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나는 외로웠다. 부모님은 바빴고, 언니는 공부하느라 집에 없었다. 할머니와 둘이 남은 집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밖에 나가서 뛰놀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몸으로 노는 건 잘하지 못했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늘 안방에 누워 커다란 창문 밖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구름을 보며 이 지루한 일상이 바뀌길 기대했다.
이렇게 단조로웠던 삶은 책과 영화가 등장하면서부터 달라졌다. 색다른 경험을 할 일이 없던 내게 책과 영화가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것이다. 성안에 갇혀있던 ‘라푼젤’이 바깥세상에 발을 처음 디딘 때처럼, 책과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마주한 바깥세상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던 도시인 여수는 영화를 즐기기에는 그렇게 좋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어떻게 나름 전남에서 인구수 1위를 다투는 곳인데 영화관이 3개밖에 없지?”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영화관 수가 적으니 상영하는 영화의 수도 적었다. 아이맥스와 같은 특별관도 없었다.
그래서 전주로 대학을 진학하자마자 특별관을 찾았고, 여수에서는 상영하지 않던 독립영화도 실컷 보았다. 또,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해 평소에 보기 힘든 헝가리와 같은 나라의 영화를 접했다. 그리고 독립 서점에서 독립 출판물을 보고, 초면의 사람들과 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 시간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혀나갔다.
종종 서울로 놀러가기도 했다. 전주에서 서울을 가려면 버스로 2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여수에서 서울로 가는 거리에 비하면 굉장히 가까웠다. 하루는 순전히 영화만을 위해서, 영화 ‘메기’의 감독님과 배우들을 보기 위해 서울로 떠났다. 서울을 간 김에 전시회도 가고, 한강에서 그림도 그렸다. 그리고 영화와 GV를 즐긴 후 시외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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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경험한 GV와 전시회에서.
버스에서 창밖을 내다보는데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이동하는 만큼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고 오늘 같은 하루를 즐길 수 있었겠지.'
그 순간의 나는 창밖의 세계를 동경하던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갔다.
왜 여수에 살았을 때는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을까. 그때 그 친구와 이 영화를 보았다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언니와 GV를 갔다면 이런 질문을 하고, 감독의 답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최근 코로나로 인해 극장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에는 전국에 513개였던 극장이 2020년에는 474개로 감소했다고 한다. 그 중 폐관 극장 수 1위가 바로 전라도이다. 극장이 가장 많은 곳은 수도권이지만,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곳은 전라도이다. 지금 여수에는 극장이 2개밖에 남지 않았다. 두 개의 극장마저 없어질까, 잠깐의 단절이 영원한 단절로 이어질까 봐 겁이 난다.
책과 영화를 만난 이상 나는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다양한 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과 이어질 수 있었다. 이런 특별한 시간이 앞으로 지방의 청소년에게는 주어지지 않을까 겁이 난다. 나와 같은 지방의 청소년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기를, 나고 자란 사람들과 함께 충분히 문화를 즐길 수 있기를, 이야기 속에서 진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배울 수 있기를 바라본다.
:: 글_신이영(2021 하자 뉴스레터 청소년 에디터) 넓게 살기 위해 많이 보고 듣고 읽고 씁니다. 어린 시절에 미하일 엔데의 모모를 읽고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설가가 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쓰면서 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모모처럼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