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음악이 좋았다. 초등학교 때는 합창단 활동이 제일 좋았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뮤지컬 동아리를 만들었고, 오디세이학교를 다닐 때는 처음 밴드를 만들었고, 일반고로 돌아가서도 학교의 허가를 못 받긴 했지만 어쨌든 밴드부를 만들어 공연을 했다.
오디세이 학교를 졸업하고 일반고로 돌아가 1년 동안 인문계 입시를 하면서 사람이 많이 상했다. 뭐 자세한 얘기는 생략하겠지만 아주 그냥 팍 상해버렸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열 여덟 겨울의 갈민경은 서울예대를 거쳐 버클리에 가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었다. 당시엔 참 주체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유튜브에 ‘서울예대 합격’을 검색해서 합격생 영상을 하나하나 보면서 학원정보를 찾았다. 그리고 열아홉이 되자 마자 홍대에 있는 유명한 입시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부모님을 설득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서울예대를 꼭 가야 했다.
예대에 대한 의심이 들게끔 하는 말들, 즉 취업률이나 졸업생들의 진로나 강의의 수준이나 대학의 필요성이나 음악가로서의 삶 자체에 대한 말들은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자고로 입시는 그렇게 하는 거라고 배웠다. 생각을 지우고, 고민을 잊고. 쓸데없는 생각에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됐다. 의심하는 순간 지는 게임이었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입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는 자퇴를 했다. 그 이유만은 아니었지만 그 이유가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한테 먹히더라. 그래서 둘러댔다. ‘옆 반에 걔 음악하려고 자퇴한대’, 그런 말들을 전해듣기 시작했다. 나는 반드시 서울예대를 가야했다.
근데 음악작업장을 와 버렸다. 하하. 입시를 시작하고 다섯 달, 자퇴하고 한 달이 채 안 됐을 때였을 거다. 입시는 이제 조졌다. 근데 상관없다. 사실 알고 있었다, 서울예대는 답이 아니라는 걸. 그건 내가 그렇게 원하는 것도 아니고 안정적인 것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음악작업장까지 온 이상, 이제 나는 고민해야한다. 음악을 어떻게 둘 것인가. 음악과 어떻게 지낼 것인가. 돈을 벌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그거 참 중요하지만, 그걸 말하는 게 아니다. 음악과 어떻게 지낼 것인가. 이건 나한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왜냐면 난 진짜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음악입시를 하는 동안 학교밴드에서 하는 작은 공연이 있었는데, 공연 리허설 중에 갑자기 목소리가 안 나왔다. 진짜 그냥 안 나왔다, 막힌 것처럼. 나는 점점 당황했고 그럴수록 점점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한동안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한달에 몇 번 있는 밴드 연습을 가서도 참담한 심정으로 합주실 바닥에 누워있기만 했다. 밴드 멤버들이 화도 내고 가르쳐도 보고 응원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학원을 다니면서 숙제를 못해가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점점 조바심이 났고 숙제는 더 점점 못해갔다. 그런데 학원에서는 매달 원생평가라는 걸 했고, 내 수준에 따라 학원에서 배치해주는 선생님의 수준이 계속 달라졌다. 숙제를 안 해가면 선생님의 수준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인터넷 검색을 해서 숙제를 베껴갔다. 레슨 전날이 일주일에서 제일 불안하고 자괴감이 드는 시간이었고 레슨 직후가 가장 마음 편한 시간이었다.
음악과 어떻게 지낼 것인가. 내가 사랑하는 취미와 어떻게 지낼 것인가. 나는 분명 음악을 사랑했다. 심장을 내려 앉히는 그 순간순간의 느낌이 좋았고, 영화에 나왔던 노래들을 동생과 화음을 맞춰 부르고 연주하던 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음악을 싫어하게 될까 봐 두려웠고, 두려워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음악작업장을 다니면서 음악과 잘 지내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다들 자기만의 방식으로 음악이랑 지내고 있었다. 다들 참… 하나같이 멋있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같이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합주도 하고 솔직한 고민도 얘기하면서 많이 배웠다. 나도 점점 음악이랑 어떻게 지내야 할지 감이 오기 시작한다. 비단 음악 뿐만이 아닐 거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사람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나는 왜 그렇게 초조했는지,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다. 점점 긴장이 풀리고 있는 거 같다. 긴장을 더 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 음악작업장 공연 홍보해야 한다.
여러분. 11월 30일 오후 6시에 하자센터 999홀에서 공연이 있습니다. 많이 와주세요. 진짜 재밌고 멋진 무대 많아요.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