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Z, 좀 뜬금없이 시작을 했지? 얼마 전에 내가 유튜브에서 마주친 댓글이야. 이 댓글은 날 곰곰이 생각에 빠지게 했어. 새로운 단어를 마주 한다는 게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용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뭘까?
<페미니즘 언어학과 성차별 메커니즘>이라는 책에서 말리스 헬리어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 “언어는 사회적 관계의 산물로서 사회적 현실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언어적 행위는 여타의 사회적 행위가 어떻게 현실을 정의하고 공고히 하는가를 여실히 반영하며, 사회적 관계와 지위 등은 언어를 통해 정의되고 유지된다.”
무심결에 내뱉는 단어들이 생각보다 많은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아. 입안에서 맴도는 말들은 여성 혐오적 맥락에 가담하게 해.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말이지! 그래서 여성 혐오적 용어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대안 용어들을 찾아봤어. 차근차근 읽다 보면 속에서 조그맣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 내 사고 구조는 내가 결정할 거야!
리벤지 포르노 ▶︎ 디지털 성범죄
전체 성범죄 중 최근 10년간 가장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디지털 성범죄’라고 해. 불법 촬영, 불법 유포 및 협박, 사진과 영상 소비, 아동 청소년을 노예로 만드는 온라인 그루밍 등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성 착취에 가담하는 모든 것이 ‘디지털 성범죄’야. 아동 성 착취물, 연인 간 보복성 영상이 그저 그 나이 또래에 보는 포르노, 음란물, 야동이다? 아니라니까!
몰래카메라 ▶︎ 불법 촬영물
몰래카메라는 ‘촬영을 당하는 사람이 촬영을 당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라는 뜻이야. 범죄 행위 여부를 구별하지 않는 개념으로, 마치 유희나 놀이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표현이야. 원하지 않는 촬영에 노출되지 않을 권리를 빼앗는 것은 엄연한 범죄고 불법이야.
낙태 ▶︎ 임신 중절
낙落(떨어질 낙)태胎(아이 밸 태)는 한자 뜻부터 태아 중심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낙태는 태아를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임신 중절이 마치 산모와 여성의 잘못인 것 같은 부정적 인식을 만들어. 그보다는 ‘임신 중절’ 또는 ‘임신 중지’가 적절해.
저출산 ▶︎ 저출생
아이가 적게 태어나는 것을 여성의 문제로 부각하는 것은 이제 그만! ‘저출산’이 아이를 적게 낳음이라면, ‘저출생’은 아이가 적게 태어남이라는 뜻이야. 저출생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
생리 ▶︎ 월경
생리는 ‘생물체의 생물학적 기능과 작용’이라는 뜻인데, ‘월경’이라는 단어를 심리적으로 숨기고 싶어서 포괄적인 단어로 생리를 사용해. 생리뿐만 아니라 그날, 마법, 매직, 대자연 등 전 세계에 무려 5,000여 개의 은어가 있을 것으로 추정돼. 맑고 깨끗하고 자신 있게 청결을 유지하고, 은밀한 사생활로 치부되는 월경을 숨겨야 할 것만 같기 때문이야.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생의 8분의 1에 가까운 시간을, 대체 왜 숨기면서 지내야 하는 거야?
처녀작 ▶︎ 첫 작품
처녀작은 처음으로 지었거나 발표한 작품을 뜻하는 용어로 자주 사용되어왔어. 하지만 처녀는 여성의 첫, 최초의 성관계 여부를 따지고, 소위 순결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여성 혐오적 맥락을 가지고 있어.(여성의 성관계 여부가 뭣이 중헌디!) ‘맨 처음 닥치는 차례’라는 뜻의 ‘초도작’이나 ‘데뷔작’이라는 대안어가 있어.
이곳에 다 쓰지는 못했지만, 우리 일상 곳곳에 정말 많은 여성 혐오 단어들이 숨어있어. 우리가 배웠던 것들을 다시 써내려가는 게 번거로워 보일지라도, 새로운 단어들을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세상이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 단어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 문장이 되고 역사가 되는 것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