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버스에서 자주 졸거든. 집에 갈 때는 아예 머리를 뒤로 젖혀서 잠을 잘 때도 많아. 그 때 비교적 단조로운 노래 한 곡을 계속 듣는 편이야. 아니면 아주 익숙한 노래나! 갑자기 요란하고 새롭게 잠을 깨 버리긴 싫거든. 요즘 무한반복 하는 노래는 신승은의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은 너무 평범해요>인데 차창 밖 노을을 봐도, 눈을 감고 덜컹거리는 버스에 집중해도 잘 어울리는 거 같아.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 가끔 있어. 실제로 펜을 들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만, 뭐라도 써볼까 했던 두 곡이 있어. 한 곡은 핫펠트의 <나란 책>이야. 내 삶도 책으로, 노래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책, 어떤 노래가 될지 궁금해지더라. 내 일곱 살, 열여섯 살, 열아홉은 어떻게 부를 수 있을까. 다른 한 곡은 아이유의 <에잇>이야. 오렌지 섬에 가서 내가 영영 잃고 싶지 않은 이들을 만나면 나는 그들과 어떻게 놀까 상상해봤어. 예컨대, 오래전 떠난 개를 만난다면 나는 오래전의 모습으로 같이 산책을 하지 않을까.
이건 비밀 아닌 비밀인데 난 집에서 막춤 추는 거 되게 좋아해. 그리고 요즘 내 흥을 돋게 하는 최고의 춤곡을 꼽으라면 당근 레이디 가가의 <STUPID LOVE>야. 일단 시각적으로 나를 완전히 만족시켰거든. 춤... 의상... 배경... 역시 레이디 가가 선배님...(?) 춤이 정말 신나. 뮤비를 같이 보는 걸 추천해. 가사도 단순하고 좋아. 앞 뒤 재지 않는 미련한 사랑! 사실 평화와 행복엔 그렇게 많은 게 필요하지 않은데 말이야.
김사월의 <세상에게>는 정말 지치고 힘들 때 듣게 돼. 요즘은 많이 듣지 않았지만 주기적으로 듣는 노래라 살짝 끼어 넣었어. 왜 난 별로지, 부족하지, 힘들지 이런 생각하다보면 끝이 없잖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자고 일어나면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지가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이게 말이 쉽지. 그럴 때 이 노래를 들어.
세상에게 난 견뎌내거나 파멸하거나 할 수 밖에 불확실한 나에게 이미 정해진 것은 방황 하나 뿐이라는 걸
올해 여성의 날 즈음에 알고서 꾸준히 들었던 보수동 쿨러의 <0308>. 제목이 여성의 날로 의도했다는 걸 아주 나중에 알았어. 왜 그런지는 나도 몰라. 노래 초입의 내레이션이 정말 중독성 있어. 처음엔 이 독백을 듣기 위해 계속 들었던 거 같아.
무언가를 깨트리는 것은 경계를 부풀리는 새로움을 전해줄 것이다 익숙함으로부터 멀리 벗어나는 건 쉽지 않겠지만 인정하자 살아가며 우리가 배운 건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거, 아닌가?
시원한 노래야.
좋은 노래와 이야기, 시, 영화는 언어와 인종, 성별을 초월하잖아. 나는 나를 지켜줬던 노래들이 많은 것들을 넘어서 어디서든 들렸으면 좋겠어. 언어와 인종, 성별을 넘어서. 혐오를 넘어서. 유리벽을 넘었으면 좋겠다. Z에게도 그런 노래가 있어? 답장으로 알려준다면 기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