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고향에 의미를 두고 사는 사람이 예전보다 적다. 머물러 있기만 해도 돈을 내야하는 때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도시에선 오늘 보는 사람과 내일 보는 사람이 다르다. 모르는 얼굴을 매일 맞대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은 계속 자리를 지키기 힘들고, 정이 들고 나면 훌쩍 떠나버린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가서 예전에 살았던 동네에 가면 금세 풍경이 바뀐다. 그렇게 살다보면 내 뿌리가 무엇인지, 내 고향은 어디인지 희미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분단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당연한 조건이었다. 우린 떨어진지 너무 오래되었고 북에 보고 싶은 가족이 있는 사람보다 휴전이라는 이름만 남은 사람이 많아졌다. 지금 사는 것만으로도 벅차니, 그냥 이렇게 사는 것은 어떠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일까? 쉽게 놓치곤 했다. 그냥 이렇게 사는 것으로도 상처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말이다.
영화는 감독의 아버지를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그의 고향은 북에 있다. 그가 고향을 떠나기까지 함께 살았던 가족도 북에 있다. 머리가 하얗게 센 그는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한다. 나이가 들어도 고향의 풍경은 잊혀지지 않는다. 너무 갑작스럽게, 많은 것과 헤어진 채로 이곳에 왔다. 감독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보여줬던 고통을 말한다. 어릴 적 자신이 해석하지 못했던 분노와 슬픔, 다 크고 난 후에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고통을 관객에게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노인과 어떻게 관계 맺을지를 질문한다. “실향민의 삶을 가득 채운 고독과 슬픔은 단지 개개인들의 것인가?”, “평생 해소되지 못한 그리움을 가족들이 떠안고 사는 것이 최선인가?”, “전쟁을 겪은 이들의 트라우마를 국가는 어떻게 해결해야하나” 아직 답을 얻지 못한 질문들. 하지만 너무나 뚜렷한 외침이다.
영화에는 여러 명의 인물들이 나온다. 직접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 1세대, 옆에서 그들의 고통을 목격해온 실향민 2세대, 그들과 어떻게 소통할지 묻는 실향민 3세대. 이들의 여정인 것처럼만 보이지만 실은 전쟁 이후의 삶을 살아내는 우리는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함께 하고 있다. 기억하는 고향으로, 바다로 가자.
6월 18일에 개봉한 독립영화 <바다로 가자>를 함께 보았으면 좋겠다. 코로나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좋은 영화가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