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채식을 해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은 건 재작년 여름이었어. 나는 대안학교에 다녔었는데, 축제를 하면 보통 테마를 잡아 1주 정도 하거든. 2018년 여름 축제의 주제는 ‘환경’ 이었고 축제 준비팀은 에코 캠페인, 환경 영화제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어. 친구들 손에 이끌려 영화제에 참석한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만 같은 얼얼함을 느꼈어. 열댓 명이 모여앉아 처음 본 영화는 <잡식 가족의 딜레마>였는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축산업의 실체와 비윤리적 동물 사육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어. 끔찍함과 동시에 회의감이나 죄책감이 몰려왔지, 그날부터 나는 친구들에게 고기를 먹지 않겠다 선언했어.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예고편
우리 학교는 채식인들에게 꽤 우호적인 학교였어. 비채식인을 위해 준비된 식단 이외에 채식인들을 위한 반찬이 항상 준비되어 있었어. 김치는 액젓을 넣지 않은 비건 김치를 먹었어. 행사나 엠티를 하느라 피자를 먹을 때면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고구마, 치즈 피자를 따로 준비했고 비건 친구들이 먹을 비건 과자도 항상 챙겼어. 하지만 왜인지 채식 반찬의 양은 항상 부족했고 차갑게 식어있었어. 조금 늦게 밥을 먹으러 오면 삶은 두부나 비건 떡볶이는 동이 나 김치나 구운 김을 먹어야 했지. 애들이 둘러앉아 웃고 떠들며 피자를 먹는 동안 비건 하는 친구는 혼자 떨어져 앉아 감자칩을 씹었어. 그에게는 고기나 치즈의 냄새도 불편했기 때문이야. 일반 학교에 다니며 비건을 하는 청소년들은 정말 먹을 수 있는 게 없어 쌀밥에 보리 차를 부어 먹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 급식실에 가지 않고 교실에 남아 챙겨온 도시락을 먹는다는 얘기는 더 자주 들었고. '그런 상황들에 비해 우리가 처한 환경은 훨씬 나은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우리는 왜 따뜻한 반찬을 넉넉히 먹을 수 없는지, 다 함께 둘러앉아 과자를 나누어 먹을 수는 없는지를 생각하면 정말 속상해지는 것이 사실이었지.
대안학교 안에서는 식당 선생님들과 학교 구성원들의 최소한의 배려와 존중을 받으며 가끔은 억울해도 잘 이겨내며 채식을 할 수 있었어. 하지만 학교를 나오는 순간 상황은 달라졌어. 오랜만에 만난 중학교 친구들은 밥을 먹자며 삼겹살과 햄버거 중 무엇을 먹을지 골라. 한참 놀다 좀 출출해지면 핫도그나 닭강정을 먹고. 그러면 나는 선뜻 채식을 하는 중이라 얘기하지 못하고 그거 말고 떡볶이는 어떻냐 묻곤 했어. 애들이 핫도그를 먹는 동안 배가 별로 고프지 않다고 음료수를 마셨어. 내가 채식을 한다고 얘기하면 애들이 불편해할까 봐, 남들이 나 때문에 밥 고르는데에 애를 먹을까 봐 그랬던거야.
페스코 생활을 하다가 포기한 게 지금까지 서너 번은 되는 것 같아. 가리는 음식이 많은데 채식을 하다 보니 먹는 게 많이 부실했어. 원체 몸이 약했던 터라 학교생활과 채식 생활을 동시에 하면서 빈혈이 심하게 오고 말았지. 방학을 하자 마자 최소한의 육식을 다시 하게 되었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과정을 반복했어. 채식을 시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알고 있는 맛의 무서움이었어. 치즈 돈가스나 닭강정의 맛, 미역국에 들어가는 소, 짜장 소스에 들어간 분쇄 돼지 같은 것들은 전부 아주 어릴 적부터 오랫동안 먹어왔어. 그런데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궁금하지도 않은 그것들이 왜 그렇게 끊어지질 않는지. 인내와 절제의 연속이었어.
대안학교와 하자를 전전하며 채식인들을 많이 만났어. 비건으로 생활한지 꽤 되어 고기 냄새나 형체가 불편해진 사람도, 식습관에서 그치지 않고 의류나 생활용품을 비건으로 전환하는 사람도. 비건 음식을 먹으면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애쓰는 사람도 만날 수 있었어. 내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게 싫어서 얼떨결에 고기를 먹는 동안 누군가는 밀폐용기에 담아온 채소들을 요리해 가족에게 대접했어. 뙤약볕에 아스팔트에 누워 공장식 사육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기도 했고. 나는 금세 생각이 많아졌지.
지난 한 달간 약 팔천만 마리의 동물이 인간에 의해 도축되었어. 닭은 초당 30마리 가까이 죽어 나간다고 해. 물고기나 알, 우유 등의 양을 합치면 아마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을 거야.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비인간 동물들이 죽임 당해 인간에게 먹히고 있어. 과연 그뿐일까? 우리가 작은 동물들의 털과 가죽까지 탐내는 바람에 털이 보드랍고 여린 새끼 동물들은 산 채로 털이 뽑히고 가죽이 벗겨졌어. 비좁은 케이지 안에서 피부에 화장품이 칠해지고 눈에 마스카라를 수천 번 덧바르는 동물들도 정말 많아. 같은 심장을 안은 채로 태어나 동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인데, 왜 인간이 인간이 아닌 것들을 이용하고 죽이는 게 당연해져버렸는지. 우리는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해.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고기가 너무 맛있어서.’라기엔 우린 이미 너무 많은 생명들에게 죄를 지었어. 고기를 안 먹는다고 세상이 바뀔까 싶지만, 어쩌면 애쓰는 누군가들로 인해 세상은 점점 바뀌고 있을지도 몰라. 내가 조금 불편해서, 나의 주변 사람들이 나와 함께 조금 불편해서 몇 마리의 동물들을 살릴 수 있다면 기꺼이 불편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해. 여기서의 ‘나’가 글을 쓰는 미운과 읽고 있는 Z, Z의 주변 모든 X들이 된다면 우리는 곧 이뤄낼 수 있을 거야. 지구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 그리고 다시금 동물들이 숲과 물로 돌아가게 되는 세상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