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자퇴한 후, 하자 음악 작업장에서 뉴트랙 1기를 수료하며 처음으로 음악 활동을 하기 시작한 나는 19년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내 노래를 만들었어. 뉴트랙을 통해 만난 인연들과도 자주 만나 함께 합주를 하고 노래를 만들며 여러 가지 공연 준비와 더불어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는 등 나름의 커뮤니티를 생성해오고 있었지. 하자에서 하게 된 공연을 수월하게 잘 마치고, 외부 공연장에서의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가 다시 만난 건 새해를 맞이하고 난 1월의 어느 날이었어. 합주를 해보고, 공연장과 컨택을 하며 일정을 정하던 중에 누군가가 ‘근데 이건 뭐야? 코로나?’ 하고 말했어. 이미 한국에 코로나가 들어온 이후였지만 심각하게 여길 만큼 화제는 아니었기에 우린 그저 각자가 본 기사들이나 가십거리들을 꺼내놓을 뿐 이 문제를 크게 생각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지금 상황에서 절대 공연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어. 공연이 잡혀 있던 홍대에선 집단 감염이 일어났고 계속되는 확산세에 모두가 혼란을 겪고 있으니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야. 세 개의 공연을 취소했어. 그 이후론 조금씩 많은 것들이 어려워지고 제한되었어. 기타 학원에는 안전상의 문제로 가지 못했어. 배우는 것이 없고 사람들을 만나 공유하는 시간이 없어지니 난 별로 곡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 그러다 보니 나에겐 일종의 슬럼프가 찾아왔지.
하릴 없는 날들을 보내다가, 하루는 친구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는 연락이 왔어. -코로나 하루 확진자 수가 한 자릿수를 유지하던 때였어.- 아직 우리 지역과 주변 동네에 확진자가 없던 당시, 마스크를 잘 챙겨 쓰고 영화관에 가는 길에 휴대폰으로 티켓을 예매하는데 영화 시간이 전에 비해 너무 많이 줄은거야. 게다가 티켓의 가격도 절반까지 떨어지고. 뭘 하든 줄을 서야 했던 영화관은 누가 사람들을 내쫓기라도 한 듯 한적하고 조용했어. 상영관 내부에도 너댓명의 사람이 멀리멀리 떨어져서 앉아 있는 게 다였어.
그래서 문득 문을 닫아버린 소극장, 상영 시간이 줄어든 영화관 그 뒤에서 공부하고 꿈꾸던 청소년들은 ‘지금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겼어. 서울 영상고등학교에 재학중인 나의 지인 '하비'는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연기 학원을 다니며 무대공연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 하비는 이번 코로나로 인한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
“고대하던 청소년 연극제도 취소, 사람들과 모이기도 힘들고. 연기 학원에 가기도 어려워졌어."
매년 이루어졌던 것처럼 올해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컨셉과 주제로 계획되었던 많은 영화제/연극제들이 취소, 혹은 온라인 상영회로 진행된다는 소식들을 자주 듣고 있어. 한 번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환경 영화제에 관람객으로 참여하기도 했어. 비록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영화에 공감하며 관람할 수 없다는 게 아쉽긴 했지만 멀리 가지 않고도 내 방 안에서 가장 편한 상태로 좋은 영화를 본다는 건 정말 흥미롭고 매력적인 경험이었어. 코로나가 가장 심하게 기승을 부릴 때는 영화관 좌석 판매율이 2%까지 급감하는 상황까지 벌어지면서 영화계는 한마디로 코로나 피해의 직격탄을 맞았는데, 이런 상황을 미루어 보더라도 온라인 영화제는 영화예술인들에게 차선의 해결책이자 위안일 거라고 생각해.
하비와 같은 학교에서 영화 영상 연출을 공부하는 '정우'는 지난 1월에 인터넷 방송의 한계를 주제로 한 단편영화를 연출에 참여했대. 3월 오프라인 상영회와 시사회를 목표로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코로나19의 심화로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고 만 거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에 시사회 기획팀 내 회의에서 온라인 상영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 온라인 영화제에 대해 정우는 이렇게 말했어.
"사람들이 스마트폰 같은 매체만 있으면 쉽게 집에서 영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강점이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학교 학생들과 함께 온라인 영화 시사회를 기획했는데, 오프라인으로 하지 못하게 된건 아쉽지만 꽤 신선하고 재밌는 경험이라고 느껴졌어."
영화 촬영중인 정우
그래, 최선이 어렵다면 차선을 고르는 수밖에 없으니까. 외출을 삼가고 모임을 자제해야 하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이 봐주는 사람이 있고 기꺼이 선보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다행인 거야. 유튜브를 둘러보다 보니 요즘은 ‘집콕 라이브’, ‘방구석 콘서트’ 같은 것들이 유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더라. 한때는 유튜브 메인 화면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즐길 수 있는 운동이나 요리, 예술등의 다양한 컨텐츠가 소개 되기도 했어. 이례적인 상황 속에 혼란과 어려움을 느끼던 사람들이 서서히 이런 사태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한 거지. 연극이나 뮤지컬을 영화처럼 촬영하여 영상물로 제작한 컨텐츠들도 연극/뮤지컬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연극을 보려면 현장까지 가야하는 수고로움 때문에 연극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집에서도 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 재난에 처해도 연극이나 뮤지컬을 즐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무대 위에서 직접 관객들과 소통을 못하고 서로 현장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정말 큰 단점이야.”
하비가 연극을 시작하게 된 건 중학생 때 였어. 재미로 시작한 뮤지컬과 연극이 하비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고 무대 공연을 하며 배운 것들은 ‘재미 삼아’ 이상의 특별한 경험이었대. 고등학교에서의 무대는 이전보다 장벽이 훨씬 높아 보였음에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꿈이었던 거야. 그런 하비가 무대 공연을 통해 가장 큰 기쁨을 얻는 순간은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소통하고 호흡하는 때래. 음악도 마찬가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만들거나 연주하는 게 금방 지겨워지는데, 한 번 공연에 올라가서 사람들의 환호를 듣고 박수를 받으면 그때의 짜릿함은 정말 표현하기 어렵지. 그런데 코로나 이후 관객과의 호흡과 소통에서 ‘관객’이 빠져버리고 말았잖아. 아무리 모두가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고 해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어.
정우는 정말 우연한 계기로 영상을 배우기 시작했어. 게임 속 유료아이템을 갖기 위해 게임 내 ucc공모전에 무턱대고 응모했는데 비록 입상은 하지 못했지만 그 경험이 정말 특별한 기억이 되었대. 그래서 영상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후에는 비슷한 공모전에서 1등을 하기도 했대.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영상 작업을 해 온거야. 정우에게 이번 코로나는 아주 사소한 것 부터가 어려움이었어.
"인원이 많이 모일 수 없기 때문에 스태프 회의 같은 경우에는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하여 하는 횟수가 많아졌고, 우리 과는 1,2학년 때 영화나 뮤직비디오 등을 과제로 촬영하는데 코로나때문에 이번에는 진행하지 않는대. 촬영을 하기위해 학교 기자재실에서 빌릴 수 있었던 장비들도 빌릴 수가 없게 됐지."
수입이 있는 활동을 하는 게 아닌 청소년 예술가들에겐 장비를 구비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야. 그렇기 때문에 편하게 장비를 빌리고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꼭 필요한데, 그것마저 어려워졌으니 기획한 것들을 영상화하는 것이 어려웠지. 정우는 그런 점들이 청소년 예술인으로서의 애로사항이라고 했어. 앞에 말했던 것처럼 장비를 구입하는 것도, 대여하는 것도 청소년들에겐 신용, 혹은 금전적인 문제로 잘 허락되지 않아. 영화 촬영을 할 때에는 불가피하게 밤샘 촬영을 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그럴 때 팀원들이 함께 쉬거나 머물 숙박업소를 이용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 그저 정우와 팀원들이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말이야.
인디 뮤지션들이 주로 공연을 많이 하는 곳은 라이브 카페나 클럽이야. 공연장 대관료가 들지 않고, 공연에 대한 기획을 하지 않아도 되고. 오픈 마이크 같은 걸 하게 되면 장비에 대한 부담 없이 내 노래를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잖아. 그런데 인기 있는 라이브 카페나 클럽엔 내가 공연할 수 있는 자리가 없는 경우가 많았어. 판매하는 메뉴에 술이 있어서 미성년인 나는 공연할 수 없다는 거지. 밴드음악을 하던 때에도 그게 나에겐 큰 걱정이었어. '다 같이 열심히 준비했는데 내가 미성년자라 공연할 수 없으면 어떡하지.’하고 고민했거든. 한번은 정말 그랬어. 나이가 어려서 공연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절망적이고 슬픈 기분이 들더라.
하비는 예술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지 꽤 되었어.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청소년들에게 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아주 낮다는 걸 느낀대. 스스로는 다양하게 배워보려 애쓴 덕에 여러 예술들을 접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체험하거나 경험할 기회는 너무 적다는거야. 정우와 하비는 모두 ‘기회'에 대해 이야기 했어.
“청소년들에겐 아직 경험할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아. 영상을 직접적으로 제작하고 기획하는 등의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좀 더 많이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청소년들이 예술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라. 많이 경험해보고 낯선 것에도 다가가볼 수 있게 되면 청소년들에게 여러 방면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연극이나 영화 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고 체험의 장이 많아졌으면 좋겠어.”
영화를 만들어 왔고 만들어야 하지만 만들 수 없는 사람들과 편히 영화를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사람들, 무대에 서서 온몸으로 소통과 공감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과 무대 아래에서 방방 뛰고 소리 지르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사람들. 같은 연결고리에 묶여 가까이에서 함께하던 사람들이 각자의 모니터 앞에서 서로를 지켜보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어. ‘코로나 끝나면 만나자.’, ‘코로나 잠잠해지면 같이 노래하자.’하며 기약하던 가까운 미래가 이젠 짐작할 수 없는 먼 훗날처럼 느껴지기도 해.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 나와 하비, 정우. 그리고 수많은 청소년 예술인들에게 코로나는 전에 없던 재난이자 절망일까? 장비도, 무대도 뭐 하나 쉽게 구할 수 없고 접할 수 없는 우리. 나이, 신분, 돈 등 원초적이고 다양한 제한들 속에서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들을 찾아가야 하는 우리에겐 경험의 기회가 부족한 사회 자체가 재난이었을 수도 있어. 무대를 사랑하는 청소년에게 넓고 빛나는 무대가, 카메라를 사랑하는 청소년에게 튼튼한 카메라가, 그림을 사랑하는 청소년에게 알록달록 물감과 깨끗한 종이가 당연하게 주어지는 세상이 온다면 우리는 그때 ‘아, 드디어 재난의 끝이 왔다!’라고 말할 수 있을 거야.
무대 너머, 다시 카메라 너머, 또 다시 모니터 넘어의 관객과 그 반대편에 있는 예술가. 아주 멀면서도 가장 가까운 우리의 사이는 이대로 괜찮을까? 우리,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