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한 목표들을 매주 하루씩 꾸준히 해낸다는 것. 6개월 정도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내가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집중하지 못하며 충분히 방황했다. 탐험활동 때에는 모두가 함께하기 때문에 좀 더 잘 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는데 개강하고 학업생활과 알바를 병행하면서 하려니 의지가 자꾸 꺾였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순간을 조금 더 즐기면서 나를 위한 순간들로 바꾸어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6개월간 꾸준히 해낼 목표를 세운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내가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잡는 것이기 때문에 내 삶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아슬아슬함도 있었지만 목표가 있으니 확실하게 해야 할 일들을 해내겠다는 크고 작은 다짐들이 함께했다. 그리고 각자의 생활 속에서도 가끔이나마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우분투가 있었다. 모두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 나를 자극시키고 움직이게 했다. 탐험활동 때에는 협동했고 힘들지만 참 많이 웃었던 것 같다. 그 여름밤들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고 올 한해의 뜨거웠던 한 장면들로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매주 한 시간씩 활동을 못 하는 날도 있었다.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완전히 다른 활동에 열중하여 성취포상제를 잊을 만큼 활동했던 날도 있다. 하지만 결국 6개월을 치열하게 보내며 함께 동장을 탄 나 자신과 우분투들을 정말 칭찬하고 응원하고 싶다. 앞으로도 이 시간들을 기억하고 싶다.
:: 글_ 미소(우분투 1기)
국제청소년성취포상제 동장을 마치며
160시간의 실습, 18시간의 수업, 20시간의 근로에도 불구하고 나의 버킷리스트중에 하나인 ‘국제청소년성취포장제 동장 인증받기’를 이루었다. 항상 생각만 하고 실천은 못 하던 일이었다. 마땅한 기관을 찾지 못해서. 대학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고 미뤄만 왔던 일이다. 동장 도전기간 동안 바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동장 도전을 시작하던 방학 기간에는 청소년수련관에서 160시간의 실습을 했고, 개강을 하고 나서는 주중에 수업을 18시간씩 들으면서 20시간의 근로를 하였고, 토요일엔 천안과 서울을 오가며 청소년들을 만났다. 솔직히 나는 내가 이것을 성공해 낼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이렇게 바쁘고 여유도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6개월간의 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왔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니, ‘함께 했기 때문에’라는 답이 나왔다. 나 혼자 했다면, 주변에서 아무도 내가 활동을 잘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을 것이고, 격려도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가끔의 압력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절대로 동장 인증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자에서의 포상제는 달랐다. 우분투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무슨 활동을 하는지, 오늘은 무슨 활동을 했는지, 보고서는 잘 쓰고 있는지 서로를 궁금해 했고, 격려하고 함께 동장 인증을 받자고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다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우리는 함께 동장 인증을 받았다.
사소한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은 중대한 일을 잘 해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와 무엇인가를 함께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혼자 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일들을 우리는 함께 해냈다. 꾸준함의 뿌듯함과 함께함의 즐거움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포상제를 해보자고 제안해주시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어갈 수 있게 도와주신 포상담당관 미라클과 6개월간 격려하고 응원하며 함께해준 우분투팀 정말 고맙습니다. :)
:: 글_ 너랑(우분투 1기)
나를 넘어서는 작은 경험, 국제청소년성취포상제
‘같이 저녁 먹으러 나갈까?' '귀찮아… 집에 있을래.’
이불 밖은 위험하다며 귀차니즘이 절정에 달한 중 3 유진이. 이 녀석을 이불 밖으로, 아니 집 밖 세상으로 내보내기 위한 방법을 찾다가 하자센터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름도 생소했던 ‘국제청소년성취포상제’라는 도전을 해봄이 어떻겠냐 하면서.
자기주도, 도전, 성취, 포상이란 단어가 일단 엄마의 손을 떠나 뭔가 스스로 해 갈 수 있는 연습이길 바라며 포상담당관인 미라클을 만났습니다. 귀차니즘에 빠져있던 유진이는 에너지 넘치는 미라클에게 떠밀려 자의반 타의반으로 포상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국제 청소년성취포상제 활동의 4가지 영역에서 유진이는 자기개발은 만화 습작을, 신체단련활동은 댄스를, 봉사활동은 편지 번역에 도전하기로, 탐험활동은 우분투팀의 언니, 오빠들과 함께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몸치 가족인데다 무엇 하나 나서서 하지 않는 녀석이 신체단련활동에 댄스라니… 처음엔 혼자 유튜브 안무 영상을 보고 따라 하다가 학교근처 방송댄스 학원을 알아보고 등록 했습니다. 어설픈 몸놀림에 춤이 되겠나 싶었는데 6개월 댄스를 하고 활동이 마무리할 쯤 수업하는 모습을 보았더니 춤이라 할 정도로 춤을 추고 있어 놀랐습니다. 유전의 힘을 거스른 놀라운 변화에!
만화 습작이나 편지번역, 댄스 모두 활동내용을 주단위로 두볼 사이트에 기록해야 했는데 시험 기간이나 개인 일정으로 위기의 순간이 몇 번 있었습니다. 미라클에게 활동 횟수와 기간을 여쭤보고 맞추면서 11월 말까지 유진이와 2인3각 경기를 하듯 활동내용을 채워나갔습니다.
진정한 위기의 순간은 탐험활동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름 방학 전 1박2일 일정으로 인천의 작은 섬인 ‘시도’로 우분투 팀 언니, 오빠들과 예비탐험 활동을 떠났습니다. 더위도 많이 타고, 낯가림도 있고 뭐든 귀찮은 녀석이 단체 활동을 하면서 생존체험과 같은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잘 마치고 돌아와 많이 컸구나 싶었습니다. 당연히 정식탐험은 문제없겠다 싶었죠.
그런데, 한 주 뒤 진행되는 정식탐험에 절대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유진이. 저뿐만 아니라 미라클도 이번 탐험에 유진이가 빠지면 우분투팀 전부 동장 도전에 실패하는 거라고 유진이 설득에 나섰습니다. 탐험일자는 다가오는데 유진이의 마음이 꿈쩍하지 않아 제안을 했습니다. 언니, 오빠들과 함께 시작한 활동인데 힘들고 불편한 시간이겠지만, 네가 마음 내어 가준다면 엄마도 너를 위해 배가 내리는 삼목선착장에 나가있겠다고.
이런 우여곡절 끝에 유진이는 우분투팀의 언니, 오빠들과 미라클의 도움으로 정식탐험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식수를 구하느라, 새벽부터 내린 비를 피하느라 힘든 시간이었다며 이야기하다 잠든 아이를 보니 또 한 뼘 자랐구나 싶었습니다. 이렇게 나를 넘어서는 작은 경험을 마치고 받는 동장은 더없이 값진 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은장, 금장은 더 하겠죠. 시상식도 서울 시청에서 제법 크게 열려 저도 괜히 뿌듯했답니다. 시상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년에 고1이라 바쁠 텐데, 은장 도전할 수 있을까?’ 라고 묻는 유진이. 이 녀석 자신감이 좀 생긴 것 같습니다.
요즘 중학생들은 학원에, 수행평가에 할 게 많죠. 하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활동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있을까 싶습니다. 일주일 3시간 그리 긴 시간은 아닙니다. 내가 도전하고 싶은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는 3시간. 6개월의 기간. 내 의지와 시간의 힘을 믿어 본다면 더 많은 것을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만화 습작을 하면서 고민을 했는지, 미술 쪽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유진이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서툰 그림 솜씨지만 용기 있게 먼저 마음을 열고, 꿈을 꾸는 유진이를 믿어주며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 글_ 우분투 1기 황유진 어머니
십대의 마지막, 끝까지 우분투!
당찬 포부를 가지고 활동을 시작했던 6월. 하자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새로운 활동의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 무언가 마음이 들떴었다. 열아홉의 마지막을 의미 있게 보내자! 하며 성취포상제 활동 신청서를 작성했던 기억이 있다.
시작부터 조금은 삐걱거렸다.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은 무엇인지부터, 그 활동은 어디서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찾았다. 식물 가꾸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서울에 있는 농업박물관과 서울식물원 두 곳에 활동을 문의해봤지만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활동을 어떻게 할지부터 제대로 된 계획이 마련되지 않아서 3주 정도는 계속 계획변경을 신청했었다.
여차저차 활동의 기반을 닦고 나는 내가 수행할 활동 세 가지를 계획했다.
- 자기계발 활동 : 인문학 책 읽기
- 신체단련 활동 : 한강에서 자전거 타기
- 봉사 활동 : 하자에서 텃밭 가꾸기
- 탐험활동까지 총 네 가지 분야의 활동을 했다.
계획한 활동들 모두 내가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들이었기 때문에 시작은 순조로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활동을 하면서 입시를 준비하게 되고 약간의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탐험활동까지 즐겁게 다녀왔지만, 그 이후부터 갑작스레 새로운 일들이 나에게 생겼기 때문에 활동에 차질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활동을 하는 것이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1달 조금 넘게 활동을 멈추게 되었다. 활동을 재개하고 난 뒤에 드는 여러 가지 감정은, 입시를 하면서도 조금 더 노력해서 꾸준히 흐름을 이어올 걸 하는 아쉬움과, 밀린 일지를 쓰면서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약간의 회의감. 무언가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의 그 포부를 잃어버린 것 같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차저차 모든 걸 마무리 짓게 되었다. 바쁜 일상도 다 지나가버리고 이제 12월이 되어 회고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 옆에서 누군가도 나와 같이 무언가를 하고 일지를 쓰고 그걸 함께 공유하고 있다 생각하니 나 또한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성취포상제 활동을 하면서 좋았던 점은 두 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다. 청소년기에 쉽게 접할 수 없는 탐험활동을 다녀와 보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접해보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 분명 시간이 들고 노력이 드는 일이지만, 나는 즐겁게 했던 것 같다. 중간의 공백기가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활동, 하길 잘 했다. 언제 또 이렇게 매주 내가 좋아하는 걸 강제적인 장치를 가지고서 꾸준히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좋은 동료들을 옆에 두고서. 우분투는 나에게 너무 좋은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