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Z, 기상이변, 태풍, 홍수, 전염병, ‘묻지마’ 폭행까지.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어. Z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 네가 어지러워 쓰러지지 않기를 바라.
코로나 초입만 해도, 사람들과 연결되지 못하고 고립된 사람들이 훨씬 많았잖아. 작은 방 안에서 왔다 갔다, 누웠다 일어섰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누구를 만나기에도 어려운 상황. 지금도 진행 중인 상황이지만, 이럴 때 우린 무시무시한 무료함과 외로움을 느끼지. Z야, 너도 그랬어? 내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 때 봤던 드라마와 영화들이 심심함을 달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더라고. 화면 안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보다보면 금세 시간이 갔다더라나. 그 말을 들으니까 재난 상황에서 우린 무엇으로 이 시간들을 채울 수 있을까, 더 나아가서 우린 무엇으로 우리가 연결되어있음을 알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더라. 그리고 나는 그게 예술이라면 어떨까 상상해보자고 하고 싶어.
예술. 예술이라고 하니까 조금 먼 느낌이지 않아? 우리는 예술을 받아들일 땐 즐겁고, 때론 엽기적이고, 흥미롭다고 여기지만, 직접 예술의 주체가 되는 건 어딘지 어렵고 낯설고 허세 있는 것처럼 생각하잖아. 예술가에 대한 인식도 그렇고. 예술은 생산적이지 않고, 밥을 먹여주지 않는데 왜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 맞아, 예술 한다고 밥을 먹여주지 않지. 이게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되도록, 소수의 성공이 예술의 전부가 아닐 수 있도록 어떤 사람들은 노력하고 있고. 아무튼, 그렇담 예술은 도대체 왜 필요한 걸까? 예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까?
Z야, <프레드릭> 이야기 알아? 모른다고? 그럼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너에게 프레드릭 이야기를 알려주면서 시작하고 싶어. 프레드릭 이야기는, 흔히 알고 있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뒤집은 동화야. 프레드릭은 다른 쥐들이 일을 할 때 이야기를 수집하고 시를 만들고 색을 묘사하는 데에 시간을 들이는 쥐야. 겨울이 찾아오고 다른 쥐들은 식량을 나누어먹으며 버티지만 점점 불안하고 두렵고 지쳐가지. 그 때 쥐들은 프레드릭의 ‘양식’이 생각나는 거야. 네 양식은 어떻게 되었어, 프레드릭? 프레드릭은 대답하지. 이야기와, 시와, 연극을 다른 쥐들에게 보여줘. 프레드릭은 그런 쥐였어. 그게 프레드릭의 역할이었지. 누군가는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남들이 보기에 중요하지 않은 걸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재난상황에서도 립스틱과 만화책과 이야깃거리를 살피는 것. 그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 걸까? <해가 지는 곳으로> 라는 소설이 있는데 말이야. 세상이 전염병으로 아수라장이 되고 난 이후의 이야기야. 거기서 '지나'라는 인물이 립스틱을 꼭 쥐곤 이런 말을 해.
p.43 황량하게 얼어붙은 대지 위에서, 끝도 없는 길 위에서, 불행과 절망에 지친 사람들 틈에서 나는 바로 그런 것을 원하고 있었다.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지만 나를 좀 더 나답게 만드는 것, 모두가 한심하다고 혀를 내두르지만 내겐 곡 필요한 농담과 웃음 같은 것.
마음속에서 뿐이라도, 대부분은 그런 게 있지 않아? 밥을 먹고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 더 가치 있는 것, 나를 배부르게 하는 것. 맞아, 세상은 밥만 먹고 살 수가 없지.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어떤 노래도 들리지 않고는 그렇게 살 수가 없지. 끔찍할 거야. 끔찍한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게 더 끔찍하고. 예술은 때론 그 끔찍함을, 때론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아름다움을 낯설고도 익숙하게 보여줘.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되기 전에, 친구가 지인들을 모아서 작은 콘서트를 열었거든? 초 하나를 앞에 두고 누워서, 앉아서, 서서, 흥이 나면 구석에서 몸을 흔들면서 친구의 노래를 들었어. 그 순간 나는 이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오늘 처음 봤음에도, 우리가 연결된 듯한 기분이 들었어. 이 노래를 듣고 비슷한 기분을 공유한다고 느꼈거든. 서로간의 눈 마주침과 미소로 하나가 된 거 같았어. 조금 뭉클해서 울고 싶은 기분도 들었고. 내 생각보다 내가 더 이런 공간과 시간을 기다려왔나보다 하는 생각을 했어.
축제는 취소되고, 극장은 문을 닫았지. 영화관은 비었고 미술관은 언제 열릴지 모르겠어. 그래도 우린 새로운 예술의 형식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세상은 계속 변하니까. 그러다 세상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데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
독일이 통일되기 전, 1987년. 영국의 록뮤지션 데이비드 보위가 서독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어. 공연 장소가 베를린 장벽 근처였는데 그 앞에서 자신의 곡 <HEROES>를 부르자, 그 노래를 듣고 싶었던 동독의 사람들이 벽 근처로 몰려들었다고 해. 경찰들은 물대포를 쏘며 진압하며 체포했고. 그에 반발한 동독사람들 사이에서 시위가 벌어졌는데 그 일련의 사건들이 이후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해. 벽 앞의 노래가 벽을 허물 줄 알았을까? 아무도 몰랐을 거야. 재난이 우리를 단절시키고 고립되게 하지만,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시가, 이야기와 몸짓이 우리 사이를 연결시켜줄 거라고 믿어. 재난과 불가능의 벽을 허물 거라고 믿고 싶어.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더라도. 어떤 방법으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