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처
나의 교실은 6제곱미터, 네 것은 그보다 더 넓고
우린 쉬는 시간에 언덕으로 도망쳐 줄지 않는 속력으로
밑을 향해 달리면 너는 내 뒤를 걸으며 어딜 봤을까
나누던 웃음은 들리지 않게
환절기의 교실은 시끄러워진다
수업이 시작된 뒤 교실에 도착하고 화장실을 간 나를 기다려 주는
너는 네 조그만 희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손을 잡으면 언덕 꼭대기에 선 것만 같지
가끔 너는 나를 못 보기도 했다
교실의 형광등이 나를 때릴 때 웃으며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복도는 길고 좁아져 공기가 울리고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너는 거기 없었다고 외웠다
바람 불지 않는 언덕은 바탕화면 같아 풀밭은 거칠고 결백하고
행복한 만큼 두려웠다고 믿어버리기도 하고
버려졌다고 느끼는 건 싫지만 너는
나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야, 그저 무심한 사람이야
그래서 미안하다
언덕에서
벽돌을 선물했지 난 이걸 받고 울어야 할지 널 때려야 할지
다만 이게 사랑일까 내가 날 파괴하면서도 포기하지 못 하는 것이
나는 받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널 올려다본다
널 용서하지만
인간의 얼굴은 사해지지 않는다
내 얼굴을 반으로 가르면 그 안에 네 얼굴이 있기를
바랄 정도로
교복 속에 부풀어있던 봉우리가 생일에 받은 과자 박스처럼 납작해지고
무관심 속에서 햇빛이 흔들리고 있다 싱싱한 잔디를 입안으로 욱여넣고 싶어 언덕에 비가 오지 않는 건
내가 언덕을 만들어서
너의 잘못들을
나는 용서해주었고
외우기와
잊어버리기 다시 외우기 잊어버리기…
나는 벽돌 쌓는 법을
너는 벽돌의 쓸모를 몰라
오직 나만 너를 괴롭힐 수 있게
네가 있는 교실에 천둥이 쳐 너를 제외한 아이들이 다 죽기를 바랐다
시 ‘방학식’과 시간적 배경을 같이하며, 화자와의 가까운 신뢰 관계(친구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외면, 그에 대한 화자의 애증과 부조화적 감정에 대해 썼다.
* 시 <방학식>
:: 시_ 유월(2021 하자 뉴스레터 청소년 에디터) 수영을 하며 삽니다. 수영장에선 무거운 물살 속에서 열심히 헤엄쳐요. 술과 시, 사람들과 함께일 때 기쁨이 넘칩니다. 영화 속에서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