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하는 하자센터는 청소년 진로에 관련한 대안적인 프로젝트를 하는 기관이구요. 하자에 오기 전 제가 배운 일은 다큐멘터리나 드라마PD 등 어떤 소재나 이야기를 영상언어로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언뜻 두가지가 잘 겹쳐지지 않지만, 10대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어 여기까지 흘러오게 되었는데요. <문제없는 스튜디오> 역시 조금 다른 10대의 이야기를 찾는 과정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간단하게, 문제없는 스튜디오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10대들과 협업해 영상을 제작하고 발신하는 곳입니다. 청소년의 어려움이 공공의 이슈라는 건 어렵지 않게 동의하실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그 문제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전보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10대의 이야기가 많이 드러났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텐데요. 도대체 뭐가 안 보인다는 것일까요?
저희가 진행했던 프로젝트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소위 비행청소년이라고 부르는 청소년들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좁은 밤골목에서 청소년들을 만났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떠신가요? 보통은 이런 이미지들이 떠오르셨을 거예요. 관련 뉴스나 기사, 영화 같은 걸 봐도 이 청소년들을 관통하는 일관적인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이런 무서운 이미지들이 이들의 전부일까요?
영상을 보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이 영상은 밤에 몰려다니다 경찰관에게 임의동행을 당해 새벽까지 경찰서에서 있었던 청소년들이 밤에 사는 ‘법’을 소재로 기획했던 영상입니다.
보통 청소년이 밤에 돌아다닌다고 하면 나쁜 생각부터 드는데요. 얘기를 듣다보면 어른들이 밤에 나오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가 놀고 싶고, 친구 얼굴 좀 보고싶고, 낮에는 바쁘고. 다만 같은 이유여도 청소년들은 어른들과 사는 ‘법’이 다르기 때문에 밤10시가 넘으면 급격히 갈 곳이 없어집니다.
문제는 단순히 실내 장소들만이 아니라는 거예요. 밤에 청소년들은 밖에 있으면 안된다고 어른들이 정했기 때문에, 놀이터에 그네도 묶어놓고 넓고 밝은 골목은 주민들의 민원으로 경찰들이 쫓아다닙니다. 그래서 더 안보이는 곳으로 옮겨가게 되는데요. 영상에 나오는 청소년들이 자주 모인다는 장소는 좁고 말 그대로 후집니다. 미디어에서 재현한 이미지들과 다르게 골목은 밀려나고 밀려나 유일하게 안전하게 놀 수 있는 장소인 거예요. 보호를 위한 조치들이 사실은 어른들의 눈에서 지울뿐, 청소년들을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내몰고 있는 거죠.
이 얘기는 거리가 머니까, 더 가까운 예를 들면요.
이 이미지는 10대 연애, 청소년 연애를 키워드로 유튜브에 검색해본 결과 썸네일들입니다. 대다수인 파란 색으로 표시한 썸네일들은 10대들이 고백하는 법, 연애 진도, 어디까지 했어? 첫경험은 몇살이 좋아? 등흔히 연애 하면 떠오르는 얘기가 나옵니다. 분홍색은 이 이슈에 관해 어른들이 말하거나, 어른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들이예요. 10대가 성인과의 연애를 왜 조심해야하는지, 중딩 아들이 친구와 침대에서? 이런 자극적인 썸네일도 있네요. 이 소재에 관해 소수지만 공적인 이슈는 학교내 연애 금지 학칙의 문제라던가, 학교에서 연애하려면 신고하고 배지 받으라는 당황스런 얘기도 나오네요.
며칠 전 검색결과는 이정도인데요. 유튜브가 있어서, 누구나, 어른들도 이만큼 10대들의 연애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거죠. 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야기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인터뷰 하면서, 얘기할 곳이 없다며 실제 들었던 이야기인데요. 연애 관계 안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신고하고 조치했지만. 이후 결국 못견디고 자퇴한 이야기. 그 근처 동네도 못간다고 하더라구요. 10대 성소수자들의 연애. 주변에선 이성애가 당연한 것처럼 얘기하고. 연애할 사람 찾는 건 비공식적인 통로를 거쳐야하고 어디다 말할 곳도, 상의할 수도 없습니다. 장소도 열악하죠. 학교 내에서 이성애를 흉내내는 말을 한다고 해요. 연인과 성관계를 했는데 또래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괴로운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얘기들은 일관적으로 ‘학교가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약자 입장에서 나와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란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이 사회에는 집단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만으로 축소시키는 강한 압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청소년이 교실/가정 안팎에서 약자가 되었을 때, 신고를 통해 개인의 문제는 해결되지만 어떤 맥락과 과정에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지는 잘 발견되지 않습니다.
할 말은 있는데, 안전하게 이야기할 곳도 없고, 혼자라 지지를 얻기도 쉽지 않죠. 이런 일들이 생기면 당연히 남들보다 에너지가 부족하죠. 이렇게 에너지도 지지망도 수요도 없는 사람이 무언가 말하고 싶을 땐 어떻게 해야할까요? 심지어 자기 돈과 시간도 내어야하는데요.
보통 사회 안에서 유튜브의 제작 지원은 1인 미디어 공간이나, 제작교육 지원 등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은 에너지가 있고 열의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돕는데요. 청소년들 중에도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려면 필요한 것이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이 겪는 문제가 사회가 꼭 알아야하고, 당사자들이 해당 문제에 관한 전문가로서 자기 이야기를 직접 할 수 있는 조건들이 만들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없는 스튜디오는 청소년들의 문제를 공공 이슈로서 이야기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들을 고민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저희는 어려움이 있는 청소년들을 적극적으로 초대하는 방편으로 '프로젝트 지원금'을 드리는데요. 이는 사회 관계망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통행료이자 활동비라고 생각합니다. 모여서는 2-3주간 이 시공간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여러 약속들을 다같이 정합니다. 나머지 15주 정도는 결이 맞는 사람들끼리 팀을 이뤄 영상을 기획/제작하고 편집과 발신에 이르는 과정을 같이 하구요.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단계가 진행될 때마다 다른 팀들에게 진행상황을 설명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습니다. 모든 구성원이 각자 이야기의 독자이자, 지지망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보통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에서 만나기 때문에 먹는 게 모자라지 않도록 준비해야합니다. (정말 중요합니다)
올해도 16명의 청소년들이 치열한 이야기 끝에 13개의 이야기 소재를 도출해냈고 그중에서 4개의 우선순위를 정해 진행했고 그 마무리 작업중에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기획에는 왜 이 이야기가 만들어져야 하는지, 문제니까 고쳐가 아니라 과정과 맥락을 설명합니다. 자기 고통을 전시하지 않고, 안전하지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합니다. 저는 이 과정에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제 유튜브 콘텐츠 제작에 관해서는 그런 맥락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키즈 채널 출연 아동에 대한 부모의 학대도 그 연장이구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청소년들이 했던 이야기인데요. 사람들은 '사각지대 청소년' 하면 그들을 찾아서 지원해줘야 한다지만, 사실 당사자 청소년들은 차라리 어른들 눈에 띄지 않는게 더 안전하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청소년 퀴어이건, 학교폭력 피해자건, 우울증 때문에 힘이 들건 다들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어른들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는게 결론이었거든요. 상황이 절대 좋아지지 않는다. 이 간극의 차이를 조금이라도 좁혀보고 싶은 마음이구요.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다의 누구나가 ‘모두’이기 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튜브는 지금 앞에 놓여진 가능성이구요. 물론 지금의 유튜브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이지만요.
올해도 사회가 모르는 10대들의 이야기를 볼만한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청소년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구요. 작년에 제작한 청소년 우울증 단편영화서부터, 탈학교 청소년, 학교폭력, 청소년 퀴어 연애 이야기, 성교육 등의 이야기를 올해 발신할 예정입니다.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을 도움이 필요한 존재, 선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경험을 가진 (청소년 사각지대) 전문가로 대해주셨으면 좋겠고, 사회가 이들의 전문지식을 더 잘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선 할말 있는 청소년들을 위한 지지망이 되어줄 안전한 공간과 자원이 더 필요하고, 그러면 청소년들이 유튜브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다채로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