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라는 단어가 뉴스에 등장한 지 벌써 두 달. 우리 사회의 많은 시설이 멈춰섰습니다. 학교, 학원, 미술관, 박물관, 그리고 하자센터까지. 외출이 꺼려지는 것은 물론이고, 집 밖으로 나서도 항상 향하던 곳들이 닫혀있으니 할 수 있는 일들이 제한되었어요. 하자마을책방의 휴관기간이 길어지면서 책모임 <조용한 혁명>의 모임도 미뤄져만 갔죠.
답답함이 쌓이던 중, <조용한 혁명>내에서 <코로나 일기>를 쓰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코로나 일기>는 재난을 겪는 우리의 일상을 적어보는 에세이에요. 책모임 <조용한 혁명>은 오프라인 모임을 못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서로의 코로나일기를 공유하기 시작했어요. 영화, 산책, 문득 떠오르는 크고 작은 생각들까지, 글 너머로 멤버들의 일상을 전해 듣는 일은, 제게 환기가 되어주었어요.
이번 주부터는 <코로나 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기로 했어요. 공기네트워크와 교환일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SNS 해시태그(#하자_코로나일기)를 통해 더 많은 하자 청소년들과 온라인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지요. 집에서 혼자 보내는 일상에 싫증이 나던 차에, 여러 사람과 연결되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아 기대와 활기가 생기고 있습니다 =)
다들 잘 먹고, 잘 자고 있는지, 빈 시간은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요. SNS에서 #하자_코로나일기 해시태그를 통해 더 많은 하자 청소년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 서로를 살피며 조금은 다른 일상을 잘 보내고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기를 바랍니다!
가볍게 지나갈 줄 알았던 코로나가 한 달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나는 2주간 병원 외에 아무 곳도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방학을 한 기분이었는데 1주가 되고, 2주가 되니 점점 질리기 시작했다. 매일 책을 조금 읽다가,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다가, 밥을 먹다가, 일기를 쓰고 잠자리에 들었다. 2주 내내 하는 일이 비슷하니 오늘과 내일의 경계가 흐려지고 아침과 밤의 의미가 없어졌다. 나는 할 일을 자꾸 내일로 미루고, 밥을 거르고, 아무 때나 잤다. 그런 내 모습을 보여 내가 일정 없이 빈 하루를 살아나가는 근육이 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탈학교를 하고 갑자기 비어버린 플래너를 지금까지 잘 채우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플래너에 일정이 없는 하루들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최근의 2주처럼 보내지 않았을까?
언제부턴가 나의 삶은 일을 많이 벌이고, 벌인 일들을 수습하는 과정의 반복으로 채워져 온 것 같다. 가끔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벌여 일정이 헷갈리고, 꼬이고, 쌓여서 밤을 새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엄청난 후회와 함께 일어났다. 내가 신청하고, 시작하고, 만든 일들은 어쩌면 플래너에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하루가 무서워서 세워놓은 것들 같았다. 나는 일정이 없는 하루를 잘 사는 일에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잘 살지 못한 하루 끝에 오는 후회를 느끼는 데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계속해서 만들었다. 그 일을 하며 보낸 하루는 보람차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혼자 집 안에 남겨지고 나서야, 내 일상을 조금 더 나의 힘과 근육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의 일정과 할 일에 끌려다니다가 아, 오늘은 이만하면 나쁘지 않았다, 혹은 바빠서 어쩔 수 없었다, 하고 잠드는 동안 내가 정말 잘 살았는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 산다는 말을 들었을 때 생각나는 것은 건강한 음식, 몸을 움직이는 것, 밤을 새우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계획한 일을 잘 해내는 것이었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고, 아침을 해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하고, 할 일을 하다가, 산책을 하는 것.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일정을 체크하고, 일정에 늦지 않는 것. 적고 보면 간단하게 보이지만 부끄럽게도 내가 지키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 일들을 자신의 힘으로 매일 반복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 산책을 나갔다. 중학교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집 앞 공원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는데, 모두 마스크를 쓰고 서로에게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하며 걷고 있었다. 왠지 트랙을 도는 사람들은 다들 자신의 일상을 잘 살아가는 근육이 있는 사람들일 것만 같았다. 나였다면 코로나를 핑계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나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산책을 했다. 아직 3일뿐이지만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든다. 결심하고 실패하길 반복했었는데 한 번 산책을 하고 나니 공원은 그리 멀지 않고 산책은 기분 좋은 일이라는 감각이 공원까지 가는 일을 쉽게 만들었다. 어쩌면 코로나가 끝난 후의 내 일상은 조금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나 혼자 살아가는 하루를 더 좋아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