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30주기 공동프로젝트 <두 우주가 둥그렇게>는 또하나의문화, 성미산학교 그리고 하자프로덕션스쿨이 2021년 공동으로 기획하고 주최한 행사다. 3월부터 6월까지 매월 1회 특강을 진행했다.
다시 불러내는 이름 고정희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을 불러일으켰던 시인 고정희. 그가 부른 이름은 인쇄공이고, 장바닥이고, 석탄불이고 빈 병이고 엄마고 여자였다. 매년 이맘때면 맴도는 그 이름을 기리기 위해 하자에서는 청소년들과 해마다 추모기행을 떠나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기행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지난 4월부터 여러 세대가 둘러앉아 그를 기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60대부터 지금 이 시대에 힘을 내고 있는 청년 그리고 청소년까지. 고정희 시인의 문장이 지금 더 살아나 세대와 세대 사이를 스치며, 그가 불러냈던 이름을 다시 엮어낸다.
두 우주가 둥그렇게, 2회차: 아무도 죽이지 않는 예술과 운동은 가능한가 중.
1회차 <이 시대의 안네는 누구인가>에서는 버마 시민불복종 여성활동가 카이몬과 홍콩 우산혁명 여성활동가 칭 그리고 옥희살롱의 김영옥 선생님.
2회차 <아무도 죽이지 않는 예술과 운동은 가능한가>에서는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 옥희살롱의 김영옥 선생님, “소녀 연예인 이보나”의 한정현 소설가.
3회차 <경계에서 연대를 꿈꿀 수 있을까>에서는 이길보라 감독과 김은실 선생님이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추후 이야기를 엮어 작은 책자에 담을 예정이다.
이번 특강은 강의가 아닌 대화의 자리다. <두우주가 둥그렇게> 시의 제목처럼 둥그렇게 둘러앉은 모양으로 이야기가 오간다. 다시 연탄불 같은 이름들이 더 따듯해 질 것이란 믿음으로 이 끌어안은 둘레가 모진 세상에 단단한 틈을 만들길 기대한다.
:: 글_ 찬스(하자프로덕션스쿨 담임)
고정희 30주기 특강에 참여하며
고정희 30주기 특강을 들었다. 한정현 소설가와 래퍼 슬릭, 김영옥 선생님까지 세 분이 함께했다. 질문과 답에 따른 이야기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특강 후에 판돌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말 인상 깊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모두 각자의 페미니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각각의 세대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분명 예전엔 심하게 여성이 차별받았을 때가 있었다. 지금도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이때 남녀평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분명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먼저 나섰을 것이고 여성의 인권 침해에 대한 문제를 거론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또 남자와 여자라는 성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차별이라는 개념이 점점 공식화된 문제로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예전과는 또 달라진 부분이 너무나 많다. 잠깐 생각해 봐도 이 차이는 확실히 느껴지지 않나? 이런 차이로 분명 다양한 세대가 모인 이 지구에는 다양한 방향의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 말고도 사람 각자의 경험에서 나오는 평등에 대한 생각들이 전부 다르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이치와 다르면 그것이 조금 이상해 보이고 생소한 것이다.
나도 이렇게 나만의 페미니즘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리뷰를 적으면서 내가 가진 나의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정현 소설가는 우리도 모르는 차별과 불확실을 말해주셨다. 또 자신의 소설에 나온 (이렇게 말하는 것을 정말 꺼리셨지만) "정상"의 범주에 벗어난 이들의 자유로움에 관해 이야기해 주셨다. 슬릭은 각자도생과 반지성주의 그리고 함께 살기에 관해서 이야기 해주셨고, 김영옥 선생님은 시대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사회와 시대의 좋은 변화 그리고 안 좋게 흘러가는 세상에 관해 이야기해 주셨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기에 이 짧은 문단에 다 담을 수 없다. 물론 내 머릿속에도 다 담을 수 없었다.
특강에 참여하고 있는 소월.
제일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슬릭의 이야기였다. 반지성주의는 아무것도 지적으로 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이 상황이 벌어질 때 모두가 무지해진다고 한다. 두려움은 이 '무지'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부스럭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갑자기 나는 내가 모르는 소리에 겁을 먹는다. 이런 것이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의 기초적인 예이다. 이 관점으로 '차별'을 다시 볼 때,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것을 떨쳐내려고 하면서 생기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생각과 경험만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자신이 모르는 것은 생소하게 느낀다. 이 '나와는 다르다'는 것이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다시 말해 두려움은 무지에서 나오고 이 무지는 차별을 부른다는 것이다. 이런 무지한 반지성주의가 늘어가는 일에서 해방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슬릭은 우리에게 물었다.
또 기억에 남는 지점은 ‘각자도생’이었다. 각자 살아가며 모든 것이 개인화되어가는 것. 이것은 차별을 부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문제를 슬릭은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또 해방의 언어는 공감이다. 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이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차별이라는 것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특히 무지에 대한 부분이 그랬다. 다르다는 것을 잘 모르니 두렵고 차별을 하게 된다는 것이 공감되었다. 또 이 부분은 잘못한 사람과 잘하고 있는 사람을 나누지 않고 모두가 그럴 수밖에 없는 부분을 집어낸 것 같아 조금은 친근하게 느껴졌달까. 정말 무지한 부분은 어느 한 사람도 고치기 힘들 것 같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라는 말도 있으니까.
끝으로 특강에 참여하며, 내가 가진 페미니즘에 대해 조금 생각이 다듬어진 것이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키워드는 '남녀평등'이라는 키워드와 꼭 함께한다. 실과 바늘처럼 말이다. 나는 이것이 남자와 여자가 똑같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말 같지만, '평등'과 '똑같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정말 다르다. 지금 사회의 모습은 남자 여자가 평등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깝게 느껴진다. “내가 이러면 너도 이래야 해”, “네가 그래? 그건 나도 해야지” 같은 말을 너무나도 많이 하고 있다. 평등이란 것이 서로 아끼고 돕지 않고는 생길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도 더 많은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특강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이 시간이 정말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글_ 소월(하자프로덕션스쿨 죽돌)
두 우주가 둥그렇게, 2회차: 아무도 죽이지 않는 예술과 운동은 가능한가 중, 하자프로덕션스쿨과 성미산학교의 청소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