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Z야, 너는 주위 사람들과 섹슈얼리티 대화를 자주 나누는 편이야? 섹스와 자위, 넘어서 연애와 이성애, 유성애 중심의 사회에 대해 열띤 수다를 나눠본 적 있어? 고백하자면, 나는 그다지 많지 않아. 그러나 강하게 열망하고 있는 사람이지. 이 수다는 일단 얘기가 너무 하고 싶은 나머지 시작되었어. 한 겹 포장된 이야기 말고, 솔직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거든.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앞서, 섹슈얼리티, 자위, 사랑과 연애 등에 대한 Z들의 생각을 들어보려 하자 인스타 스토리에 질문을 올려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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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올렸던 인스타 스토리 질문 화면이야.
55명의 청소년들이 통쾌하고 날카로운 답변을 남겨줬고, 나와 짱소는 그 답변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눴어. 여러가지 제약 때문에 직접 만나지는 못했고, 두 번에 걸쳐 각자의 방에서 잔잔한 음악을 깔아두고 채팅을 했어. 정~말 재밌었어. 지면상 다 올리지는 못하지만 갈무리한 대화들을 올려. 글을 읽은 후 너희도 주위 사람들과 섹슈얼리티 대화를 나눠보는 건 어때?
* 인스타 설문으로 받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아래 회색 박스로 표시했어!
Part.1 청소년도 섹스하고 자위하며 삽니다.
“청소년들이 눈치보지 않고 콘돔을 살 수 있으면 좋겠어. 안전하고 건강한 섹스를 위해!”
“성병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대처하고 싶은데 믿을만한 교육이나 책이 너무 부족해.”
“도덕 교과서에서 건강한 연애 규칙이라며 이성친구와 단둘이 방에 있지 말고 꼭 문을 열어두라고 한 걸 보면서 되게 웃겼어.”
‣ 짱소 나무는 콘돔 만져본 적 있어?
‣ 나무 중학교 3학년 때 하자 옆에 있는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로 단체 성교육을 갔었어. 그때 남성성기 모형에 콘돔을 껴보는 활동을 해봤거든? 그때 콘돔이라는 걸 처음 알았어. 아무도 안알려줬거든! 학교에서 받은 성교육 중 제일 유익했다고 생각해.
‣ 짱소 난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 고등학교 가정시간에 성교육 시간이 있긴 했는데 거기서도 콘돔은 언급도 없었어. ‘안돼요’ ‘하지마세요’ 이런 것만 가르쳤지. 여자애들은 밤 늦은 시간에는 나가지마라 이런 거나... 외국드라마에서 ‘섹스한 뒤 콘돔이 제 질에 들어갔어요’ 같은 에피소드를 보고 콘돔이 저렇게 생겼구나, 껴야 하는구나 하는 걸 알았어.
‣ 나무 콘돔의 중요성이나 콘돔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는 청소년기 때부터 당연히 알려줘야 하는 건데. 찾아보니까 콘돔은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살수 있는 물건이래. 근데 많은 사람들이 콘돔을 ‘유해물’로 생각해서 청소년한테 안파는 곳도 있다고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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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짱소 오 자유롭게 살 수 있구나! 아니 근데 섹스 다 하는데 왜 콘돔을 유해물로 생각하지? 섹스라는 게 분명히 있는데 청소년의 머릿속에서 이 존재 자체를 지우려고 하는 거 같아.
‣ 나무 심지어 엄청 흔하고 많지. 비청소년들, 특히 남성의 욕망이 가득한 섹스는 진짜 지겨울 정도인데.(웃음) 그리고 여성 청소년이 임신하면 사회에서 엄청 안좋게 보잖아. 하지만 비청소년들이 콘돔사용법도 안알려주고 심지어 콘돔을 안팔기도 하는데! 욕을 하는 게 아니라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하는 거 아닌가?
그림1_ 콘돔을 들고 있는 청소년
“학교 성교육에선 왜 여성의 자위를 다루지 않는걸까, 우리도 사람인데.”
‣ 나무 초등학생 때 자위를 했던 적이 있거든! 하면서 좋긴 한데 누군가한테 이게 정말 괜찮은 건지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어. 학교에서 힘든 점은 없는지, 학교폭력은 없는지, 그런 의례적인 설문을 하잖아. 거기다가 나는 내가 자위를 하는 게 걱정이 되니까 고민을 쓴 거야. 처음 보는 선생님이 나를 불러서 '여기다가 이렇게 적었는데 네가 적은 게 맞니?' 이렇게 물어봤던 게 기억나. 별 말 안했던 거 같은데 그 뒤에 그냥 자위를 안하게 되었던 거 같아.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걸까?
‣ 짱소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그때 반에서 야설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은 드라마로 유명한 성균관 스캔들 책이 유행했거든. 근데 그 책에 섹스 내용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어. 애들이 그 페이지만 찾아 읽느라 책을 덮어 둬도 그냥 그 페이지가 열렸어.(웃음) 그때 반에서 섹스에 관한 소설이 유행이라서 다들 돌려보고 하다가 나도 관심이 생겼던 거 같아.
‣ 나무 내가 초등학교 이후로 다시 관심이 생겼던 건 고 2 즈음, <이기적 섹스>라는 책을 봤었을 때였어. 섹스 에세이인데, 좀 충격이었달까. 어떤 미지의 세계를 본 듯한 기분이었어. 섹스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가부장제 중심 섹스에 대해서 먼저 알게 되었지. 그래서 수능 끝나고 섹스토이를 사러 갔어.(청소년기에 사러갈 수 있으면 더 좋을 뻔했지만) 그 뒤로 남과 얘기를 많이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관심이 생겨서 많이 찾아보고, 자위도 하고 그랬지... 뭔가 남한테 자위했다고 얘기하니 살짝 부끄럽네(웃음)
‣ 짱소 난 집에서 혼자 자위한 후에 우울해하고 자책하고 울었던 기억이 나. 죄 짓는 거 같고. 이건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되는 비밀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 가부장제의 남성 시각에서 쓰인 섹스 이야기만 읽고 하다보니, 나는 여성이니까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도 은연중에 있었어. 상상을 하면서 할 때도 건강하지 못한 섹스 장면을 상상했던 거지. 지금은 죄책감이 사라졌어! ‘구성애 선생님이 알려주는 여성자위’ 라는 만화를 봤는데, 그 뒤로 자위가 나쁜 게 아니고 내 몸의 즐거움을 아는 자연스럽고 풍요로운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됐어.
“오해없이 편견없이 여자도 남자도 사랑하고 싶다! 폴리아모리 하고 싶다! 혐오 없이 사랑하고 싶어.”
“(친구들이) 남자친구가 있는 친구에게는 많은 것들을 질문하고 얘기하지만 나의 연애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하고 잘 언급하지 않거든. 이런 부분이 가끔 서운할 때도 있어. 그냥 자연스럽게 말해주면 좋겠어.”
‣ 나무‘인간은 처음에 모두 논바이너리 팬섹슈얼로 시작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며칠 전 논바이너리 주간(7/12~7/18)에 이런 글을 트위터에서 봤어. 되게 인상적이더라. * 논바이너리(Non-binary)는 성별 젠더를 남성과 여성 둘로만 분류하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을 벗어난 종류의 성 정체성이나 성별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 범성애(凡性愛)는 성을 구분하지 않거나 성과 관계 없이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모두, 전체'를 뜻하는 접두어 "pan-"과 결합하여 "pansexual"(팬섹슈얼)이라고 한다.
‣ 짱소 진짜 인상깊은 말이다. 생각해보면 서로 다른 염색체끼리만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부터 인간이 무궁무진하게 다양할 수 있다는 걸 덮어버리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 나누고, 덮어버리고, 정상성이라고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돼.
‣ 나무 응. 정상성이라는 말이 처음에 낯설었는데 갈수록 정말 가까운 단어였다는 걸 알아가고 있어. 그 벽장 얘기 있잖아. 벽장에 갇혀있다는 게, 처음에는 와닿지 않았는데 요즘 정말 퀴어포빅한 면면들을 보면서 이해가 가고 있어. 만약에 '내가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부모님한테 소개할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다가, '음.. 그래.. 모르겠다. 차별금지법 빨리...' 이렇게 끝나버려. 어쩌면 나도 지금 벽장에 갇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의식하지 못해서, 이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어떤 감각을 깨우치기도 전에 묻어버려서 그렇지.
“이성(으로 판단)이면 연인 관계로 몰고가는 분위기 싫어! 성기흡입섹스만 섹스라고 하는 것도 싫어!”
‣ 짱소 ‘성기흡입섹스만 섹스라고 하는 것’이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는데, 어떤 상황일까?
‣ 나무 삽입을 해야 ‘진짜’ ‘제대로 된’ 섹스라고 말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섹스에는 삽입 외에도 다양한 애무와 섹스스킬이 있잖아! 이성애남성 중심의 섹스에서 삽입이 엄청 중요시 되니까 동성 간 섹스는 “그래봤자 삽입도 못하면서?” 같은 말을 많이 듣는 거 같아.
‣ 짱소 아하 나 이해했어! 흡입이라고 해서 뭘까 궁금했어.
‣ 나무 흡입이라는 단어는 삽입의 대체 용어야! 삽입은 남성성기를 여성성기 안으로 넣는다는 걸 뜻하잖아? 근데 그게 남성의 시각에서나 그런거지, 여성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 남성성기를 여성성기 안으로 흡입, 빨아들이는 거라서!
‣ 짱소 오호! 그냥 무심결에 쓰던 삽입이라는 단어였는데 남성의 시각에서 쓰인 단어라는 게 설명을 듣고 나니 완전 와닿는다. 여성 시각의, 퀴어적인 섹스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섹스문화를 해체하면 좋을 거 같아.
“학교에서 퀴어들은 없는 존재가 되는 것 같아. 가정 시간에 배우는 '가정'은 정상가족 뿐이었어.”
‣ 짱소 정상가족이 뭔데! 정상이 뭐야! 결혼 제도 자체가 그 정상가족이라는 것 자체만 인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없는 사람 취급되는 거 같아. 최근에 내가 초등학생 때 썼던 메모장 같은 걸 발견을 했는데, 거기에 ‘좋은 며느리 되는 법’, ‘좋은 아내 되는 법’ 이런 걸 써둔 거야. 그런 걸 보면 그 가정 시간에 배웠던 것도 그렇고 교육에서부터 그 제도에 부합하는 인간이 되도록 하는 거 같아. 그래서 결국 내가 또 그 제도를 공고히하는 게 되고, 내가 제도 그 자체가 되고, 끝없이 반복되는 거지. 그리고 그 메모를 다시 보면서 무섭다는 생각도 했어.
‣ 나무 좋은 며느리.. 좋은 아내.. 웩.(웃음) 지금 사회에는 퀴어한 상상력이 엄청 필요한 거 같아! 나는 그 퀴어한 상상력을 내 삶에 적용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해. 예를 들면, 나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데 애를 낳고 싶기도 하고, 가족을 만들고 싶기도하고, 어떤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싶거든. 그래서 요즘 유튜브에서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사서 여성 혼자 아이 낳고 살거나, 동성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거나하는, 다양한 가족을 자꾸 보고 있어. 그게 지금의 정상가족을 해체하는 방법 중 하나 인 거 같기도 하고. 보이지 않아도 다양한 관계를 이루며 사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사람들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사회이니 법적인 변화도 이뤄져야 할 거 같아. 기승전 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 (웃음)
‣ 짱소 ‘퀴어한 상상력’이라는 말 되게 좋다. 나도 결혼 하고 싶지 않지만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 예전에 이렇게 말을 하면 되게 유별난 사람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결혼 제도나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과 시간이 늘어난 것 같아. 퀴어한 상상력이 계속해서 근육을 키워 나간다면, 제도로 깔끔하게 밀어버린 그 개개인의 삶 속에 분명 그만큼의 다양함이 있다는 걸, 상상할 줄 아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법적인 변화는 진짜 너무 중요한 거 같아. 체제 변화가 필요해 진짜.
그림2_ 퀴어한 상상력, 다양한 가족
Part.3 너 연애 한 번도 안 해봤지?
"친하게 지내는 이성들과 무조건 연애로 엮으려 하는 시선이 너무 싫고 불편해."
“여친이 있었는데도 누구랑 사귄 적 있다고 입을 열 수가 없어. 한 번 말을 꺼내면 사람들은 계속 물어보니까.”
“고등학교때 이성교제 학칙이 있었어. 그런데 대학생이 되자마자 연애를 안 하면 무언가 잘못된 사람 취급하지!”
‣ 짱소 나는 X맨이라는 예능을 즐겨봤는데, 거기서도 항상 노래 틀고 여자 남자 짝궁 만들기 하잖아. 왜들 그렇게 연애 분위기를 못 만들어서 안달이었는지… 참. 그리고 ‘연애’의 끝은 ‘결혼’이라고 사회가 항상 이야기해왔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 최종 정답으로 가려면 일단 (이성끼리의) 연애를 시작해야 하고, 연애 안 하면 무슨 문제 있는 것처럼 바라보는 것 같아.
‣ 나무 맞아. 마치 연애가 세상의 전부이고, 다른 것들은 다 연애의 뒷순위로 밀려나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 연애를 해도 다 각자의 삶이 있고, 그 삶이 윤기있는 상태여야 애인과도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데 말이야. 연애 안 한 상태를 루저로 만든다거나 연애 안 한 나의 삶을 후려치기 하는 게 심한 것 같아.
‣ 짱소 그러니까. 연애 안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갑자기 ‘가르쳐줄게’ 하면서, 연애 안 하는 사람이 뭔가 더 배워야 하는 것처럼 말을 하잖아. 언니가~ 오빠가~ 이런식으로. 그리고 연애가 너무 다양하지 못한 것 같아. 연애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레파토리가 몇 개 없는 거지. 보통의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듯, 남자가 밥을 사고, 꽃을 사고, 여자는 애교(니 뭐니 하는 걸) 부리는 거지.
‣ 나무 사람들이 연애 지겹다고 하는 것도 그 레파토리가 너무 빤해서인 것도 있는 거 같아.
‣ 짱소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연애 횟수나 ‘왜 안 사귀냐’ 등의 이야기를 별 어려움 없이 잘 물어보는 것 같아. 사생활이지만 타인이 개입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사생활인 것 같아. 난 그럴 때마다 내가 연애를 안 한다는 게 묘하게 부끄럽달까? 그래서 횟수 속이거나 그럴 때도 있었어. 연애 횟수라는 것도 위계를 만드는 걸까?
‣ 나무 다른 이야기인데, 사람들이 욕할 때 “너 연애 한 번도 안 해봤지?” 이러는 것도 좀 불편해. 되게 연애 중심적이잖아. 연애 안 해본 게 사회성이랑도 연결된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같은데, 그럼 모든 사람들은 첫 연애를 하기 전에 사회성이 없는 건가, 싶기도 하고.
“연애는 불건전하고 가볍게 취급하면서(청소년에게는 더욱) 결혼은 신성하고 고결하게 보는 사회적 시선!”
‣ 나무 이런 시선 사회에 정말 많은 것 같아. 결혼은 안정되고, 흔들리지 않는 고결한 것으로 보면서 연애는 되게 가벼운 걸로 생각하는 거. 연애도 결혼 앞에서는 정말 작아진다…(웃음)
‣ 짱소 나는 결혼이 가부장제의 마지막 종착지라는 생각이 들어. ‘여성이 결혼하는 건 자신을 분해하고 재조립해서 ‘아내’ ‘엄마’라는 정체성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 사회가 가부장제라는 걸 유지하기 위해 결혼을 계속 강조하는 건가 싶기도 해.
‣ 나무 나는 나중에 어떤 공동체를 꾸리고 살고 싶어. 근데 그 방법이 결혼일 필요도 없고, 결혼만 있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해. 결혼하지 않아도 법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살 수는 없는 걸까? 사회에서 우리가 엮일 수 있는 방법이 결혼, 그것도 이성애 결혼 뿐이고 그게 사회에서 밀어주는 유일한 방법이라니. 헬이다.
‣ 짱소 지원이나 복지도 받으려면 일단 결혼을 해야 받을 수 있는 것도 많고. 그냥 국민이면 다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혼인 신고서 안 쓰면 가족으로 인정이 안 되니까, 사고가 나도 수술동의서도 못 쓰는 그런 사례들을 보면, 참..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오지 않으면 그냥 뭘 못하게 막아놓잖아. 완전 차별이지. 사회가 정한 정답에 안 들어가면 그냥 다 배제시키는 거야.
에필로그. 섹슈얼리티 대화가 이렇게 즐거운 거였어?
‣ 나무 성적인 생각을 하고 말을 한다는 게 되게 쓸모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그 성적인 얘기가 다 인권과도 연결되어 있는 게 신기하다. 굉장히 핵심적인 이야기 사례도 섹슈얼리티에서 많이 나오는 거 같아.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이 섹슈얼리티, 몸의 해방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나 싶고 그래.
‣ 짱소 그러게. 그동안 나도 성이라는 것에서 벗어나서 이성적인 사고를 해야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이런 걸 끊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 특히 자위하고 죄책감에 시달릴 때. 근데 그게 그냥 사회가 우리 몸, 특히 여성의 몸 있는 그대로를 부정하는 분위기라 그런 사고도 내 머릿속에 심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 그리고 어디선가 봤던 ‘여성은 사회적으로 거세 당했다’ 라는 문장도 기억나고.
‣ 나무 나는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이성애 섹스든 뭐든간에 얘기를 많이 안해봤어. 해도 직접적인 단어를 피하면서 했어.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페미니즘 수다모임 같은 곳에서만 조금 해보고, 지인들이랑 자세한 얘기를 해본 적이 없어. 지금 얘기하다보니 생각난 건데, 사회 자체가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네.
‣ 짱소 나는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 섹스 얘기를 가끔 해. 근데 섹스할 때 어떤 감정이었고, 어떤 생각이었다, 이런 게 아니라, 성기가 무슨 모양이었다, 짧더라, 뭐 어쨌더라, 넣었는데 배가 아프더라, 이런 거. 근데 별로 재미없었어.(웃음) 들을수록 섹스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어.
‣ 나무 한편으론 지금 얘기는 섹스하고 싶은 수다같아. 그리고 이것도 사회분위기, 가부장적인 사회 상황이랑 연결되어 있는 거 같아. 여자가 섹스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사회랑 섹스 하고 싶은 사회는 정말 다를 거 같아. 지금의 사회에서는 섹스가 상대와의 교감이라기 보다는 위험하고, 자극적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니까.
‣ 짱소 여자가 섹스하고 싶은 사회에서는 남성성기가 무기가 아니라, 뭔가 다른 걸로 보일 거 같아.
‣ 나무 맞아, 굳이 남자들이 성기 크다고 위풍당당 이런 문화도 없을 거 같아. 여자들이 뭐 자기 성기 자랑하고 그러지는 않잖아. 흠, 자랑해야하나. 암튼. 아! 나 그런 생각도 했어. 만약 학교에서 나한테 제대로된 페미니즘적 성교육을 해줬다면 나는 일찍부터 자위중독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웃음) 죄책감도 덜 느끼고, 나를 포용하면서 자위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일찍 되었을 거 같아.
‣ 짱소 나도. 학교에서 즐겁게 자위하는 법도 알려주고 좀! 그랬다면 중독이더라도 훨~씬 즐겁게 했을 거 같아!
‣ 나무 외국 드라마 보면 보건쌤 같은 사람이 꼭 있더라고. 주인공이 암 프레그넌트, 나 임신했다고 찾아가는 보건 쌤.(웃음) 내 주위에도 그런 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 궁금한 거 있으면 막 물어보고. 이렇게 이야기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나 선생님이 있는 게 너무 중요한 거 같아.
‣ 짱소 우리 대화가 대안적인 성교육 시간이었던 것 같아서 너무 좋았어. 내 몸인데 나조차도 잘 몰랐던 것 같아. 앞으로도 내 몸에 대해, 그리고 내 연애와 결혼에 대해 주체성을 가지고 싶어. 나무 말처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친구와 공간 그리고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지만, 한 번도 나눠본 적은 없는데 말이야. 이렇게 즐거운 주제를 왜 그렇게 쉬쉬했던지! 입꼬리가 내려가지를 않았다니까. “상상력에 권력을!” 68혁명 당시의 슬로건이었대. 지금 우리 일상 곳곳의 혁명에게도 이 말이 꼭 맞는 것 같아. 우리가 열심히 수다를 떠는 이 시간들이 세상의 상상력을 튼튼하게 했기를, 그래서 더 많은 일상의 혁명을 일으키게 되기를!
2020년 7월 29일
나무, 짱소가.
:: 글
_ 나무(#비대학 #99년생 #해피비건, 하디에 2기 "Z에게" 에디터)
_ 짱소(#예술가 #산책러 #97년생, 하디에 2기 "Z에게" 에디터)
:: 그림
그림1_ 쑤(하디에 2기 "Z에게" 에디터)
그림2_ 민우(하디에 2기 "Z에게"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