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늘은 내가 Z를 위해 나의 소중한 인연 A의 일기를 가져왔어. 절대 훔치거나 몰래 가져온 건 아니야. A는 나와 교환일기를 쓰는 친군데, 최근에 쓴 A의 일기가 너무 재밌어서 Z들과 같이 보려고 허락을 맡고 조금 퍼 온 거야. 사실 우리 모두 존재 자체가 지워지고 숨겨지는 우리들의 성에 대해 들춰내고, 떠들어 보고 싶었잖아.(나만 그래?) 청소년으로서의 섹스와 피임, 자위까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혹은 낯설고 생소하지만 꼭 나눠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A의 일기를 담은 이번 편지를 통해 펼쳐보자!
20xx. 6. 16.
오늘 나에겐 엄청난 일이 있었다. 정말 엄청난 일이다. 오늘 나는 내 남자친구 P와 간만에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비가 내리는 바람에 맛있는 걸 먹고 시내를 돌아다니는 일은 못했고, 그냥 같이 우리 집에 가기로 했다. 저녁까진 집이 비어 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과자를 먹고 티비를 보고 밀린 숙제를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그냥, 우리는 입을 맞췄다.
그리고 나와 P의 눈이 묘하게 마주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나는 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도 자꾸만 방 문고리를 바라보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올까 마음을 졸였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이웃들의 말소리가 들릴 때에는 ‘헉!’하고 P를 밀어내기도 했다. 들키면 어떡하지. 아무도 몰라야 해.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만약 가족들이 알게된다면.. 아, 최악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나를 부르는 P의 목소리에 생각은 그만 저버렸고 우리 둘의 몸이 너무 가까이 있다는 걸 깨닫고 난 후에는 정말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짧고도 긴 시간이 다 지나고 나서야 나는 이것이 나의 첫 섹스라는 걸 상기시켰다. 여전히 P를 정말 사랑하고, 우리가 좀 더 가까워졌다는 마음에 기쁜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설프게 끼웠던 콘돔, 밖에서 들려오던 소리, 자꾸만 울리는 핸드폰. 다 끝나고 나니 그런게 전부 떠올랐다. P를 집에 보냈다. 나를 꽉 안아주고 떠난 P는 정말 다정했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나쁘지 않았다. 생소한 기분이 즐겁고 좋았다. 그런데 그냥 좀 복잡했다. 나쁜 짓을 한 것만 같은 기분… 아, 모르겠다. 오늘 밤엔 아마 이불을 팡팡 차느라 바쁠 것 같다.
20xx. 6. 28.
P와의 첫 섹스에서는 P가 친구에게 받아 지갑에 고이 모셔두고 있던 콘돔을 사용했다. 그런데 나중에 친구가 콘돔은 지갑에 넣어두면 안 된다고 얘기했다. 얇은 콘돔이 지갑 속에서 눌려 있으면 마찰이나 압력 때문에 쉽게 손상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관계 중에 콘돔이 찢어질 위험이 더 커지는 거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왈칵 겁이 났다. 관계 후 우리는 부끄러운 마음에 콘돔의 상태를 확인할 생각도 하지 못했을뿐더러, 확인 방법도 잘 몰랐으니 만약 그 콘돔에 문제가 생겼더라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 애가 좋아서 관계를 가졌지만 그동안 걔랑 섹스를 할 거라곤 예상해본 적이 없으니 피임약 같은 건 생각에도 없었다.
다음 날 나는 P와 만나 함께 이런 상황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P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고 미리 신경 쓰지 못해 미안하다며 나에게 자꾸 사과했다. 우리 둘 다 처음이었고, 우리 둘 다 서툴렀으니 누굴 탓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낙담한 우리는 우리가 이제라도 해야 할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는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사후 피임약을 먹기엔 너무 늦었을뿐더러 그걸 사는 건 우리에게 꽤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점에 있어선 좀 어리석었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다시 생긴다면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약국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는데, 그 약사는 나를 좀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교복을 입은 학생이 이런 걸 사다니.’라고 생각했던 거 아닐까 싶다. 난 그 눈빛에 위축되고 말았다. 그날 밤은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뜬 눈으로 보내야만 했다. 유치원 때 이후론 본 적도 없는 인형을 안고 자면서도 악몽을 꿨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나는 임신 테스트기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가족들 몰래 화장실로 달렸다. 변기에 앉아 임신 테스트기에 소변을 묻히고, 양손을 꼭 모아 잡았다. 제발, 제발 한 줄만! 한참 후에 군더더기 없이 한 줄만 그어진 테스트기를 보고 그제서야 나는 마음을 놓았다. 다행히 며칠 뒤 월경도 평소처럼 했다. 나와 P는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더 이상 이런 불안과 걱정 사이에서 관계를 가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우린 피임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콘돔, 피임약, 질 외 사정(난 이게 피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기 계산, 루프…. 처음 들어보는 많은 이름들이 우리를 놀라게 했지만 더 혼란스러운 건 우리가 저것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구매하는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떤 방법이 우리에게 가장 적절하고 좋은지.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져야 겨우 알아낼 수 있었다. 우리가, 아니. 내가 선택한 방법은 경구피임약 복용이다. 섹스를 경험하고 즐기게 된 앞으로 우리의 일상엔 여러 번의 섹스 경험이 또 생길 텐데 항상 절망과 안도의 눈물을 반복할 순 없었다. 그렇지만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약국에서 눈치 보며 피임약을 사는 것부터, 피임약의 복용법을 확실히 인지하는 과정, 부모님 몰래 매일 같은 시간 피임약을 먹는 것, 수많은 부작용들을 감수해내는 것까지. 몸이 붓고 수업 듣는 게 힘들 만큼 잠이 쏟아질 때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에 서러워지기도 했다. 자꾸만 힘들어 우는 나에게 P는 남자 피임약이 출시되면 자기가 꼭 먹을 테니 조금만 버텨달라고 말했다. 그러게, 빨리 피임률 최강인 남자 피임약이 꼭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피임법은 이런 게 있다고 해. 콘돔은 기본이고!
20xx. 7. 4.
어떻게 됐든 첫 섹스를 한 후, 나는 나의 몸에 대해 생각이 좀 많아졌다. 뭐랄까. 첫 경험을 하고 난 후의 기분이 마치 처음 자위를 했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좋기도, 이상하기도 하지만 왠지 죄책감이 드는 게 비슷했다. 아무도 나의 관계를 평가하지 않고, P와 나의 섹스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지만 괜히 나의 방, 침대가 낯설었다. 가족들이나 학교 친구들, 선생님들이 우리의 지난 저녁을 알게 될까 봐 초조해졌다. 그러다 보니 이런 관계를 해버린 나 자신이 부끄럽고 후회되기도 했다. 나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첫 자위를 한건 기억도 안 날 만큼 아주 어릴 때였다. ‘내가 자위를 하고 있구나.’라고 인지를 하면서 한 것도 아니고, 나중에 좀 크고 나서야 ‘아, 그때 했던 게 자위였구나.’하면서 깨닫게 됐다. 잠자리에 누워 있다가 그냥 바지 속으로 손을 넣었고 성기를 만졌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자위에 대해 알려준 적이 없지만 그냥, 정말 그냥 그렇게 한 거다. 심장이 막 뛰고 땀도 막 나고. 전에 없던 감정이었지만 결코 싫진 않았다.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나는 자위인 줄도 모르는 채로 자위를 했다. 그런데, 자위가 뭔지도 모르고 자위를 했지만 나는 어디서부터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 죄책감을 쭉 가지고 있었다. 놀이처럼 한 것뿐이지만 사실 나의 몸이나 생식기는 좀 부끄러운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도, 선생님도 다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 이유일 거다. 내가 나의 자위를 부끄러워하고 숨겼던 것 말이다.
지금 나는 내가 내 몸과 친해질 수 있도록 무던히 애쓰고 있다. 만지는 건 오래도록 해왔어도 내 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걸 반성하는 의미이다. P가 섹스 도중 나의 몸에 대해 물어봤을 때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내 성기가 어떤 모양이고 내 몸은 어떤 자극을 좋아하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몸을 잘 알면 자위를 할 때도 좀 더 짜릿하게 할 수 있고 섹스를 할 때도 그가 나를 더 만족스럽게 만들도록 도와줄 수 있다. 섹스토이도 살 수 없고 모텔을 들어갈 수도 없고 콘돔을 살 때도 눈치를 보고 있지만, 성적 쾌감을 즐기는 게 죄는 아니잖아! 아, 말하고 보니 정말 억울하다. 우리는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쾌적한 곳에서 안전하게 섹스할 권리를 잃은 것인가. 다양한 토이를 가지고 편하고 행복한 자위를 할 권리를 잃은 것인가. 이건 너무 불공평한데 아무도 이런 얘길 하지 않는다. 왜냐면 우린 아직 어릴뿐더러 불완전한 우리의 섹스는 일탈이자 나쁜 행위이기 때문이다.
난 친구들과 함께 우리의 성기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서로의 자위를 얘기하고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섹스를 하다 고민이 생기면 친구에게 거리낌 없이 털어놓고 싶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섹슈얼리티와 섹스, 자위, 피임, 성병…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배우고 싶다. 아무도 우리에게 성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데, 우리가 과연 성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결국 나도 이렇게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한 채 일기에나 적고 있을 뿐이지만, 난 정말 내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을 꿈꾼다. 청소년인 너와 나의 섹스가 성년이 된 너와 나의 섹스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세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