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감탄사가 팡팡 터지는 소리. 가을 텃밭에 심어놓은 배추에 달팽이의 흔적이 마치 예술품처럼이나 정교한 이유이다.
약을 쓰지 않았으니 잡는다고 완전히 없어지는 건 무리이지 하면서도 알이 통통 차있어야 할 배추들이 앙상한 거미줄로 변신해 있으니 아쉬운 마음도 크다. 하지만 이내 곧 이일은 하자 텃밭이기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생각한다. 하자 마을의 농사 시작을 알리는 시농제 때 드렸던 농사 약속이 있었는데, 적어보자면 이렇다.
1. 지렁이도 달팽이도 애벌레도, 까치도 까마귀도 직박구리도 참새도 더불어 사는 농사를 짓습니다.
2. 나비와 벌이 즐거이 찾는 농사를 짓습니다.
3. 작물과 꽃을 돌보며, 흙을 살리는 농사를 짓습니다.
4. 하자 마을 안팎의 사람들과 나누는 농사를 짓습니다.
5.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 무경운으로 키우려고 애씁니다.
올 한 해 그래도 이 약속들을 조금씩은 이루어가려고 노력해온 텃밭의 풍경들이 지나간다. 약 치지 않고, 자연농으로 시작한 텃밭이니 벌레와 내내 마주하는 것도 함께 먹고 가꾸는 일도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도 쭉 피해 갈 수 없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마음을 좀 더 넓~게 가져보면서 앙상해진 배추를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곧 수확할 배추들을 뽑아내고 나면 봄부터 복작복작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어, 함께 이루어가던 우리의 옥상텃밭도 잠시 쉬어갈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내년 봄까지 우리에겐 멈춤이겠지만 흙에게는 어쩌면 이 휴식부터가 새 생명을 품어낼 내년 농사의 시작일지 모르겠다.
처음, 내가 마주했던 텃밭의 풍경도 겨울이었다. 무엇 하나 피어날 엄두가 안 나던 막막했던 텃밭. 하지만 계절과 함께 어느덧 땅은 녹고 부드러워지는 때가 오는 것을 알았다. 그때가 비로소 사람이 흙을 돌보며 농사가 시작되는 때이다.
작년 12월, 몇 년째 둘째를 기대하며 하던 일을 멈추고 첫아이 육아에만 전념해오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새해가 오고 있었지만 섣불리 기대할 수도 좌절할 수도 없는 알쏭달쏭한 마음들이 희망찬 새해로 가는 길목에서 나를 서성이게 하였다. 하지만 새해가 아닌가.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기회. 실망은 또 연말에 다시 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다시 한 번 새해의 소망을 붙잡고 싶었다. 일단은 나를 건강하게 세워가자는 꿈으로 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날은 요가 등록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우연히 하자 주차장을 지나다 도시 빌딩 속에 앙증맞게 자리한 2층짜리 정겨운 나무집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마치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도 된 듯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한편에 주차를 한 뒤 이곳저곳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리번거렸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겨울 코트를 움켜쥐며 걷던 중 신관 게시판에 붙어있던 텃밭단 모집 공지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 나의 마음밭이 딱 그러했다. 무엇 하나 피어날 엄두가 안 나던 막막했던 겨울 텃밭 같은. '할 수 있을까...'로 시작된 마음이 어느덧 신청 버튼을 클릭했다.
결혼해서 신혼 때까지 나는 노지에서 3년 정도 텃밭을 경험한 적이 있다. 첫아이가 생기고 아직은 어리다는 이유와 계속 생겨나는 다른 이유들로 자연스레 텃밭과 멀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첫아이가 어느덧 5살이 되었고 이른 가을 이사를 온 곳 바로 옆에는 아파트 입주민들을 위한 텃밭이 운영되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 등 하원을 하면서 매일 마주하는 그곳에는 보기만 해도 초록 초록한 채소들이 아침햇살에 빛나 보였다. 하루는 아이와 텃밭을 자세히 보면서 흙 위로 올라온 초록 잎들 채소의 이름들을 가르쳐 주었다.
‘저건 무 잎이야. 우겸이가 좋아하는 피클 담을 수 있는 무.’
‘저 잎은 피터래빗이 그렇게 좋아하는 당근의 잎이지.’
"마트에서 줄기가 잘린 무와 당근을 보면서 살아가는 도시 아이는 당근의 잎과 무의 잎을 알 수 없다"라는 글을 결혼 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다. 이담에 내게도 아이가 생긴다면 함께 씨를 뿌리고 새싹부터 지켜보는 시간들을 가져봐야지. '제한된 부분만 아는 반쪽짜리 앎이 아닌 전체를 이해하면서 살아가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했더랬다.
시간차를 가지고 있던 이 두 가지 기억들이 함께 오버랩되면서 곧 6살이 되는 첫아이와 함께 돌볼 수 있는 텃밭이 생긴다는 게 두근두근 기대되었다. 그렇게 봄은 왔고 배정받은 아담한 텃밭상자에 당근 씨앗과 토마토. 쌈 채소 씨앗들을 작은 두 손과 함께 조심스레 파종을 하였다. 노지보다는 수확이 작겠지 했던 걱정과는 다르게 너무나 훌륭히 자라준 당근들을 수확했던 날. 잎을 잡고 쑤욱 뽑아 올리면 숨어있던 당근이 짠~ 하고 올라와주는 그 기쁨. 우리는 드디어 그 수확의 기쁨 앞에서 함께 즐거워했다.
봄에 씨앗으로 심었던 토마토는 5월에 모종으로 심었던 토마토를 넘어 쑥 자라나더니 여름내 수확을 마치고 뽑혀나가기까지 아주 천천히 자라났다. 그렇게 가을햇살을 온전히 받아가며 한 개 두 개 토마토가 열려주었다. 그 모습을 천천히 오래 지켜보는 것도 꽤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처음엔 아이와 함께 돌볼 텃밭이 생겨 설레었다면, 계절들을 지나 보내며 돌아보는 시간 속에는 텃밭단으로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도 즐거움과 깨달음이 많았던 것 같다. 하자에서 농사하며 가장 즐거웠던 일은 정기모임 하면서 함께 키운 야채들을 함께 나누어 먹는 즐거움이다. 사실 노지에서 키우면 더 많은 양을 동시에 수확하기도 하지만, 3인 가족이 그 양을 소화하기란 언제나 버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아랫집 할머니나 친구와 나누어 먹기도 했지만, 전하는 일에 번번이 약속을 잡고 오가는 일정이 나중에는 더 버거워졌던 것 같다.
하지만 하자에서는 함께 키워서 함께 나누어 먹으니 서로서로 필요한 만큼 가져가고 또 한 번씩 모여서 함께 먹으니 얼마나 좋던지. 어느 여름날 공동구역의 감자를 캐서 바로 삶아주셨는데 아이들이며 어른들이며 중정에 둘러앉아 호호 불며 맛있게 먹는 모습이 여기가 왜 하자마을이라 불리는지 실감나게 해주었다. 감자의 구수한 냄새만큼이나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사람 냄새가 참으로 좋았던 기억이다.
허브텃밭단 정기모임 중
함께 나눠먹은 감자
텃밭의 절정은 아무래도 여름일 것이다. 여름날 탐스럽게 익어가던 토마토며 가지 오이들을 마주하게 되면, 이 더운 날 땀 흘려가며 가꾸어온 농사의 미소가 내 것이 된다. 그렇게 기뻐하는 날이 오래가지 않아 옥상텃밭에서도 예외일수 없는 여름의 적이 있으니 바로 잡초이다. 뽑아도 뽑아도 조금도 변함이 없는 무서운 생명력으로 무장하여 1주일이면 금세 사람의 무릎까지도 자라난다. 그렇게 며칠만 방치해도 텃밭은 자라나는 채소들과 함께 순식간에 뒤엉켜가는 잡초들의 숲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안다고 막을 수도 없다. 여름날의 뜨거운 햇살 아래 매일 텃밭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에어컨이 주는 시원한 바람 곁을 맴도느라 애써 모른 척을 이어가는 날들이 늘어나면서 우리의 텃밭도 예외 없이, 어디가 우리가 심은 채소이고, 어디가 잡초인지 모를 그저 다 같이 푸르게 푸르게 무성해져가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누군가 텃밭을 구경하시다가 “식물도 바람이 통해야 하는 법인데 이렇게 해놓으면 어떡해.” 그 말로 피오나의 행동력과 동행하여 거침없이 겹가지들을 정리해주던 기억이 난다. 그날 이후로 ‘식물들 사이에도 바람 길을 내어주어야 한다.’ 라는 말이 더욱 확실하게 새겨진 것 같다. 그렇게 뽑아낸 잡초 하나도 절대 버려지진 않는다. 잡초를 적당히 잘라서 흙에 얹어주면 흙이 금방 마르지 않고 수분을 오래 머금을 수 있단다. 골칫거리이기만 했던 잡초가 그렇게 귀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도 하자에서 배운 농사법이다.
오늘은 올해 최초로 영하 3도를 찍은 아침이다. 어제 오후 텃밭 작물들을 영하가 오기 전에 수확하자는 거인의 말에 시간되는 회원들과 함께 올해 마지막 수확을 도우며, 다년생 작물들은 뿌리가 튼튼해지도록 줄기들을 정리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