 배움을 이어갔다. 스칼리올라 기법*을 이용한 캔들홀더를 작품으로 전시했다. 중간에 참여한 생활기술작업장 수업에서도 마지막까지 작업하여 좋아하는 화분과 책을 놓는 책꽂이도 남겼다.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하자센터와 학교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았고, 그 사진이 전시되어있다.
(*다양한 색상의 반죽을 만들어 뒤섞어 무늬를 내는 기법으로, 단단한 인조 석재를 만들 수 있는 미장기법)
개순이(3학기 수료생)
삶의 의미를 찾아서 자신의 언어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해왔다. 지난 학교에서의 시간을 응축한 작품을 올렸다. 자신을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는 존중과 배려의 언어를 기억하는 활동을 전시했다. 관객 참여형 전시로 관객이 직접 ‘상냥한’ 문장을 쓰고 불러보는 노트가 있다. 옆에는 자신의 곁에 함께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긴 낭독CD 플레이어가 있어 들어볼 수 있다.
타타 (5학기 수료생)
학교에 가장 오래있던 죽돌로 항상 새로운 죽돌들을 챙겨왔다. 5학기 동안 기타라는 동반자와 함께 자신을 설명해왔다. 그 과정 속의 모순과 한계를 매번 마주하면서도 기타를 놓지 않았다. 연주회를 통해 10대의 끝을 장식하려 했으나 모이기 힘든 상황으로 인해 연주회를 대신하여, 연주 영상을 하나로 묶어 전시했다. 전시장의 은은한 배경음악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