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으면 존재하는지 모른다. 우리의 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잊혀지기 쉬워서 거듭 말해야한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영화 <벌새>는 우리 조차도 잊어가고 있던 청소년기의 성장을 섬세하게 바라본 영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공감을 느끼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어른들이 적당히 말썽부리지 않고 커가고 있구나, 하고 넘기던 여성 청소년의 시간을 ‘삶' 이라고 바라봐줘서.
영화 <벌새>의 주인공 은희를 보며 그의 삶과 어딘가 닮아있던 우리의 이야기를 이 글에 담았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던 이야기. 구체적이지만 지극히 보편적인 경험들.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갈 시간들이지만 분명 지금까지도 남아 우리를 이루고 있는 것들.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은희가 가끔 생각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며 빛나게 살아가고 있을거라 믿는다. 은희도, 우리도.
사랑은 유리 같은 것
중학교 3학년. 좋아하는 여자애, J가 있었다. 까만 머리카락과 대조되는 하얀 피부가 인터넷 소설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처럼 예뻐서 설레게 하는 아이였다. 그 당시 나는 성 지향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마법처럼 J에게 끌렸고, 친해지기 위해 J의 교실에 매 쉬는 시간마다 찾아갔다. 알고 보니 아파트 옆 동에 살았던 우리는 같이 하교를 하며 점점 가까워졌다.
매력적인 J에게는 도무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J가 아까웠다. 어디 하나 멋 나지 않은 그 남자애는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에 공을 차러 나갔다. 나는 매일 J를 보러 오는데! 쟤는 어떻게 J랑 사귀는 거야! 나는 그 남자애를 질투했고 J가 그 아이를 만나고 오는 날에는 꼭 “ 걔랑 노는 게 재밌어, 나랑 노는 게 재밌어? “ 하고 물어봤다. J는 당연히 나랑 노는 게 재밌다고 대답했고 그럼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J가 남자애랑 헤어지고 온 날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나는 J에게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때같이 놀던 축구부 친구들의 영향으로 나는 머리를 자르고 여자 축구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J는 나의 짧은 머리를 참 좋아했다. J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애들도 나를 보고 자기 남자친구 하라는데, 그런 말들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좋았다.
우리는 연애를 한다고 정의한 적은 없지만 이 관계가 보통의 우정과 다르다는 것을 둘 다 사뭇 느끼고 있었다. 다른 학교와의 친선경기 때 그 아이가 응원하러 와주고, 학교가 끝나면 벤치에 다리를 베고 누워서 몇 시간이고 얘기하던 시간들. (가끔은 뽀뽀도 했다.) 이 소중한 시간들은 계절이 바뀌면서 희미해져갔다.
졸업을 앞두고 J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은 분명 사랑이었지만, 사랑이라고 부르지 못해서, 그냥 유난히 친한 친구라고 단정 지었다. 그래서 J를 다른 친구들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누구보다 J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졸업식까지 별 다른 일 없이 멀어져 갔다. J도 무언가 달라진 것을 느꼈는지 다가오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축제를 준비하던 9월에, J에게 연락해서 축제에 놀러 오라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예전처럼 껴안으며 서로를 대했다. 잠시 중학교 때로 돌아간 것 같아 좋았지만 축제가 끝나고 다시 연락이 끊겼다.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 그런 때도 있었던 거지, 하고 웃어넘겨야 하는 것처럼.
나는 이사를 가지 않고 아직 그 아파트에 살고 있다. 하지만 한 번도 J를 마주친 적은 없다. 마주친다면 어떻게 인사를 건네야 할지, 어색하게 웃어야 할지 아직도 가끔 고민한다. 남겨지지 못한 사랑은 다른 말로 감추기 쉽다. 그래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다시 말하게 된다. 우리 서로 좋아했었어. 꽤 뜨겁게 말이야.
화목한 우리 집
새 학년이 시작되면 항상 무엇인가를 써서 내야 했다. 나의 특기, 희망 직업, 가장 친구, 가족 관계 등등. 나는 언제나 ‘부 - 직장인, 모 - 가정주부’라고 썼다. 십 년의 학교생활 동안 나의 역할은 학년이 바뀜에 따라 줄곧 달라졌지만 그들의 역할은 그대로였다. 돈 벌어오는 아빠와 집안일하는 엄마.
도덕 책에 나오는 현대사회 핵가족 가정의 모습처럼, 아빠는 매일 출근 준비를 하고 엄마는 아침밥을 차렸다. 아빠는 세차를 하고 엄마는 청소기를 밀었다. 아빠는 전등을 갈고 엄마는 설거지를 했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저녁밥 시간을 잘 지키고, 식탁 정리를 돕고, 아빠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방에 들어와 숙제를 하는 것 정도였다.
도심에 새로 지은 18층짜리 아파트 단지에 전세로 34평-방 세 개에 거실과 부엌, 화장실 두 개, 베란다와 다용도실까지-중산층에 편입되고자 하는, 한국 사회의 정상 가족.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열심히 하는 우리 집은 지극히 평범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아빠의 생일이었고 엄마는 미역국을 끓였다. 교복을 입는데 거실에서 부모님이 크게 화를 내며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동생을 끌어안고 방 안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누군가 그릇을 던졌고 곧이어 현관문이 쾅 닫혔다. 어쩐지 그 뒤로 일주일 동안 둘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았는데 굳이 해야 하는 말이 생기면 나와 동생에게 말을 전하라 시켰다. 들어보니 엄마가 꽤 비싼 면도기를 선물했고 아빠는 쓸데없이 기능만 많고 비싸기만 한 걸 샀다며 화를 냈다고 했다.
일명 ‘고급 면도기 사건’으로 둘은 법정의 코 앞에까지 갔다. 둘은 한 명 씩 돌아가며 나와 동생에게 “엄마 아빠가 이혼하면 누구랑 살고 싶냐”라고 물었다. 나는 말을 잘 들어주는 엄마랑 살면 좋겠지만 앞으로의 삶은 가난해질 거고, 무서운 아빠와 살면 그런 걱정은 없겠지만 집안일을 다 내가 하게 될 것이라는, 나름 분석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런 건 싫었다. 내겐 ‘엄마’와 ‘아빠’가 필요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넓어서 좋은데 둘이 헤어진다면 집이 반 토막 날 것 같았다. 친구를 잘 사귀는 성격도 아니어서 친한 친구들이랑 헤어지기도 싫었다. 그래서 그냥 “두 분이 싸우지 말고 잘 지내면 안 돼요?”라고 했다. 눈물 한 방울까지 또르르 흘려주면서.
전세로 사는 집은 주기적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이 년마다 돌아오는 그 시기에 나는 두 사람 눈치를 보느라 밥 넘기기조차 힘들어했다. 우리 집은 어디로 가게 될까. 같은 아파트 단지 안을 뱅뱅 돌며 네 번을 이사했다. 아빠는 자신의 퉁명스러운 말투와 욱하는 성격을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내가 가족을 때리지는 않는다”라고 말했고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경제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둘은 부부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서로에 대한 의리와 자식들 때문에 사는 거라고 했다.
순간 우리 집이 아주 아주 좁고 긴 통로처럼 느껴졌다. 차렷 자세로 서 있기만 할 수 있어서 서로를 안아주기 위해 두 팔을 벌리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며 서 있는 것인지.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것인지. 나는 너무 답답한 나머지 그곳을 간절히 떠나고 싶어졌다. 아니, 도망치고 싶었다. ‘엄마’, ‘아빠’, ‘우리 집’이 아닌 곳으로. 아주 멀리.
비밀과 어른
너는 비밀이 많구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중학교 2학년. 학교에서 웬 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나랑 다른 것 같아서 상담실을 찾아갔다. 다시 해보고 싶어요. 상담실선생님은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다시 해봐도 여전히 아닌 것 같았다. 그 때 나를 보고 있던 선생님이 진지하게 “너는 대체 뭘 하고 싶은 거니”라고 말했다. 그 눈빛이 얼마나 강렬하게 남았는지. 아직도 선생님의 얼굴만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선생님은 내게 다른 검사지를 주셨다. 이거 해볼래? 그리고 다 적은 검사지를 바라보던 그는 내게 비밀이 많다고 했다. 너무 담아두지 말고 털어놓으라고,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그 날 어떻게 집에 갔더라. 애써 태연한 척 웃으며 상담실 문 밖을 나갔던가, 굳은 얼굴로 조용히 나섰던가. 종일 상담실을 맴돌던 미묘한 분위기를 떠올리다가,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선생님을 보기가 어색해져서 상담실 문을 다시 연 적이 없다. 언젠가 찾아갔을 때엔 선생님이 바뀌어 있었다.
난 비밀이 많지 않았다. 모름지기 비밀이란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간질간질하고 생각만 해도 조용한 미소를 만들어야 좀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건데, 그 때 나는 설레는 비밀이랄 것이 없다고 느껴서 조금 불행했다. 오히려 나와 한 몸이 되어서 쇳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이부자리에 누이게 하는 그런 비밀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내 눈엔 고쳐야 할 단점이 더 크게 보였다. 그렇지만 그것들도 비밀은 비밀이었다. 나는 누군가와 그 비밀들을 공유하기를 은근히 바랐다. 그러나 친구들은 바빴고, 학교에선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하며 웃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부모님은 이미 지고 있는 삶의 무게로도 두 어깨가 늘어졌다. 선생님은 내 사소한 뭔가를 궁금해 하는 것보다 급한 일들이 많았다. 내 이야기는 가끔, 상담시간에 아주 조금 꺼내지곤 했다. 진로, 공부, 태도 같은 것들과 뒤섞여서. 나는 바랐다. 누군가 내게 진심으로 내 일상을 물어줬으면 좋겠다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할 때 즐거운지, 학교에서 이상한 일은 없는지.
그저 그런 하루와 그저 그런 공부로 이루어진 그저 그런 삶. 나는 그런 게 싫었다. 하지만 달리 벗어날 곳은 없었다. 주어진 트랙에서 이를 악물고 달리거나, 낙오되거나. 굳이 따지자면 나는 낙오되는 쪽이었던 거 같다. 그럼에도 내게 걸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다. 오늘 학교가면 내일도 학교 가는 그런 삶. 그 안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스스로를 미워하고 애틋해하는지 어른들은 몰랐다. 아니, 잊었을 거다. 아무도 모르게 생긴 비밀들이 얼만큼 부풀었는지, 그게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지면 그 때서야 되돌아본다. 너 왜 이러니. 그 전에 누구라도 물어봐주면 좋을 텐데.
영화에서 손가락을 보래서 나는 손가락을 봤다. 달라진 건 까딱거리는 손가락뿐이다. 그 외엔 모든 것이 그대로다. 그 때 내게 비밀을, 그 무게를, 나의 나약한 부분을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결국 나는 누군가를 찾아 나섰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럴만한 힘은 매일 솟구치는 게 아니어서 은희가 그랬듯, 가끔 웅크려있었다. 상담실에서의 이상한 하루 이후 비밀을 나눠왔던 나는 어느 정도 가벼워졌다. 그러나 실은, 내겐 여전히 영지선생님이 필요하다. 나약함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으려 애쓰는 그를 보며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영지를 만난 은희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될 것이다. 서서히,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어른이 되겠지.