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 마을의 동물 주민, 하자 길냥이들을 소개합니다. 하자에도 왔다 갔다 하는 길냥이들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누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고 어떤 사연들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고요? 하자 길냥이들의 이야기, 아는 만큼 풀어봅니다. 길냥이들도 아는 만큼 보인답니다.
요즘 하자에 서식하는 길냥이들
텃밭 명상냥이(삼색이 2호)
출근 후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철공방 뒤편의 길냥이 밥그릇에 새 밥을 퍼주고 깨끗한 먹을 물을 떠 주는 일이다. 요즘엔 ‘텃밭 명상냥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몸집의 삼색이가 매일 아침 꼬박꼬박 밥을 기다린다. 이 길냥이는 본관 뒷편 텃밭에 앉아 과묵하게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이 종종 포착돼 텃밭 명상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꼬박꼬박 얼굴을 비추는 편은 아니었는데 요즘에는 철공방 뒤편으로 매일 아침 밥을 먹으러 온다. 어딘가에 숨어서 나를 감시하다가 밥그릇과 물그릇을 새로 채워주려 가지고 들어가면 쪼르르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새 밥과 새 물을 들고 나가면 후다닥 숨어버린다. 밥과 물을 놓고 내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 그제서야 나와서 밥을 먹는다. 그것도 한입 먹고 주위를 살피고 또 한입 먹고 주위를 살피고… 밥 먹을 때 만큼은 맘 편하게 먹어도 좋을텐데. 길 위의 삶의 고단함은 내가 아무리 ‘여기는 안전해’ 라고 말해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오히려 사람을 경계해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가까운 길냥이일수록 해코지 당할 확률도 크니까. 그렇게 안전하게, 자기 몸 챙기면서 올 겨울도 잘 넘길 수 있으면 좋겠다.
턱시도
턱시도는 최근 1년 사이 눈에 띄는 고양이다. 신관 급식소 부근 주차 차량 아래나 목공방 지붕 위에서 그루밍을 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더니 요즘에는 하자가 좀 편해졌는지 하자 곳곳에서 출몰하고 있다. 본관 쪽 주차장에 벌러덩 누워있거나 살림집 2층에서 여유를 즐기기도 하고 본관 107호 창틀로 올라와 구경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람이 근처에 가면 화들짝 놀라 몸을 숨길 정도의 경계심을 유지하고 있다. 엉뚱하고 천진난만한 표정이 매력이다.
작은 삼색이(삼색이 3호)
작은 삼색이는 턱시도와 친하게 지내는 길냥이다. 처음 작은 삼색이를 봤을 때는 무늬와 색깔이 같아서 텃밭 명상냥이와 헷갈렸는데 훨씬 몸집이 작은 다른 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밥은 주로 신관 급식소에서 해결하지만 늦은 밤 본관 급식소에서도 밥을 먹는 걸 본 적이 있다. 작은 삼색이는 그만의 밥먹는 독특한 버릇이 있다.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급식소 바깥에 서서 얼굴만 급식소 안으로 넣고 밥을 먹는데 작은 삼색이는 온 몸을 급식소 안에 완전히 넣은 채 밥을 먹는다. 그래서 얼핏 보면 고양이가 없는 줄 알고 밥이 비었나 확인하러 급식소 앞까지 갔다가 날 보고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작은 삼색이를 본 적도 있다. 그 후로는 신관 급식소를 갈때 멀찍이서 반드시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얼룩 태비
얼룩 태비도 올해부터 보이기 시작한 길냥이이다. 철공방 뒤쪽에서 한참 밥을 먹다가 요즘에는 텃밭 명상냥이에게 밀린 건지 새로운 급식소를 찾은 건지 자주 목격되지는 않는다. 이 친구도 밥그릇이 비었을 때는 본관 나무데크까지 와서 밥을 기다릴 정도로 밥에 관해서는 적극적인 편이다. 얼마 전에는 밥을 다 먹고서 살림집 2층에 쪼르르 올라가더니 쇼파에 앉아 식후의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봤다. 살림집 2층은 은근 하자 길냥이들의 핫 플레이스였던 것. 언젠가 한번은 주차장에서 턱시도와 맹렬한 싸움을 하는 걸 목격했다. 사이좋게 지내면 좋으련만.
하자에 있었던 길냥이들
노랑이
하자에서 몇 년 동안 터줏대감으로 지냈던 길냥이. 하자 주민들이 중성화 수술도 시켜주고 집도 마련해주고 길고양이 보호소 어린이들이 꾸준히 밥을 챙겨줬던, 말 그래도 하자 대표냥이었다. 아침마다 신관 급식소에서 밥을 기다리던 모습은 아마 많은 하자 주민들과 아하 선생님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출근길은 언제나 노랑이를 만날 생각에 즐거웠고 연휴 기간에는 밥을 굶고 있을 노랑이가 걱정돼 하자에 밥을 챙겨주러 나올 정도로 나에게는 노랑이가 각별했다. 어느 비오는 날, 아하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떨고 있는 노랑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고 노랑이는 하자 주민들의 모금과 응원 속에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고양이별로 가고 말았다. 노랑이를 그렇게 보내고선, 영문도 모른채 차가운 병원에서 홀로 마지막 순간을 맞게끔 했다는 자책감에 한동안 시달렸다. 수술을 시키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런 나에게 로드스꼴라 교사인 지현은 “노랑이가 마지막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려고 그랬던 거 아닐까?’라고 말해주었고 나도 그렇게 믿고 싶어졌다. 여전히 노랑이는 내 맘 속 가장 빛나는 하자 길냥이이다.
살림이
또 하나의 하자 터줏대감 삼색이 1호의 새끼로 추정되는 작은 턱시도냥. 어느 날 우리가 밥을 주던 살림집 옆 바닥에 혼자 널브러져 죽은 듯 자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고 그러한 탓에 .‘살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처음 봤을 때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몰라 자세히 살펴보니 자는 중이었다. 섣불리 사람 손을 타면 어미가 버릴까 싶어 테이프로 출입을 막고 ‘어미가 있는 새끼 고양이니 만지지 말라’는 공지문을 붙여놨다. 그러나 그 후로도 한동안 어미인 삼색이 1호는 새끼를 쳐다보기만 할 뿐 데려가지 않았고 새끼는 한쪽 눈이 심하게 부어 있을 뿐 아니라 움직임이 거의 없어, 결국 우리는 살림이가 어미에게 버려졌다는 결론을 내리고 치료를 시작했다. 생후 1개월도 안된 아깽이라 두시간마다 주사기로 분유를 물에 타 급여했고 밤에는 판돌들이 돌아가며 집에 데리고 가 수유를 했다. 주말에 집에서 임시보호를 하던 중 급격히 몸이 안 좋아져 급히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갔으나 제대로 된 치료도 받아보지 못하고 진료대 위에서 그렇게 고양이별로 갔다. 먼저 간 노랑이가 살림이를 반갑게 맞아주었길.
번외: 네 마리 비둘기 가족
최근에 본관 철공방 급식소에 네 마리의 비둘기가 출현했다. 좀 마르고 깃털이 거친 한 마리, 전체적으로 회색빛인 튼실한 한 마리, 꼬리에 흰 무늬가 있는 한 마리, 등 가운데에 흰 무늬가 있는 한 마리, 이렇게 똑같은 네 마리가 매일 길고양이의 밥을 뺏어 먹는다. 처음에는 얘네 때문에 고양이들이 굶을까 싶어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다 같이 나눠 먹으라고 밥을 두번씩 나눠 주기로 했다. 첫번째는 비둘기 타임, 두번째는 길냥이 타임. 밥을 늦게 담아주는 날은 밥을 내 놓으라고 본관 로비까지 들어온 적도 있는 배짱 좋은 비둘기 가족이다. 그러던 그들이 요즘은 밥 먹으러 오지 않는다. 고양이 밥이 질린 걸까? 배짱 좋은 가족이니 어딜 가든 잘 살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